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사업자가 진입하기 힘든 산업
-대만이 위스키로 성공한 비결

대만에서 위스키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블랭튼)

[데일리비즈온 서은진 기자] 위스키의 역사는 1000년이 넘는다. 한 전설에 따르면 위스키는 아일랜드의 한 고승이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다 증류기술을 발견한 후 본국에 소개한 데서 시작되었다. 그 덕에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서로가 위스키의 ‘원조’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스코틀랜드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이다. 스코틀랜드는 19세기 이래 최초로 대규모 제조를 시작했다.

증류 기술은 그 후로 전 세계에 전파되었고,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현재는 위스키 시장의 패권이 대만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낯설지 않다. 실제로 대만이 본격적으로 위스키 제조를 시작한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아직 시장점유율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최근 대만은 세계 유수의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한편, 수백만의 고급 브랜드를 생산하는 생산지로서도 이름을 높이고 있다. 홍콩 영자지 아시아타임즈(AT)는 최근 “세계 위스키 시장은 세분화되고 있다”며,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시장지분을 쪼개 가져가는 형태”라고 내다봤다. AT에 따르면 대만이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2018년 기준으로 위스키 시장규모는 약 580억 달러(우리 돈 약 70조 원)에 달하며, 유의미한 점유율을 차지한 대기업으로는 조니워커로 유명한 영국의 디아지오, 일본의 산토리, 그리고 잭다니엘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의 브라운포먼을 들 수 있겠다.

◆ 위스키 소비패턴 변화

흔히 위스키를 마실 때, 위스키의 스펙이나 이름값을 보는 경향을 무시할 수 없다. 신규 브랜드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다. 훌륭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쌓아가는 단계에서부터 고민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제조사는 ‘믿고 마실 만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하기 위해 아일랜드의 고승이 지중해에 다녀오는 길에 비기를 발견했다는 식의 스토리텔링을 도입한다. 또는 술 이름에 가족들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젝다니엘이니, 조니 워커니, 제임슨이니 하는 식이다. ‘전통이 있다’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좋은 마케팅 전략이다.

그러나 위스키를 제조하는 방법 자체는 수 세기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증류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는 제조사들에게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다. 가령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 위스키는 숙성되는 데 최소한 3년이 걸린다. 대부분은 5년까지 충분히 뜸을 들인다. 다른 산업과 비교해 현금흐름이 원활치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대규모 투자 없이는 사업 확장도 원활치 않다. 

영국의 유명한 셰익스피어 증류소. (사진=셰익스피어증류소)

주류를 숙성시키는 데 드는 비용도 엄청나다. 산토리는 매년 숙성과정에서 우리 돈으로 약 3조 원을 투입한다. 디아지오는 4조 원에 육박한다. 브라운포맨의 숙성비용은 무려 10조 원이 넘는다. 모두가 대체로 한해 매출의 15%에서 20%을 숙성과정에 투입한다. 소규모 사업자들도 통상적으로 15%를 생각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규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위스키가 숙성되고 있을 동안에도 스타트업은 확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증류시설을 확충하고 가동하는 데에는 보통 40억에서 60억 원이 소요된다. 수익이 나기 시작하는 시점은 못해도 10년 후다. 위스키가 숙성되고 나서 시장에 나오고, 현금이 회수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모두 고려한 결과다. 그러니 다른 소규모 제조사들이 위스키가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진이나 다른 백화주에 눈을 돌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진은 일반적으로 일반적인 위스키보다 숙성과정이 짧다.

◆ 대만의 의미있는 성공

그렇기에 대만의 성공스토리는 흥미롭다. 대만과 양조 사업은 이전부터 썩 어울리는 한 쌍은 아니었지만, 최근 세계 유수의 주류 및 양조대회에서 대만 소속의 기업들이 우수한 성적을 휩쓰는 광경은 제법 의미심장하다. 물론 대만은 아시아 주류의 큰 손인 중국, 일본, 한국 등과 인접해있으며, 자국 내에서도 주류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 점을 감안해도 대만의 가파른 성장세는 놀랍다는 것이 AT의 분석이다.

대만 최초의 증류공장은 2006년에 문을 열었다. 산업특성상 대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는 없었지만 몇몇 위스키 제조사들은 그럭저럭 안정적인 성장세를 구사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 과정에서는 대만의 무더운 기후가 한 몫 했다는 평가다. 열대기후에 가까운 습하고 더운 날씨 덕에,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와 비교해 숙성 기간이 두 세배는 빨랐던 덕이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기후가 덥고 습하다는 말은 알코올의 증발도 빠르다는 이야기다. 통상적으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위스키가 숙성과정에서 알코올이 2%에서 3% 정도 증발된다면, 대만의 위스키는 적게는 5%, 많게는 10%까지 날아가 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현금화’는 대만 위스키시장의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현금이 빨리 도니 산업의 성장이 빨랐고, 유동성 부족도 그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발란 위스키. (사진=카발란)

대만에서 현재 가장 잘 나가는 두 기업으로는 카발란과 타이완담배주류공사(TTL)을 들 수 있다. 카발란 위스키는 대만 식음료유통기업인 킹 카 그룹(King Car Group)의 자회사에서 생산된다. 한해 매출은 약 6000억 원에서 1조 원에 달한다. 2006년에 설립된 증류시설은 한 해 900만 병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통상적인 소규모 공장의 경우 한 해 1만 병에서 2만 병을 생산하는 정도니, 카발란이 시장영향력이 대강은 짐작된다. 

한편 TTL의 증류시설은 2008년 설립되었다. 카발란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확장하기 전까지는 담배와 주류 양측에서 독점적 시장지위를 누리기도 했었다. 카발란이 최근 대만 현지 업체들에게서 잇따라 투자를 받으며 사세를 넓히고 있다면, TTL은 공기업인 만큼 투자나 현금흐름 등 통상적인 문제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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