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구두를 벗고 넥타이를 풀러야죠”
젊은이가 야단치면 ‘그렇군요’ 굽히고
자존심 내려놓고 돈 욕심 버려야
대전대 국문과 교수의 은퇴 후 삶은

[데일리비즈온 심재율 기자]  “사람들이 은퇴하면 할 일은 없고, 사회에 나오면 알아주지 않고, 은퇴충격으로 죽었다는 소리를 많이 하는데 나는 그런 걱정 하나도 없어요.”

한상수 교수는 2003년 8월 31일 대전대 국문학과 교수에서 은퇴했다. 벌써 17년이 됐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도 사진 찍으러 다니고 시집을 내고 또 자원봉사를 하러 다닌다.

사진작가들이 부르면, 강원도 삼척 간다면서 새벽 한두시에 출발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새 공기를 맛보고 새 사람들 만나면 삶의 기쁨이 쌓인다. 거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글로 쓰니까 시간이 모자란다.

(사진=한상수 교수)
한상수 교수

한 교수가 보기에 은퇴자는 대략 세 종류로 나뉜다. 
할 일 없어서 방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높은 자리에서 활동하던 사람일수록 은퇴 후 움직이기가 더 어렵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나 교장 또는 군수 구청장 국회의원 같이 여러 사람을 지휘하던 사람들이 더욱 어렵다. 물건을 구입할 때도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종업원의 태도가 못마땅해서 야단치거나 호령하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다. 

두 번째는 공원이나 마을놀이터, 경로당을 지키는 은퇴자들이다. 

이런 틀을 벗어나 전국을 돌면서 할 일을 찾아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교수는 “방안을 지키는 사람들이 제일 단명하다. 교수들도 10년을 못 넘기고 간다”고 말했다. 활동할 것이 없고, 그 전처럼 받들어주지도 않는다. 공원에서 운동하려고 해도 괜히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다.
오래동안 몸에 밴 이 습관을 버리는 것이 은퇴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구두는 던져버리고 운동화신고, 넥타이는 아주 특별한 날만 매고, 다른 사람들이 금방 알아보지 않게 운동모자 하나 쓰세요.”

편한 복장이 때로는 시험꺼리가 되기도 한다. 양복입은 친구와 식당을 가면, 친구에겐 공손하게 놓는 수저도 나에게는 툭 던지는 것 같다. 은퇴자는 그것에 적응해야 한다. 

시집 '은퇴 이후'를 들고 있는 한상수 교수
시집 '은퇴 이후'를 들고 있는 한상수 교수

 


그래서 그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시집 제목도 ‘은퇴 이후’라고 쓰니까 사람들이 더 주목했다. 시집 제목도 가로로 길게 뉘였다. 

그의 두 번째 시집도 벌써 나왔다. ‘은퇴자의 노래’가 제목이다. 시집하면 고상한 소재를 가지고 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1부는 은퇴하고 먹으러 다닌 이야기를 담았다. 맛집 이야기에 간간이 사진 한 컷도 곁들인다. 

올해에 벌써 아동문학 동화집 ‘그리운 메아리’를 냈고, 동시집 ‘산새들새의 노래소리’ 마지막 교정이 끝났다. 은퇴 이후 그는 사진작가로도 데뷔해서 국전에서 5번 입선하는 성과도 거뒀다. 장애인전에서 상도 타고 작년에는 인물전시회도 열었다. 

젊은이가 야단쳐도 ‘미안하다’ 숙여

한번은 음식이 맛있어서 더 달라고 했는데 하필이면 욕쟁이 식당 주인은 “주는 대로 먹으면 되지”하고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그럴 때 한 교수는 얼른 잘 못했다고 수그린다.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놓아주면, ‘고맙습니다’ 공손하게 사의를 표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자존심을 내려놓는 게 참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한 교수가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건이 있다. 은퇴 후 얼마 되지 않아 한번은 병원을 방문했다. 그런데 얼음공주 같은 여직원이 환자들이 몰리다보니 차갑고 사무적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었다. 신장내과 앞이었다. 투석자도 몰리고, 접수자도 몰렸다. 

“기다리세요.” 한 번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 정도 더 기다려야 합니까?” 두 번째 펀치가 날아왔다.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얼음공주의 거듭된 말에 두 번이나 당하고 나니 부아가 치밀었다. 이 아가씨 가르쳐줘야지, 내가 할아버지 뻘인데, 다른 병원으로 가야지 다짐하면서 한 방 먹였다고 생각했다. “아가씨 인민군 소대장 같아. 친절하게 하면 안돼?”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던 상대는 말을 안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젊은 아가씨가 ‘인민군 소대장’이라는 말 속에 든 의미를 제대로 이해는 할까? 무슨 사정이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니 게속 후회가 됐다. 이 오래된 기억은 한 교수의 마음을 내내 불편하게 했다. 그 불편한 마음은 한 교수가 빨리 꺾이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한 교수는 “젊은이가 야단쳐도 ‘미안하다, 감사합니다’고 해야죠.”라고 조언한다. 은퇴자는 우선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가 가장 많이 버린 것은 우선 신분. 대학교수라는 것을 자기 스스로 써 본적이 없다. 그냥 놀고 있는 실업자라고 소개한다.

(사진=한상수 교수가 찍은 가을 계곡 사진)
(사진=한상수 교수가 찍은 가을 계곡 사진)

두 번째는 사회적인 직위를 버려야한다. 가르치려 들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한다. 내가 아는 지식이 많아도, 상대방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도 ‘예 알겠습니다’고 숙이는 것이 좋다. 
세 번째는 돈을 버려야한다. 조금 이익이 보인다가 낚아채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 안 좋다.
 

막 은퇴한 사람을 위한 한 교수의 조언은 이랬다.

1. 집을 나와라.
2. 취미를 닦아서 기쁨을 누리는 것을 찾아야.
3. 과거와의 단절 – 과거 벼슬을 생각하지 말라.
4. 돈을 생각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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