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당시의 모디 총리. (사진=bbc)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9월 28일에 열렸던 유엔총회에서 뜻밖의 언사를 건냈다. “타밀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니...”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도 다소 의외라는 평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힌디어가 아닌 남부지역어인 타밀어를 언급할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다. 인도의 공용어는 대표어(語)인 힌디와 영어를 포함해 20개가 넘는다. 애초에 연방국인 인도의 주(州)간 경계가 언어를 기준으로 설정되었으니 힌디어 이외의 언어를 쓰는 지역민들은 주 안에서 통용되는 지역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언어가 인도 정치사회에서 의미하는바 또한 역사적으로 남달랐다. 

반면 타밀어는 그 중에서도 다소 특별한 위치에 있다. 가장 일반적인 힌디어의 역사는 근대를 전후해 대단히 짧은 편에 속하지만, 인도 최남단 타밀나두 주를 중심으로 널리 쓰이는 타밀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에 속한다. 라틴어나 산스크리트어가 독자적인 구어(口語)로 생존하는 데 실패했지만, 타밀어는 아직도 광범위하게 쓰인다. 거기에다 영국 식민지시절 동남아 각국으로 타밀인들이 이주한 덕에 오늘날 타밀 인구는 8000만 명에 달한다. 당장 스리랑카 및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인도계 주민을 만난다면 타밀인이겠구나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대표적으로는 구글의 CEO인 순다르 피차이가 타밀인에 속한다.

◆ 흔들리는 타밀어 자부심

타밀인들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은 남다르다. 60년대에 힌디어 사용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거리의 힌디어 간판을 모두 떼어버리고 시위에 나선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타밀인들도 요즈음에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일이 흔하다. 타밀어를 쓸 일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프리랜서 기자 라자 머피에 따르면 “타밀인들은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모국어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흥미로운 일화 하나를 전한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늘 타밀어가 ‘신들의 언어’라며 타밀어를 쓰는 일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를 늘 전달했다“며 ”집에 오면 아버지는 늘 우리 집에 찾아오는 아버지의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영어로 대화했다. 아울러 내가 얼마나 영어에 능숙한지를 늘 자랑하셨다“고 회고했다.

타밀어 문자체계. 자모음이 200개나 될 정도로 읽고 쓰기 복잡한 언어에 속한다. (사진=유튜브)

실제로 오늘날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타밀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영어로 사고한다. 타밀나두에서 태어나고 자란 데다 타밀어가 모국어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낯선 현상이 아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타밀어가 일상생활에서 쓰일 일이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밀어를 쓸(writing) 일이 적다는 뜻에 가깝다. 타밀어가 모국어인 라자 머피 역시 “모국어이지만 사실 타밀어를 쓸 줄은 잘 모른다”며 “어머니에게서 편지로 오면 답장을 쓰면서도 입으로는 타밀을 외지만 막상 손으로는 알파벳을 적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타밀나두에서 산지는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몇 마디의 타밀어 정도는 입에 붙어있다. 대개는 희멀건 외국인이 타밀어로 더듬더듬 물건을 주문하는 모습을 재미있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뽐내는 투다. 가령 내가 타밀어 몇 마디를 건내면 그 대답으로 ‘닝갈 타밀 테리우마?’가 아닌 ‘두 유 언더스텐드 타밀?’이 나오는 식이다. 머피도 아시아타임즈(AT)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요즘 타밀인들은 유별나게 영어를 섞어서 말한다”고 부연했다.  

◆ 영어를 잘하면 또 모국어가 문제

실제로도 타밀인들은 영어 잘 한다는 인도인들 중에서도 영어를 잘 하는 민족에 속한다. 다른 지역에 방문해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언어 이야기는 늘 빠지지 않는다. 타밀나두에서 왔다고 하면 바로 타밀어 좀 할 줄 아느냐고 묻는 식이다. 타밀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할 때도, 못 한다고 말할 때도 있었지만 못 한다고 말할 때마다 늘 따라오는 이야기 역시 “그래도 거기 사람들은 영어 잘 하니까 불편함은 없겠네”라는 식이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타밀인들이 영어를 잘 하게 된 이유로 ‘힌디어에 대한 반감’을 꼽는다. 50년대 이후로 중앙정부가 힌디어를 각 지방의 지역민들에게 강요한 이후로 ‘만일 전인도 국민이 하나의 언어를 써야 한다면 차라리 영어를 쓰겠다’고 밝히고 나선 맥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힌디어에 대한 반감은 일대의 정치적 불안요소로 작용했다. 흔히들 ‘페리야르’라고 불리는 쇼비니즘적 정치지도자의 등장도 이 무렵이었다.

실제로 타밀나두라는 주 이름도 애초에 ‘타밀인들의 국가’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보니 정체성 강한 지역민들을 가뜩이나 마뜩찮게 보는 집권여당인 인도인민당(BJP)의 지도자들은 요새 타밀나두라는 주 이름을 아예 ‘타밀 마니일람’이나 ‘타밀 프라데삼’ (안드라 프라데시, 히마찰 프라데시 등 다른 주 이름의 말미에 붙는 ‘프라데시’와 같은 의미이다)으로 바꿔야한다는 논의를 펼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논의에는 타밀시인인 수브라만야 바라티의 유명한 구절, “나는 첫 번째로 인도인이요, 두 번째로 타밀인이니...” 등이 늘 따라붙기 마련이다.

첸나이 도시전경. (사진=아고다)

중앙정부의 우려는 잠시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오늘날 타밀어에 대한 자부심은 이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현재에는 마드라스(타밀나두의 옛 이름) 바샤이라는 피진(혼합어)도 타밀나두의 주도인 첸나이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추세다. 타밀 표준어에 힌디어 약간, 그리고 영어가 섞인 짬뽕 언어다. 첸나이 북쪽의 해안마을이나 외국인 및 외지인 등 여러 사람을 접하는 운전기사들을 중심으로 마드라스 바샤이가 확산되고 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머피도 이와 같이 ‘타밀 정체성’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 중 하나다.

서양에는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다. ‘밤새 주기도문을 외면서도, 새벽이면 마리아가 예수의 사촌이라 한다니...’라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나 기독교인이요 하는 교인을 놀리는 말일 것이다. 이에 머피는 몇 개 단어를 바꿔 “밤새 라마야나를 읽으면서 라마를 시타의 사촌이라 말하다니...”라며 더 이상 타밀어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아하는 타밀인들을 비꼬았다.

라마야나는 인도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이며, 주인공 라마는 시타의 남편이다.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부부 한 쌍을 몰라볼 인도인이야 어디 있겠냐마는, 정작 타밀인들의 땅에서 타밀어를 읽고 쓰지 못하는 타밀인들이 늘어간다는 현상은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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