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 좌절된 청년 세대의 분노
-단순 소득재분배 정책으로는 효과 적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린 시위. (사진=BBC)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홍콩과 칠레에서의 대규모 시위가 연일 전 세계 연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칠레에서는 우리 돈 약 50원에 해당하는 대중교통비 인상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홍콩에서는 범죄인 인도 법안인 송환법이 문제가 됐다. 대중교통비 인상과 송환법 도입은 무산되었으나, 시위 자체는 두 곳 모두에서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흐름이다. 

송환법이나 50원의 교통요금 인상이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경제 불황만으로는 사실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시위 흐름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가령 젊은이들의 취업문제나 빈부격차가 내재된 분노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기사나 보고서는 꾸준히 나오는 편이다. 한편 홍콩 영자지 아시아타임즈(AT)는 “두 곳은 상당히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며, “바로 부동산 거품으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서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랐다는 점이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최근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수년 동안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평가되었다”며 “주요 상업 지역인 센트럴(Central)에서 지하철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신계 지역(New Territories)에 침실 1개짜리 공간의 매수 가격은 뉴욕 상류층이 사는 어퍼 이스트사이드(Upper East Side)에 있는 방 2개짜리 아파트와 같다”고 설명했다.

홍콩의 거리 시위. (사진=BBC)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지난 5년간 48% 올랐다. 현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에서 집을 사려면 근 21년 동안 가구 수입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밴쿠버에서는 이 기간이 12.6년, 런던에서는 8.3년이다. 서울은 6년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임대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홍콩의 임대료는 샌프란시스코, 뉴욕, 취리히의 비슷한 크기의 집 임대료보다 높다.

집세 또한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오늘날 15평 아파트의 월세는 300만 원이 넘고, 10평 정도의 아파트도 250만 원이다. 이 때문에 등장한 것이 이른바 '닭장방'이다. 사람 1명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새장 같은 공간이다. 뉴욕타임즈는 홍콩의 집값은 지난 10년간 3배 이상 올라, 서민들은 몸만 누울 수 있는 2평 남짓에 쪽방에 월급의 대부분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66만4000달러(약 7억 원)으로 기껏해야 주차장 한 구역을 살 수 있다는 뉴스도 있다.

홍콩의 닭장방. (사진=가디언)
홍콩의 닭장방. (사진=BBC)

칠레 정부 역시 최근 최저임금을 월 35만 페소(약 56만 원)로 인상했다. 칠레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795달러(약 93만 원) 정도다. 그런데 한 보고서에 따르면 산티아고의 원룸 아파트(외곽의 원룸)의 월세는 399달러(47만 원)다. 산티아고 안쪽에 있는 방 3개짜리 아파트의 월세는 800달러(약 94만 원), 교외에 있는 같은 방 3개짜리 아파트의 월세는 669달러(약 78만 원)다. 나이 든 노동자까지 이처럼 높은 집세를 내느라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천정부지로 뛰는 부동산가격이 빈부격차의 심화를 불러온다는 점은 놀랍지 않다. 미국 덴버대학교 정치학과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도 “이러한 형태의 시위는 최근 꾸준히 늘어왔다”며 “젊은 세대의 분노의 중심에는 ‘향후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좌절이 있다. 그들이 민주적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정부를 변화시킬 수단은 거리 시위가 유일하다고 믿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저서 ‘시민저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전체 인구의 3.5%가 꾸준히 비폭력 집회를 이어가면 어떤 정권도 버틸 수 없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집값은 소득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올랐다. 홍콩과 산티아고는 그 정도가 가장 심한 사례에 속한다. AT는 이에 대해 “문제는 그러한 주택시장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마땅한 다른 자산시장의 부재다”고 짚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이례적으로 낮게 유지했다. 근 20조 달러 규모의 국채가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오랫동안 이 정도 규모로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경우 자금은 부동산으로 몰린다. 통화정책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금융자산은 ‘큰 손’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 기간 동안 노동생산성은 위축되었다. 임금상승속도보다 부동산가격의 상승이 어느 때보다도 빨랐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금융위기 이전 사상 최고치였던 주택보유율이 현재는 1960년대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북유럽의 중앙은행장들은 현재 부동산 거품을 우려한 나머지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AT는 “단순 소득 재분배 정책은 산티아고나 홍콩 시위대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부동산 자산 보유자에게 유리하기 마련인 ‘게임의 룰’이다. 이 경우 노동의 생산성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실질임금 상승을 뒷받침해줄 자본 투자처의 문제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