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급격한 동유럽 각국
-낮은 출산율과 심각한 인력유출이 그 이유
-구조개혁 필요하지만 가능성 낮아

동유럽 제조업에 부는 변화의 바람.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어느덧 30년이다. 과거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유럽 국가들은 지난 30년 간 서유럽이 지향하던 시장경제가치와 제조업 가치사슬에 편입되려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조업 기지인 독일로부터의 용이한 접근성과 저렴한 노동력, 친기업적인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동유럽 경제의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전방위적인 임금인상이다.

폴란드가 대표적이다. 총리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는 폴란드 경제를 상징했던 ‘저렴한 노동력과 낮은 인건비’ 위주의 경제구조를 탈피하고 싶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왔다. 폴란드는 지난 2004년 유럽연합(EU)에 편입된 이래 독일의 제조공장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다소 의외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최저임금을 2023년까지 최대 78%까지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집권여당이 산업정책에서 꽤나 보수적인 정당에 속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의아한 일이다.

폴란드의 임금 수준은 동유럽 기준으로도 이미 꽤나 높은 상태다. 우리 돈으로 7000원 수준이다. 거기에 추가적인 최저임금 인상시도가 최근 여러차례 이루어졌다.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집권하기 전부터 시간당 2250즈워티(약 7000원)에서 4000즈워티(약 1만2000원)까지 올리겠다고 이미 공약이 되어있는 상태다. 이것만으로도 약 60% 인상이다. OECD 기준으로 유례가 없는 임금 상승폭에다 현실화될 경우 임금 자체도 최상위권이다. 78%까지 임금이 상승할 경우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을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상당할 전망이다.

최저임금에 한해서는 최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임금수준은 유독 동유럽에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체코도 그러한 나라 중 하나다. 체코의 현재 실업률은 2퍼센트 남짓이다. 작년 기준으로 노동자 1명당 생산량은 단지 1.5% 증가한데 비해 전체 임금수준은 8% 늘었다. 폭스바겐의 자회사인 스코다는 체코 전체의 GDP에서 무려 7%을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스코다의 직원들의 임금수준은 작년기준으로 12%나 늘었다.

헝가리의 아우디 공장도 마찬가지다. 올해 한 차례의 파업이 있었는데, 파업 직후 임금이 18%나 올랐다. 헝가리의 아우디 공장은 유럽 내 상용차 공장 중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사측으로서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이 중론이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그리고 불가리아의 시간당 노동비용(사측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에 기타 부대비용을 더한 값)도 작년과 올해 사이 10% 넘게 올랐다.

이 같은 임금인상의 배경으로는 노동수요가 노동공급을 크게 추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동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심각한 인력유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낮은 출산율은 덤이다. 기업 입장으로서는 노동력에 이어 내수소비시장을 잃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저렴한 노동력으로 ‘독일 제조업의 첨병기지’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헝가리의 아우디 공장. (사진=아우디)

물론 임금인상을 나쁘게만 볼 이유는 없다. 노동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올라갈 것이고, 한편으로는 저렴한 노동력에만 의존하다 경쟁력을 잃어온 부실기업이나 좀비기업들이 한바탕 정리되는 기회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그럴듯하다. 각국 정부들이 앞다투어 임금인상을 약속하며 한편으로는 나름대로의 산업구조개편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동유럽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능력 차이는 서유럽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며 “좀비기업들이 노동력의 효율적 활용을 가로막고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로도 인구구조 변화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동유럽 경제 전반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손색이 없다. FT는 최근 기사를 통해 이 현상이 가장 심각한 폴란드의 경제는 ‘극한 부진의 터널을 지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중소기업들이 이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파산할 것이라는 것이 주요 이유다. 유럽중앙은행 역시 “일각에서는 창조적 파괴를 주장하지만 현실은 창조를 채 입에 올리기도 전에 전부 파괴되고 말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최근 기사를 통해 동유럽이 대학과 연구기관에 투자되는 예산이 부족함을 꼬집었다. 동유럽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인력의 ‘고급화’와 고부가가치 서비스 개발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에서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잘 해온 것을 갑작스레 버리기는 쉽지 않다. 가령 슬로바키아의 자동차공장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아직까지도 독일 노동자들의 그것을 크게 웃돈다. 거기다 최근 몇 년간은 중소기업들이 제조업 경기를 부양하고 있는 모양새라 갑작스레 산업 구조 전반에 큰 변화를 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결책 역시 현재 상황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체코의 총리 안드레이 바비스는 늘 체코의 금융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외국계 금융사들을 비판한다. 그들이 자국민들을 착취한다는 비난 아닌 비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도 최저임금을 올리며 “임금인상의 효과가 국민들의 지갑까지 이어지지 않는다”고 꼬집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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