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내달 1일부터 日소비세 현행 8%→10%로 인상
-시민들, 경감세율 등 중재책 마련에도 우려와 기대

일본 엔화 (사진=pixabay)
일본 엔화.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임기현 기자] 지난 주말 일본 번화가에 곳곳에 위치한 백화점에는 사람이 크게 몰렸다. 도쿄 인근의 대형 가전제품 판매점 ‘요도바시카메라’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TV는 세 배, 에어컨의 두 배, 세탁기와 냉장고는 80% 가량 판매량이 증가했다. 대형 가전 및 고가 제품에 대한 소비가 갑작스럽게 증가하게 된 것은, 다음달 1일부터 올라가는 소비세, 즉 구매에 따른 세금의 인상 때문이다. 

◆ 늘어나는 세금, 늘어나는 부담 

일본의 소비세는 물건·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이 내는 간접세로 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아베 내각은 현행 8%인 일본 소비세를 다음달부터 10%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구매가격에 따른 세금이 2%포인트 증가하면서 실질적인 구매가격도 올라가는 셈이기 때문에 상품과 서비스 전반에 대한 가격 인상이 이뤄지기 전 막바지 소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물가의 상승은 소비의 위축을 불러일으킨다. 돈을 쓰는 것보다는 절약하고 아끼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돌아가는 돈이 줄어드니, 그만큼 경기도 위축된다. 지금까지 일본이 소비세 인상을 감행할 때마다 경기와 소비 심리는 즉각 반응해왔다.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했던 지난 2014년에는 2014년 1분기(1~3월) 약 306조엔이었던 민간 소비액이 2분기(4~6월) 291조엔으로 떨어진 바 있다. 개인소비 15조엔(약 166조원)이 줄어들었던 셈이다. 또 당시 2013년 2.0%였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14년 0.4%로 곤두박질쳤다.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일본 시민들의 고가 제품에 대한 소비가 집중되는 것도 물가 상승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소비세 인상을 경험했던 일본 시민들의 우려가 이번 ‘쇼핑 러시’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고가 제품들 뿐만 아니라, 생계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제품들에 대한 소비도 크게 늘었다. 도쿄의 한 지하철 역에서는 지하철 정기권 구매자가 급증해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 23일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의 한 매장에서 점원이 소비세 인상에 대비해 가격표를 교체하는 모습
지난 23일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의 한 매장에서 점원이 소비세 인상에 대비해 가격표를 교체하는 모습

◆ 걱정 잠재우기 위한 중재책은?

소비세 인상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과 실질가처분소득의 감소 등을 미리 우려했던 일본 정부는 다양한 중재책을 마련했다. 먼저 소비세 인상과 더불어 ‘경감세율 제도’를 함께 운영한다. 소비세 인상이 시행될 때부터 2023년 9월 말까지 시행되는 경감세율 제도는 외식과 주류를 뺀 식료품, 구독 중인 신문, 사회 서비스 등의 품목에 대해 기존의 세율 8%를 유지하는 제도다. 

한편, 2%의 인상분에 대해 카드 등 비현금 결제 시 포인트를 활용해 환원하는 제도도 시행할 계획이다. 일본 산업성과 재무성은 경감세율 적용 제품으로 분류된 식료품 등을 포함해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대상으로 해당 환원 제도를 확대 시행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물가 상승으로 인한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요인으로서, 사회보장 서비스의 확대도 언급되고 있다. 사회보장 재원의 확보는 이번 소비세 인상의 가장 주요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미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접어든지 오래인 일본의 비대해지는 사회보장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수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는 계산이다. 대신 소비세 인상으로 불거질 수밖에 없는 경기악화에 대한 부담과 불만을 늘어나는 사회 보장 서비스로서 달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아베 내각이 10월부터 3∼5세 유아교육의 전면 무상화와 저소득층 0∼2세 보육의 무상화를 시행한다고 전했다. 내년 4월부터는 소득에 따라 대학 등의 수업료 및 입학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도 도입될 예정이다. 또 65세 이상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간병보험료도 순차적으로 경감될 계획이다.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일본 잡화체인 돈키호테 매장이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세일 행사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일본 잡화체인 돈키호테 매장이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세일 행사를 하는 모습.

◆ 공존하는 우려와 기대

소비세 인상 시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향후 전망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

먼저 이번 소비세 인상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적지않게 들려온다. 일본 미즈호종합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했던 2014년, 시행 직후 크게 떨어졌던 소비 지출액은 2016년까지는 잠시 정체하다가 2017년부터는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했다. 시행 초기에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쇼크가 있을 수 있지만, 큰 우려없이 곧 정상궤도에 다시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이번 소비세 인상분은 지난 인상분에 비해 적고, 실질가처분소득의 감소를 우려한 일본정부가 시행 초기부터 다양한 중재책을 병행 시행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더해 교육 무상화 및 보험료 감축도 이어지면서 시민에게 지워지는 부담이 얼마간 덜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하지만 모든 전망이 그리 낙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선 ‘연착륙’을 위해 마련한 다양한 감세 혜택이 너무 복잡하다는 시민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더라도 그것을 편의점에서 먹느냐, 집에서 먹느냐, 현금으로 사느냐, 카드로 사느냐에 따라 소비세가 다르게 적용된다. 일본 언론은 실질적인 소비세율의 적용 폭이 10%, 8%, 6%, 5%, 3%의 5개로 너무 많고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시행 초기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또, 3%의 소비세 인상이 있었던 지난 2014년에 비해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고 불확실성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WSJ) 이와 관련해 “중국 경기 둔화 등에 따라 일본 경제지표들이 수년 만에 가장 취약한 상태”라며 “증세를 철회하고 경제 성장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올해 초까지만 해도 소비세 인상이 다시 한 번 연기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과거 소비세를 인상했던 일본 정부는 매번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았다. 1989년 3%의 소비세를 처음 도입한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은 3개월 후 참의원 선거에서 패했다. 97년 소비세를 5%로 올린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도 이듬해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물러났다. 2012년에는 민주당 집권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소비세 증세를 추진하며 야당과 함께 단계적 인상에 합의했지만, 여론은 악화돼 다시 정권을 내줬다.

일본 언론은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이번 소비세 인상을 통해 아베 내각이 ‘금단의 문’을 열었다고 평했다. 소비세 인상이 일본 경제에 어떤 실질적 영향을 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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