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베네수엘라 난민 받는 콜롬비아
-최대 콜롬비아 국민 10퍼센트에 이를 수 있어
-미국은 적극적으로 콜롬비아 도와야

콜롬비아의 베네수엘라 난민들. (사진=UNHRC)

[데일리비즈온 최진영 기자]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소요사태가 교착 상태에 빠져들었다. 국제사회가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를 압박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정국을 주도하는 것은 마두로와 그의 지지세력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명백하게 붕괴상태다. 인플레이션과 기본적인 생필품부족이 수백만의 베네수엘라 인들을 난민으로 내몰았다. 그들의 이탈은 사회기본망의 추가적인 붕괴를 부채질했다. 기본망의 붕괴는 다시금 난민들의 발생으로 이어진다. 거기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재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2020년까지 베네수엘라발(發) 난민의 수는 시리아 난민의 수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시리아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오로지 정치적 불안이 진정되어야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추가적인 난민 발생을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렵다. 미국의 역할도 남아있다. 인도적인 지원을 위해 미국은 더 많은 노력을 배가하여야 한다. 올해 워싱턴은 베네수엘라의 인근 국가들에 경제 및 외교적인 압박을 가했다. 마두로를 축출하는 데 힘을 보태달라는 요구였다. 내정간섭으로 여겨질 수 있었으나 잡음은 없었다. 미국이 중남미 일대의 민주주의와 지정학적 안정성을 고려하고 있다는 모양새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양새’는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난민은 그만큼 모두에게 민감한 이슈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시리아 사태가 중동 전 지역에 영향을 끼치고, 난민들이 유럽 정세에 심각한 변수로 등장한 것처럼 베네수엘라 사태는 중남미 일대의 정치적 안정성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 되어가고 있다. 다시 말해 베네수엘라 사태는 오늘날 베네수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콜롬비아가 가장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콜롬비아는 오늘날 베네수엘라부터 가장 많은 수의 난민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날 콜롬비아의 내전사태를 피해 베네수엘라로 몸을 피했다가, 다시금 콜롬비아로 돌아오려는 귀향자들도 상당수 섞여있다. 이들의 수만 100만 명이 넘는다. 베네수엘라가 콜롬비아와 국경이 맞닿아있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포린 폴리시(FP)는 최근 한 취재원을 통해 콜롬비아가 베네수엘라의 난민으로 인해 불거질 문제가 향후 더욱 심각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FP의 취재원은 콜롬비아 북쪽 국경선의 한 다리를 찾았다. 사이먼 볼리바르 다리라고 부르는 이 곳은 하루에도 수천 명의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다리를 건너 콜롬비아로 넘어오는 곳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베네수엘라에 정착하려는 것은 아니다.

콜롬비아의 베네수엘라 난민수용소. (사진=UNHCR)

콜롬비아에서 필요한 생필품을 사고 국경을 건너 베네수엘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말하자면 아침에 콜롬비아로 넘어와서 필요한 일들을 마친 후, 저녁에 다시 베네수엘라로 돌아가는 식이다. 다리는 아무래도 좁기에 많은 사람들은 숲과 강으로 이루어진 ‘비공식’ 루트를 활용하기도 한다. 대부분이 콜롬비아의 무장 게릴라 단체나 갱에 의해 장악된 곳이기도 하다.

콜롬비아의 공식 반응은 의외로 부정적이지 않다. 한편으로는 난민을 환영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난민들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서비스며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속도로 베네수엘라의 난민들이 유입된다면 콜롬비아의 사회적 안전망도 언제 위태로워질지 모른다는 해석이 아무래도 좀 더 우세하다.

국제구호단체나 NGO들은 콜롬비아에 유입된 베네수엘라 난민의 수를 어림잡아 140만 명으로 추산한다. 경우에 따라 200만 명으로 예측하는 보고서도 있다. 많은 베네수엘라 인들이 콜롬비아로 들어와, 최종적으로는 칠레나 에콰도르, 혹은 페루에 정착하고자 한다. 그러나 콜롬비아 땅에 거주하는 동안은 그들이 지낼 쉼터와 교육, 일자리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구호단체들의 입장이다. 이에 칠레 등 남미 각국들은 최근 난민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하고 있고, 많은 난민들은 곧 최종적으로 콜롬비아에 눌러앉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FP는 “콜롬비아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베네수엘라인의 수는 2021년까지 400만 명에 달할 것이다”라며, “이 수는 최종적으로 600만 명까지 치솟을 수 있는데 이는 콜롬비아 전체 인구수의 10%에 해당한다”고 전망했다. 베네수엘라 인들은 콜롬비아의 캠프에 격리되어있지 않다. 그들은 콜롬비아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노동 현장에 투입될 수도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으며 공립병원에서는 무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난민 지위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많은 콜롬비아 인들은 드러내놓고 불평하지는 않아도 “가장 최근에 콜롬비아에 정착한 베네수엘라 인들이 콜롬비아의 사회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숨기지는 않는다. 베네수엘라 난민들은 최근 현지 갱의 일원으로 영입 (혹은 납치)되거나 성매매나 마약 산업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외곽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들은 “멕시코 카르텔이 개입된 가운데 마약을 유통하는 갱의 활동량이 늘어나고 있다”며, “(반정부 게릴라집단인) 국가해방군(ELN)도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의 베네수엘라가 그러하듯, 과거 콜롬비아를 사실상 두 국가로 찢어놓았던 내전이 다시 한 번 발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FP 역시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 혁명군 사이의 평화에도 다시 한 번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우려한다.

콜롬비아 내전이 끝난 후 기뻐하는 시민들. (사진=BBC)

현재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의 위기를 온 몸으로, 홀로 견뎌내야 하는 처지다. 워싱턴 역시 올해 초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를 냈지만 또 현재에는 대규모 난민사태에 말을 아끼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마두로의 존재를 중남미 평화의 적이라고 묘사해왔다. 하지만 현재의 사태에서 마두로의 책임은 얼마나 될까? 미국의 주장처럼 100퍼센트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미국도 인도적인 지원에 좀 더 힘쓸 필요가 있다. 

미국이 중남미 일대에서 공공연히 영향력을 발휘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려면 현재의 사태를 방관할 수만은 없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때로 미국은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다. 주변국들을 압박해서 국경을 열도록 하거나 국제사회에 요청해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늘리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은행으로 하여금 베네수엘라 난민이 정착할 수 있도록 콜롬비아에게 더 우호적인 재정지원을 약속할 수도 있다. 

실제로 콜롬비아는 미국의 오랜 우방 중 하나였다. 최근 10년 동안 콜롬비아는 마약과의 전쟁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해왔고, 내전을 끝냈으며, 비교적 견고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의 과실 또한 콜롬비아 전역에 비교적 고르게 배분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 또한 이에 동의한다. 워싱턴은 그간 사회주의의 실패를 강조하는 동시에 콜롬비아의 최근 성공을 비교하면서, 이들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난민 사태는 그동안 콜롬비아가 누려온 작은 과실에 비하면 너무나도 버거운 상대다. 콜롬비아는 수백만 명의 난민을 수용할 만큼의 역량이 부족하다.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오늘날 칠레를 달구고 있는 대규모 혼란이 콜롬비아에 다시금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베네수엘라의 사태는 명백히 사회주의의 패배이자 포퓰리즘에 대한 반면교사다. 그러나 미래의 베네수엘라가 미국이 그토록 칭찬했던 콜롬비아를 희생양삼아 부활한다면 어떨까. 이는 미국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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