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전성관계 금지 등 민주주의 후퇴 법안으로 반발
- 조코위의 재취임 저지 목적이 배후라는 목소리도
- 전국 규모의 시위로 장기화될 조짐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인도네시아의 시위가 점차 가열되어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다. 수도인 자카르타는 물론이고, 족자카르타, 반둥, 말랑, 발릭파판, 사마린다, 뿌르워케르토 등 인도네시아 크고 작은 섬 전역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10월 20일로 예정된 조코위 2기 정권의 취임식이 한 달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연일 도시 곳곳은 시위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다. 저마다 시위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다. 불안정한 시국에 따라 조코위의 취임일정 역시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 무슬림 율법으로 다스려지는 종교 재판소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국가임에도 이슬람, 개신교, 천주교, 불교, 힌두교, 유교 등 6개의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하여 믿을 수 있는 ‘선택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세속주의적 관점으로도 해석된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에는 여느 무슬림 국가처럼 종교 재판소가 존재하는데, 이 종교재판소의 판결은 이슬람 율법을 근간으로 한다. 그렇기에 이슬람 율법을 위배하는 행위도 형법에 근거해 처벌될 수 있다. 2017년 신성모독을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 받은 자카르타 주지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무슬림 율법이 실제로 공권력에도 영향을 끼치는 사례로 설명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종교의 자유가 실제로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치인들은 늘 형법 개정을 바라왔다. 애초에 현행 형법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전유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신정부가 내놓은 개혁안은 되려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는 평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국가기관과 상징, 대통령 및 부통령을 모욕하는 행위는 처벌받을 수 있으며, ◇ 혼전 성관계는 종교 형법아래 1년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아울러 ◇ 혼외 동거는 6개월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으며, ◇ 의학적 소견, 강간 등의 사유가 없을 시 낙태는 최대 4년의 징역형에 처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외에도 혼외성관계, 동성애 금지 법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역행하는 행위이자, 세계 여성인권의 최하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도네시아의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거리로 나온 학생들은 여성들의 기본권 보장과 개인의 자유권 보장을 위해 해당 발의안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잠비 지역에서 살수차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 병력들. (사진=CNN INDONESIA)

◆ 시위 과격 진압으로 민주주의 역행 우려

형법 법안 발의와 맞물려 인도네시아 의회는 지난 17일 부패척결위원회(KPK)의 독립성 및 권한을 약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관련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수사 기간의 제한이 없었던 KPK의 개정 법안에서는 수사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소속 수사관은 정부 인사로 구성하게 했다. 수사 지역 역시 자카르타로 한정하는 등 26개의 조항에 거쳐 KPK의 권한을 대대적으로 축소하려 하였다. 

조코위 정부에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특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길거리 시위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부패에 앞장서고 젊은이들의 입장에 공감할 것이라고 믿었던 조코위 개인에 대한 배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시위가 격화됨에 따라 정부 측의 과격한 진압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달 26일, 시위 도중 끈다리의 할루 올레오 대학교에 재학 중인 2명의 대학생이 숨졌다. 또한 임산부가 유탄에 맞는 등 과격 시위로 인한 사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함에 따라 과격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위 도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생을 옮기는 경찰 (사진=KompasTV) 

◆ 조코위 정부의 입장은?

우연찮게도 조코위의 취임이 한달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다. 이에 여당 측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위의 배후에 조코위의 연임을 반대하는 야당 세력이 무력시위를 기획, 조장했다는 의혹을 재기한다. 시위의 장기화를 바라는 야당으로부터 고용되어 시위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그러나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인도네시아의 지난한 민주주의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왔음을 강조하며 소문을 일축한다.

그럼에도 이번 시위가 조코위의 연임과 여태까지 그가 쌓아온 정치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대개는 기존 기득권 정치와는 거리가 멀고,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이미지에 금이 갔다는 평가에 동의한다. 어떻게 보아도 서민대통령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해당 법안은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보수적이거나, 부패에 악용될 여지가 크며,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와도 상충하는 측면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조코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갈린다. ‘본디 조코위는 부패한 사람이었고 시민들은 속았다’라는 관점과, ‘기득권 세력에 조코위는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는 분석도 있다. 어찌되었든 양측 모두 조코위에게 실망했음이 여실히 나타난다.

반면 조코위 대통령의 반응은 의연하다. 다만 시위가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할 것임을 당부했다. 그는 한편 발의된 형법안에 대한 보류 및 재검토를 요청하였으며 이미 통과된 법안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글: 하영지, 인도네시아전문가

지역전문가이자 인도네시아 전문 통/번역사이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인도네시아 문민정부의 출범과 그 이후에 대해 연구 중에 있다. 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인도네시아 진출에 요구되는 이문화와 어학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