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의 명분과 이면

홍콩 시위의 지도자로 알려진 조슈아윙. (사진=bbc)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올해는 중국 건국 70주년을 맞는 해다. 중국인에게는 특별할 수  밖에 없는 해다. 마오쩌둥이 천안문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공식 선언한 날이 10월 1일이다. 이에 중국은 10월 1일을 국경절로 정하고, 다양한 경축행사를 열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특히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을 세계 만방에 알리려 했다.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것이다. 아웅다웅하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어쨌든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특히 이번 열병식에는 59개 제대의 병력 1만5000여 명에 군용기 160여대, 군용 장비 580대가 투입되었다. 스텔스 전투기인 젠-20과 젠-10, 젠-11B 등과 로켓군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 등 첨단 무기도 등장했다.

열병식이 열리는 베이징과 홍콩까지는 약 2000㎞가 떨어져있다. 지난 몇 달간 홍콩시내를 후끈 달구었던 외국인송환법 논란은 일단락되었어도, 시민들 대부분은 아직 횃불을 내려놓지 않았다. 홍콩의 민주화시위였던 ‘우산혁명’ 5주년 시위도 공교롭게도 중국 건국절 행사와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우산혁명이라는 말은 시위대가 경찰이 쏘는 최루탄을 우산을 펼쳐 막은 데서 비롯됐다. 그렇기에 그들 또한 이번 건국절 행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그러니 ‘일국양제(한 국가 두 시스템)’을 둘러싼 갈등 해결 역시 당분간은 요원하다. 

다만 5년 전 우산혁명이 대체로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이어졌던 것과 달리 전날과 이날의 시위는 경찰과 시위대의 격렬한 충돌 양상으로 전개됐다.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역시 행정장관의 직선제 실시로 대표되는, 더 많은 ‘정치적 자치권’ 요구다. 이에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해산에 나섰고, 시위대는 도로 곳곳에서 최루탄과 벽돌 등을 던지며 맞섰다.

이에 대해 최근 홍콩의 중화인민대학 교수인 윌리 람은 홍콩영자지인 아시아타임즈(AT)에 “문제의 근원은 홍콩의 베이징에 대한 불신”이라고 짚었다. 그녀는 이어 “그들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시진핑이 주석 자리에 오른지 6~7년 동안 베이징은 홍콩을 전 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일국양제라는 시스템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산을 들고 시위를 이어나가는 홍콩 시민들. (사진=CNN)

람 교수는 “홍콩 시민들의 요구는 결국 언론자유, 사법독립, 그리고 법치주의다”라며 “이러한 가치가 중국의 권위주의적 시스템에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AT역시 최근의 보도를 통해 “중국의 행정적, 문화적 간섭이 홍콩 시민들의 분노를 유발했고,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 강화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 본토의 공산당과 언론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홍콩인들에 대한 혐오 유발과 정치적 선동에서 드러난다는 주장이다.

홍콩대학의 통계에 의하면 53%의 시민들이 스스로를 홍콩인으로 여긴다는 조사도 있었다. 오직 11%만이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정의했다. 이와 더불어 71%의 응답자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나’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18세에서 29세 사이의 응답자 중 90%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국제관계 분석가로 활동한 톰포디는 최근의 갈등에 대해 “홍콩인들은 이를 정체성 갈등으로 내다보고 있다”며 “그들은 홍콩을 본토와는 독립된 정치적 공간으로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격화되는 정치적 긴장에 대해서는 “정체성 충돌이 가장 큰 이유다. 홍콩인들은 그들의 시민사회적 특성과 문화가 본토의 그것보다 우월하다고 여긴다”고 분석했다. 톰포디 연구원은 아울러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는 표어 역시 이러한 태도에서 나왔다고도 부연했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홍콩의 본토에 대한 우월감이라고도 해석된다. 

하지만 람 교수는 톰포디 연구원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몇몇 사람들만이 그렇게 생각할 뿐”이라며 “다수의 시위대와 활동가들은 홍콩이 단지 본토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홍콩인들은 그들이 ‘본토화’되어가는 것에 저항할 뿐이다. 베이징이 신장과 티벳을 핍박해 마침내 그들을 동화시켰듯이, 홍콩 사람들은 그들이 신장과 티벳과 같은 신세가 되어가는 것을 우려할 뿐”이라고도 해석했다.

실제로 젊은이들은 본토의 위협을 ‘실제적인 위협’이라고 느낀다. 홍콩은 당초 중국와의 합의에서, 2047년까지 특별행정구역으로 남아있을 것임을 합의했다. 람 교수는 “젊은이들은 이 날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시대의 혁명이라는 뜻의 스프레이 페인트가 적히고 있다. (사진=나일 보위 사진가)

람 교수는 “홍콩인들이 본토와 정말로 다르다고 느끼게 된 현상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며, “베이징은 최근 이데올로기, 미디어, 인터넷, 그리고 사기업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강도를 최고수준으로 올렸다”고 주장했다. 반면 람 교수는 홍콩인들이 실질적인 독립을 원할 가능성은 적다고 보았다. 람은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내다봤다.

톰포디 연구원은 반면 중국의 권위주의적 통제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보다는 ‘아시아의 부상’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오늘날 홍콩시민은 누구보다도 경제적 수준이 높고 교육 수준 또한 남다르다. 이미 눈높이는 서구 국가들이 지향하는 가치에 맞추어져 있는데, 중국은 그들이 따라야 할 이상향으로부터 너무 멀리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서 <시스템 균열: 1997년부터 현재의 홍콩 정치경제학>을 집필한 영국 작가 사이먼 카트리지는 2016년 지방선거에서 우산혁명에 힘입어 당선된 이들의 상당수가 ‘강경파’에 속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현재 불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민족주의적 포퓰리즘과도 상당 부분 비슷한 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두 경우 모두 최근 여론의 흐름이 급격히 우경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아울러 홍콩의 경제상황 또한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계층이동의 가능성은 그 어느때보다도 줄어들었으며,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취업 문제 등은 늘 현지 언론의 헤드라인에 반복되고 있는 소재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는 내 집 마련으로부터 촉발된 분노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과 강경한 민족주의적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카트리지의 주장이다.  

홍콩의 닭장방. (사진=가디언)
홍콩의 닭장방. (사진=가디언)

실제로 홍콩 시위를 곁에서 지켜본 이들 역시 오늘날 홍콩 시위는 경제적인 요인을 무시하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아무래도 있는 자 보다는 없는 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시위의 특징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최근 전 세계에서 흥기를 맞이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바람이 과거 산업세대와 경제호황시기의 향수를 자극하였듯이 홍콩 역시 그러한 흐름에서 무사할 수는 없다는 분석이다. 

AT는 이에 시위에 참가한 한 51세의 남성은 “우리는 영국 정부가 다시 와서 우리를 통치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영국식민지 시절의 국기를 들고 시위에 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퍼포먼스는 식민지 시절의 향수뿐만이 아닌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환기하는 동시에, 현재 홍콩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중국을 의도적으로 망신주려는 의도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시위대의 미국에 대한 개입요청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에 대해 카트리지는 “트럼프는 홍콩시민들의 편이 아니다”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미국보다는 차라리 홍콩에 대한 영향력을 놓지 않고 있는 영국이나 기타 서방국가에 도움을 청하는 편이 낫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무역전쟁같이 실질적인 이슈와는 관계없이 서방 국가들에 의해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자유주의적 양심’에 어필하는 편이 차라리 유익하다는 분석이다.

조슈아 윙의 트위터. 시위대를 묶어놓고 총 받침대로 쓰는 홍콩 경찰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조슈아 윙 트위터)

람 교수도 이에 대해 “시위대들은 그들이 약자에 속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도덕적 명분을 획득하는 것이 현재 그들로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도움”이라고 평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이 국경절 70년을 맞아 자국의 힘을 대외에 자랑할수록, 홍콩인들에게는 그것 하나하나가 각각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실존하는 위협이든, 그들의 내적 불안감이 다른 또 하나의 형태로 구축된 것이든 간에, 본토에서 강조하는 정체성 과시를 실재하는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해졌다.

이에 카트리지는 “홍콩인들은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전에는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진단하면서도 “결국 얻어내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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