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으로부터 완전히 물러난 유럽
-각자도생의 길 찾고 있지만 쉽지 않아
-오늘날의 유럽에게 보내는 충고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트럼프의 북시리아 미군철수 결정, 터키의 쿠르드 공격. 미국과 유럽 간의 유대관계가 점차로 사라지고 있는 명백한 증거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최근 IS 테러리스트들이 혼란을 틈타 쿠르드족의 수용소에서 탈출할 수 있다며 경고하고 있다. 이들은 필연 다마스커스로 향할 것이고, 이로 인한 혼란은 불가피하다. 쿠르드족은 이에 러시아와 그들의 생존과 관련된 ‘거래’를 시도 중이다. 이는 필연 모스크바의 일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이제 시리아 분쟁과 이란과 사우디의 최근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영향력을 획득했다. 포린 폴리시(FP)는 이를 두고 중동 일대의 세력 균형은 러시아의 손에 달렸다고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미국과 러시아, 터키와 쿠르드의 정치동학 속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미국은 소련의 몰락 이후 유럽의 전략적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토는 1990년대까지는 제 구실을 할 수 있었는데, 안보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유럽과 유럽이 엇나가지 않기 바라는 미국의 염려가 합쳐진 결과다.

그 후 9·11 테러가 있었다. 당시 유럽은 나토 조약 제 5조를 발동했는데, 해당 조약은 한 동맹국에 대한 공격은 모든 사람에 대한 공격이라는 내용을 명시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조항이었다. 미국의 적은 곧 우리의 적이라는 인식이자, 점차로 멀어져가는 미국을 붙들어 놓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당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한술 더 떠서 나토의 중요성을 한 층 더 격하시켰다. 그는 일찍이 “임무의 여부가 동맹을 결정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영구적인 동맹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음을 시사했다. 오바마 당시에도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부시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럼스펠드 미국 전 국방장관. (사진=UPI)

최근 미국이 유럽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가 트럼프 대통령이다. 2016년 대선 당시 그는 나토 전 총리가 ‘독재적’이라고 맹공격했다. 거기다 그는 유럽인들은 동맹국이 아니라 경제적 경쟁자라고 주장했다. 올해에는 아예 그는 “EU가 중국보다 나쁘고, (유럽은) 단지 중국보다 작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이전부터 공개적으로 EU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브렉시트를 누구보다 환영한 것도 그였다. 그것은 미국이 더 이상 유럽 안보의 궁극적인 보증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사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양자 간 관계가 ‘호시절’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트럼프가 저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니 더 이상은 방법이 없다는 투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우리 유럽인들은 정말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유럽의 주권”이라는 개념의 열렬한 옹호자이다.

유럽인들이 “유럽 이익”의 정의에 동의함으로써 전략에 대한 접근법을 재발명하고 집단적으로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 한 이러한 선언들은 공허한 말로 남을 것이다. 이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FT는 최근 기사를 인용해 “적어도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시리아에 파병된 미군. (사진=픽사베이)

FT는 현재 유럽의 안보전략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유럽의 수호 같은 추상적인 구호 등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유럽군’이라는 통합 군대는 유명무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FP 역시 추후 유럽 안보의 두 핵심 국가는 프랑스와 영국이 되리라고 보았다. 영국은 실제로 브렉시트를 통해 ‘유럽연합의 선임파트너’보다 ‘미국의 후순위 파트너’를 택하는 모습을 보였다.미중 무역전쟁이나 미러 갈등에서 유의미한 존재감을 뽐내고 싶다는 야심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시리아 사태에서 보듯이, 유럽은 일대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FT는 이어 나토가 유명무실해진 것은 첨단기술이나 금융, 사이버 보안 등과 같은 비공식적 권력이나 안보요소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달리 말하자면 유럽은 신기술에서 뒤처졌다. 달러화의 지배와 통상제재로부터 벗어날 아무런 수단이 없다면, 향후 유럽은 분명히 러시아, 중국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EU 수준에서 보다 강력한 산업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마지막으로, 그 동안 자유민주주의, 연방주의, 인권, 경험주의에 기반한 가치들은 나토의 권위를 보강해주는 기초와도 같았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가치들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유럽은 이러한 가치들의 부활과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FT는 “시리아의 비극은 지정학적 이익뿐만 아니라 국가적 가치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고 짚었다. 유럽이 자기결정권과 인권을 수호하는 중재자로 군림했다면, 오늘날 일대에서 이토록 소외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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