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 중국 비즈니스 ‘정치적 리스크’ 확대

휴스턴 로킷츠의 대표선수 제임스 하든. 휴스턴 로킷츠는 과거 중국의 스타플레이어 야오밍이 뛰었던 구단이자 오늘날 중국자본이 가장 활발하게 오가는 곳 중 하나다. (사진=nba)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고 여기는 미국의 기업이 중국과 홍콩 간 민주화를 둘러싼 갈등에서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 NBA 단장의 홍콩을 지지하는 트윗 하나로 전 미국이 홍역을 앓고 있는 와중에, 유명 게임사 블리자드의 최근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를 둘러싼 조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 홍콩에게 자유를, 우리 시대의 혁명을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 청응와이(활동명 블리츠청)는 6일 대만에서 열린 ‘하스스톤 그랜드마스터즈’ 3일차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인터뷰를 하던 중 ‘홍콩에게 자유를! 우리 시대의 혁명을!“이라고 외쳤다. 이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에서 촉발된 민주화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시위대들이 외치는 구호이기도 하다. 홍콩 시위대의 상징인 고글과 방독면을 쓰고 있던 청응와이는 이 구호와 함께 장비들을 벗어 던지기도 했다.

주최사인 블리자드는 즉각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블리자드는 즉각 “해당 발언은 블리자드와는 관계없다”라며 그의 대회 참가 자격을 1년간 박탈했다. 대회 상금도 몰수되었다. 해당 경기 중계진과도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는 블리자드의 처사에 대해 날 선 비판이 오가고 있다.

우리 시대의 혁명이라는 뜻의 스프레이 페인트가 적히고 있다. (사진=나일 보위 사진가)
우리 시대의 혁명이라는 뜻의 스프레이 페인트가 홍콩 길거리에 적히고 있다. (사진=나일 보위 사진가)

시작은 미국프로농구(NBA)에서부터였다. 인기 팀 중 하나인 휴스턴 로키츠의 대릴 모리 단장이 4일 트위터에 “자유를 위한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선수들까지 중국에 머리를 숙여야 했다. NBA 측도 성명을 내고 “깊은 상처를 입은 중국 팬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국 정치권 내에서 다시금 이 사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깊어지자,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7일 “누구나 자신의 견해를 밝힐 자유가 있다“며 모리 단장을 두둔했다.

애플도 예외는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은 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앱스토어에서 홍콩 경찰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홍콩맵라이브’(HKmap.live)를 삭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앱은 홍콩 시위대가 경찰을 피하는 데 사용되었다. 애플은 “이 앱이 현지 법을 위반하고 경찰과 거주자들을 위태롭게 한다”고 말했으나, 홍콩맵라이브 측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명백히 홍콩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구글 역시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이용자들이 홍콩 시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 ‘우리 시대의 혁명’을 지운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개발자들이 심각하게 진행 중인 분쟁이나 비극 등 민감한 이벤트를 이용해 게임으로 돈벌이를 하려는 것을 금지하는 내부 정책에 따라 이 앱을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 차이나 머니는 놓칠 수 없어 

지난해부터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하고, 홍콩의 민주화 시위까지 겹치면서 중국은 자국 정부에 비판적인 외국계 기업, 제품에 대해 압박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거대 시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업은 자연히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가 되었다. 글로벌 패션브랜드 자라나 홍콩 캐세이퍼시픽 등도 자사 직원들이 홍콩 시위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중국 대륙서 보이콧을 당했다.  

중국의 보복 조치 역시 발빠르다. 중국의 관영방송 CCTV와 IT업체 텐센트는 NBA 시범 경기 중계를 보류했고, 로키츠를 후원하던 중국 기업들은 후원 중단을 선언했다. 중국의 한 매체는 “NBA를 후원하는 중국 기업 25곳 중 18곳이 NBA와의 협력을 중단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9일에만 NBA 중국 스폰서 25곳 중 11곳의 중국기업이 협력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NBA의 경우 중국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매년 10억 달러(약 2조원), 중국의 NBA 시청자는 연간 6억 명에 달한다. 특히 휴스턴 로케츠는 2000년대 초반 당시 중국 최고 농구스타 야오밍을 영입하면서 중국에서 최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중국의 NBA 시청자 수가 미국 인구(약 3억명)보다 훨씬 더 많다 보니 중국을 대체할 시장을 찾기 어렵다. 이번 사태로 인해 NBA에서 뛰는 선수들의 연봉이 1인당 평균 20% 줄어들 것이란 관측까지 나왔을 정도다.

홍콩시위 및 인권운동을 옹호하는 홍콩출신 하스스톤 선수 블리츠 청. (사진=유튜브)

블리자드는 과거 프랑스 통신회사 비방디로에서 매각되는 과정에서 텐센트를 중심으로 한 중국 자금이 상당액 유입됐다. 또 애플 역시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중국은 애플에 단일 국가로는 미국에 이어 2위 시장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뉴욕타임스(NYT)는 예로부터 중국에서 사업하는 글로벌 기업에 '3T(티베트(Tibet), 대만(Taiwan), 톈안먼(Tian'an men))'를 논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다며, 최근 홍콩 시위 사태 등으로 정치적 리스크가 커진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꼬집었다.

미국에서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IT 업체가 중국 기업과 소비자들을 화나게 할 위험은 줄었지만 중국 본토 외의 국가들로부터의 비난은 면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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