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과 EU의 통상협정 협상이 재개되었다. (사진=KBS뉴스)
미국과 EU의 통상협정 협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진=KBS뉴스)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일단 마무리되는 모양새를 갖추자, 다른 쪽에서의 갈등이 판을 키우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통상갈등이다.

지난 1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의 일시적 합의를 선언했다. 전반적으로 양 쪽 모두 체면치레는 했다는 평이 중론이나, 여파가 가시기도 전인 14일 미국은 스카치 위스키나 프랑스산 치즈 등 75억 달러(약 9조원)에 해당하는 유럽산 제품의 수입 제한조치를 단행했다. 항공업체 에어버스에 대한 유럽연합(EU)의 불공정 보조금 지급에 대항한 조치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그러나 이를 둘러싸고 미국이 중국과 유럽을 대하는 조치가 상반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같은 통상분쟁이지만 해결방법은 다르다는 목소리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통상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국제법 이외의 수단에 의존했다. 중국도 레벨 플레잉 필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경쟁적 관세부과을 포함한 미중 무역전쟁이 본질적으로 국제법상 침해요소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유럽과의 불법보조금 문제는 철저히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룰 안에서 움직인다. 트럼프의 이번 유럽연합을 향한 재제조치 역시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적다. 

트럼프와 시진핑. (사진=BBC)

파이낸셜타임즈(FT)와 홍콩 영자지 아시아타임즈(AT) 등 주요 외신은 무역전쟁의 합의를 통해 중국은 미국 농산물 상당부분은 매입할 것이며 해외투자 문제와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해 재검토할 것임을 시사했다. 대신 미국은 당초 10월 15일로 예상되었던 징벌적 관세부과를 중단할 것임을 선언한 상태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최근의 공격적인 정책들이 역사상 그 어느 정부의 대중정책에 비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실제로도 조기 합의가 불가능하리라는 컨센서스를 뒤집고 서로가 납득할 만한 합의점에 도달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분쟁을 조기에 정리했다는 점에 비추어 생각해보자면, 지구 건너편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럽연합과의 통상분쟁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은 다소 의아하다.

미국은 실제로 에어버스가 유럽연합 각국으로부터 불공정 보조금을 받고 성장해왔다며 줄곧 비판해왔다. 그러나 유럽 역시 같은 논리로 미국이 방위비 일부를 보잉에 투자해 ‘불공정 경쟁’을 펼쳤다며 맞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AT는 이에 최근 기사를 통해 “EU는 조만간 WTO로부터의 승인을 얻고 미국 상품의 유럽 내 수입을 금지할 방침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에 대해 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는 상태이다.

(사진=에어버스)

◆ 트럼프의 ‘포럼 쇼핑’ 과연 효과적일까?

트럼프의 속내는 무엇일까? AT는 “이른바 포럼 쇼핑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포럼 쇼핑이란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는데 있어서 다수의 국가 또는 주(州)재판소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재판소를 취사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가장 유리한 중재자를 고르는 과정이다.

물론 국지적으로는 다툼이 있지만 미국은 워낙 유럽과는 기본적으로 경제나 안보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관계를 구축했고, 중국과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대응 전략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그 말도 틀리지는 않지만 사실 미국과 유럽의 갈등 쟁점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악할 수 있다. 에어버스의 보조금이 국제통상법을 위반하였는가? 그렇기 때문에 미 행정부에서는 차근차근 법리를 검토해가며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하지만 모두가 주지하고 있다시피 중국과의 갈등은 그 결이 다르다. 광범위하고도 골치아픈 문제들이 여럿 엮여있다. 지적재산권 문제부터 중국정부의 통화조작문제까지 하나하나 심플한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더군다나 트럼프 정부는 무역전쟁의 이유로 늘 중국과의 무역불균형 문제를 언급해왔지만, 무역불균형은 애초에 국제법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토록 원인에서서부터 목표까지 국제사회의 룰로부터 무관한 통상분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장기적으로는 미국에 유리할 것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럼 쇼핑에도 대가가 따른다. 공정한 게임의 룰과 진입과 배제 없는 자유시장경제는 미국이 구축하고 조성해온 게임의 룰이었다. 미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레벨 플레잉 필드를 걷어찼다. 말하자면 개싸움에 뛰어든 셈이다. 그러나 개싸움은 언제나 그렇듯이 목소리 크고 부끄럼 없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자신은 깨끗하다고 자부해온 미국이 얼마나 더 더러워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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