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파푸아의 시위
-다종족 국가의 숙제, 모든 인종이 평등한가?
-파푸아 인들은 아직도 독립을 원한다.

인도네시아 형법개정에 반대하는 시민들. (사진=bbc)

인도네시아의 시위가 연일 지속되고 있다. 시위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일각에서는 홍콩의 수순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형법 개정 및 부패방지법 개정 반대 시위가 격화되어 수 만 명이 거리에 나서고 있으며, 집계된 사상자만 300명에 달하며 시위 중 사망한 대학생들에 대한 분노가 가중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형법 개정 및 부패방지법 개정 반대 시위 외에도 각 지역 단위의 문제가 제기된다. 모든 문제가 중첩되어 치안상태는 더욱 혼란스럽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달 14일 칼리만탄 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문제가 발생했다. 그로 인한 연기로 주민 15만 명이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였다.

지난달 26일에는 6.5 규모의 강진이 말루쿠제도의 암본섬과 스람섬 사이에서서 발생하였고, 강진 이후 현재까지 총 1105번의 여진이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거기에다 현재 파푸아 인들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인도네시아 전역을 휩쓸고 있다. 이에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총리도 강경대응을 시사하고 나섰다.

◆ 파푸아, 인종차별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다.

자유를 외치는 파푸아인의 시위의 발단은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월 16일 수라바야에 위치한 파푸아 출신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 앞에서 국기가 망가진 것을 본 사회 단체원들이 파푸아 출신 대학생을 구금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8월 17일은 인도네시아의 독립 기념일이기 때문에, 전날 국기가 훼손되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였다.

파푸아에는 현재까지도 파푸아의 독립을 주장하는 독립파푸아조직이 존재한다. 이들은 과격행동 단체로써 정부의 예의주시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국기가 훼손된 모습을 본 인도네시아인들은 사건의 배후에 독립파푸아조직이 있으리라 추측했다. 독립 기념일을 전후해 확대될 우려가 있는 이들의 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기숙사를 급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무런 제지가 없었던 경찰과 군인들의 모습에 파푸아 시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시위가 점화되면서 기숙사를 포위하고 둘러싼 경찰 및 군인들과 파푸아 대학생들 간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대치 상황 속에서 경찰 포위대 중 한 명이 파푸아 대학생을 향해 ‘원숭이’ 라고 부르는 영상이 유포되자 파푸아 시민들의 분노는 절정에 이르렀다. ‘원숭이’ 라는 단어는 인도네시아에서 굉장히 심한 욕을 의미한다. 동시에 파푸아 인들이 사람으로 진화하지 못한 짐승이라고 폄하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 학생들이 지난달 31일 북수마트라 메단시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몸과 얼굴에 파푸아 독립의 상징인 아침의 별(bintang kejora) 국기를 몸에 그리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파푸아 인들은 해당 사건을 두고 인종차별 발언을 넘어 ‘인종혐오 발언’ 이라고 규정했다. 대규모 시위가 뒤따랐다. 그리고 시위는 곧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대부분은 인종차별 발언을 문제 삼았으나, 일부는 나아가 파푸아 독립을 요구하는 모양이다. 파푸아 여러 도시의 관공서가 불에 타고 사상자가 속출하는 등 시위가 점점 거세지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무분별한 정보 유포를 우려해 인터넷을 차단했다. 이어 군과 경찰 인력을 파견해 소요사태를 진압하고 있는 상황이다.

◆ 파푸아 인들은 왜 독립을 외치나

이번과 같은 대규모의 소요사태 뿐만 아니라 파푸아에서는 크고 작은 시위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무장 게릴라 단체인 독립파푸아조직의 과격성을 배제하고도 파푸아인 개개인들의 마음에 독립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파푸아는 인도네시아와는 별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네덜란드로부터의 식민지배를 겪었다는 공통점은 있다. 그러나 1942년 인도네시아의 지배권은 일본에게 넘어갔고, 1945년 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여 파푸아에 앞서 주권국가가 되었다. 

이후 1963년 네덜란드는 뉴욕협정의 결과로 유엔 임시 집행 국으로부터 서(西)파푸아 지역의 지배권을 인도네시아로 양도하였다. 1969년에 시행된 주민들의 ‘자유선택행동’ 이라 불리는 독립여부 찬반 투표를 통해서다. 투표 결과 찬성 측이 우세함에 따라 파푸아는 곧 인도네시아 영토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파푸아 인들은 이 주민투표가 민주적인 방법으로 행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군의 감시아래 중앙정부가 선출한 일부 대표만이 투표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파푸아는 인종적으로도 대부분 인도네시아인과 구별된다. 300여개의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국가이지만, 이들 종족 대부분이 오스트로네시아인 으로 구성되어있다. 이와는 달리 파푸아인은 태평양의 멜라네시아인에 속해 오스트로네시아인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거기다가 파푸아는 이슬람 문화권이 주를 이루는 인도네시아와는 달리 기독교 문화가 융성하게 자리잡았다.

마노크와리에서 차량에 불을 지르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파푸아 인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뉴기니주는 주권국가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거기에다 이들은 현재 인도네시아 국장에 새겨진 비네카 뚱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 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이념아래에 주류사회 속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꾸준한 인종차별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 시위에 나선 대부분의 증언이다. 

실제로 천혜의 광물 보고로 불리는 파푸아는 역설적이게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꼽힌다. 다국적 기업과 군부, 부패한 공무원들의 무분별한 자원 개발과 수탈로 이한 결과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들의 시위가 독립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들의 시위가 매번 진압되어 온 것처럼 조코위 정부의 입장 역시 강경하다. 반정부주의자에 대한 강경대응을 지시하면서 최대 인력을 동원하여 시위 진압에 나섰다. 그리고 현재 93명의 파푸아인이 반정부혐의로 피의자 선상에 올라가 있다.

글: 하영지, 인도네시아전문가

지역전문가이자 인도네시아 전문 통/번역사이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인도네시아 문민정부의 출범과 그 이후에 대해 연구 중에 있다. 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인도네시아 진출에 요구되는 이문화와 어학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