[인터뷰] 전창곤 박사 “프랑스문화원으로 구도심 살린다”
[인터뷰] 전창곤 박사 “프랑스문화원으로 구도심 살린다”
  • 심재율 기자
  • 승인 2019.10.30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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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공장 빌려 프랑스 문화 수집 공개
유학 중 한국 현대화가 작품 발굴하기도
매년 음식축제 및 음악축제 개최

[데일리비즈온 심재율 기자] 대전에서는 비교적 후미진 중구 석교동에 전국적인 명물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문화원 ‘앙트르뽀’(ENTREPÔT)이다. 겉으로 보면 공장 건물이지만, 그 안에는 프랑스를 맛 볼 수 있는 서적과 가구 소품 등이 가득하다. 

천정이 높은 문화원 내부로 들어오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몰입하게 된다. 사진 한 장 찍어 보내면서 “갑자기 파리에 왔다”고 하면 누구나 속아 넘어갈 정도이다. 이곳에 있는 의자나 책상 소파는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색깔도 모양도 재질도 생김새도 다 다르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다양성과 관용이 그대로 표현된다. 프랑스 상징인 수탉이나 각종 문장 및 서적과 장식품등이 가득자리 잡았다. 

이곳에 들어서면 정말 다른 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잠시 잊게 된다. 공기 마저 다른 것 같다. 프랑스어로 쓴 책부터, 바닥에 깔린 카페트, 크지 않은 다양한 가구에 각종 소품까지 방문객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끄는 장치들이 가득하다.  

구도심인 대흥동에 자리 잡고 있던 대전 프랑스문화원은 대흥동에 원룸과 카페가 갑자기 많이 들어서면서 협소해졌다.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 원장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 원장

15년 전부터 원장을 맡은 전창곤 박사는 과감하게 훨씬 넓은 공간을 찾아 2018년 석교동으로 옮겼다. 석교동으로 옮기면서 전 박사는 서울 프랑스 대사관이 보유하던 도서관을 통째로 옮겨왔다. 프랑스 서적 1만3,000권에 CD와 DVD등이 3,000여개이다. 개원식 때는 프랑스 대사가 직접 찾아와 대전시 및 중구청을 들러 협조를 당부했다. 

전 박사는 “한국에 있는 프랑스 도서관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설명했다. 문화원 벽을 따라 만든 2층에 자리잡은 프랑스 도서관은 누구나 쉽게 빼 볼 수 있어서 어린아이들에게 외국 문화를 접하는 훌륭한 창구역할을 한다. 

개원식에 참석한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 대사 (사진=전창곤)
개원식에 참석한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 대사 (사진=대전 프랑스문화원)

대전시 외곽에 자리잡은 석교동은 볼만한 문화공간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다. 프랑스문화원이 1년 전 이사 온 후로 알음알음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프랑스문화원이 다른 도시에도 소규모로 있지만, 대전 프랑스문화원은 유일하게 독립적인 공간을 가졌다. 대전의 경우 미술관, 예술의 전당, 국악원, 수목원, 과학공원 등 볼만한 문화시설은 모조리 신도심으로 유행처럼 몰려갔다. 프랑스문화원은 거꾸로 이동했다. 문화시설이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구도심의 허름한 공장 건물을 선택한 것이다. 

전 박사는 “시멘트 빌딩 안에서 문화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 문화로 구도심을 살리는 실험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앙트르뽀 내부 전경.
앙트르뽀 내부 전경.

다행히 석교동 주민들 사이에 정말 가 볼 만한 곳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에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독서모임도 열리고, 불문학과 행사도 개최했다. 프랑스 작가가 방문하면 작가와의 기념 대화도 개최하는 등 프랑스 문화를 알리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 

전 박사는 “프랑스문화원이 들어오면서 동네가 활성화된다면, 문화원 존재의 의미가 확보되는 것 같다”고 좋아했다. 앞으로 문화원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에 공방도 들어서는 부수효과가 기대된다. 

문화원은 매년 큰 행사를 2번 개최한다. 3월말에는 프랑스를 비롯해서 아프리카, 중동 등지의 프랑스어권 국가 음식을 모아놓은 음식축제가 열린다. 서울을 비롯해서 각지의 프랑코폰들이 대전으로 모이는 날이다. 

올해 열린 프랑스음식축제. (사진=대전 프랑스문화원)
올해 열린 프랑스음식축제. (사진=대전 프랑스문화원)

6월에는 음악행사가 마련되는데, 다른 행사와는 뚜렷하게 특징이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프로나 아마추어를 가리지 않고 함께 참여한다. 전 박사는 “하루 정도 모든 사람이 음악을 하는 날로 인식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화원이 중심이 돼 작게 시작하지만, 대전시 전체가 작은 동네라고 해도 그 날은 모든 시민이 냄비라도 가지고 나와 두드리면서 음악하는 날로 바꾸자는 것이다.

대전 프랑스문화원은 35년 전에 생겼다. 15년 전 부터는 전창곤 박사가 원장을 맡으면서 온갖 정성을 기울여 가꿨다. 프랑스 문화원이 이만큼 자리잡은 것은 전 박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바탕이 됐다. 충남대 불어불문과 1회 입학생인 전 박사는 1984년부터 2001년까지 프랑스 유학하는 동안 프랑스 문화에 깊이 빠져들었다.  

희곡을 전공하면서 20년 가까이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전 박사는 컬렉션에 눈을 돌렸다. 자연히 프랑스에서 활약한 한국화가 작품에도 시선이 갔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 미술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서양 화가 배운성(1901~1978)을 발굴해서 소개했다. 

유럽 유학1호 작가로 꼽히는 배운성은 홍대 미대를 창설한 역사적인 인물로서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배운성은 6·25 전쟁 때 월북한 뒤 북한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늦게 알려졌다. 배운성은 독일로 유학갔다가 프랑스에 정착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1940년 귀국할 때 작품을 파리의 공동 화실에 남겨놓았다. 이 작품들이 흩어져 행방을 모르고 있다가 전 박사 눈에 띄어 극적으로 살아남아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배운성 작가의 대표작인 '대가족도' (사진=전창곤)
배운성 작가의 대표작인 '대가족도' (사진=전창곤)

전 박사는 “공동 아틀리에에 있던 그림들이 경매로 넘어가 골동품상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작품의 중요성을 알아본 전 박사는 6개월간의 줄 달이기 끝에 48점을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다. 이 중 ‘대가족도’는 회화로서는 드물게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석교동에 자리잡은 프랑스문화원 앙트르뽀는 대전시 구도심에 잔잔한 국제문화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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