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 등 오지 누비는 국제학부 교수
- 대외협력에 대해 근거법 우선 강조
- ODA사업 더 활발히 이뤄질 필요 있어

김봉철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사진=김봉철교수)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개발협력사업이 이뤄지는 곳에는 현장전문가가 항상 자리한다. 탁상공론만으로는 완벽한 사업 수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현장의 전문가들이 해당 지역의 특색과 여러 조건들을 치밀하게 파악한 후에야 본격적인 개별협력 사업이 진행될 수 있다.

현장을 찾아 다양한 지역 조건들을 탐사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대학교수부터 공학 전문가, 경제학자까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다양한 관점에서 해당 지역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활발히 현장을 누비는 전문가 사이에 법학, 그것도 통상 전문가인 한 교수가 있다. FTA 및 통상 전문가이면서 라오스, 태국, 시베리아 등지를 매년 오가며 활발한 연구와 교류 활동을 펼쳐나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김봉철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김봉철 교수는 늘 ‘다양성’을 강조한다. 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봉철 교수에게 ‘오지를 누비는 통상법 전문가’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본인의 가치관을 명확히 드러낸다. 법학 교수라고 해서 책상에 앉아 자료들만 살피고 있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발로 뛰며 한국과의 협력 지점을 논의하고 연구하는 김봉철 교수, 그가 알려주는 국제협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항상 학생들에게 ODA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시지 않습니까? 독자들을 위해 ODA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공적개발원조를 뜻하는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는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개발을 요하는 지역에 경제 발전, 사회복지 증진 등을 목표로 제공하는 원조를 의미합니다. 해당 지역에 직접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형태로 ODA가 수행되기도 하지만, 지역 혹은 국제기구에 제공되는 자금이나 기술협력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ODA도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OECD 내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의 회원국을 중심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이뤄집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 DAC 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이후 국제개발협력 기본법을 제정하고 시행령을 마련하면서 제도적으로 ODA를 확립하게 됩니다.

가장 큰 특징은 원조의 수행이 국가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ODA 자금의 출원처가 각국 정부이기도 하지요. 공적자금을 활용하기 때문에 공적개발원조라 부릅니다. 원조의 형태는 여러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겠으나, 크게 무상원조와 유상원조로 나눌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무상원조는 외교부 주관 하에 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ODA 자금을 활용해 원조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유상원조의 경우 기획재정부 하에 한국수출입은행에서 EDCF(대외경제협력기금)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ODA는 양자간 원조와 다자간 원조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다자간 원조는 주로 국제기구 분담금의 형태로 이뤄집니다. 국제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형태가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양자간 원조의 경우 국가협력전략, CPS(Country Partnership Strategy)에 기반해 이뤄집니다. 원조국과 수원국 양자간의 원조 사업이다보니, 해당 국가에 대한 분석적,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국가협력전략을 세워 개발 과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실질적인 시행 과정을 해당국과 협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의 ODA가 이상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ODA 자금의 규모가 UN이 권고한 만큼에 크게 못 미칩니다. 정부 차원의 노력이 없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부족한 자금을 최대한 활용해 효율적인 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며, 기본적으로는 출자금을 지속적으로 높여가야 합니다.

Q. 우리나라의 ODA 원조기 효과적으로 쓰였던 사례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저마다 다른 상황을 가진 국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효과적인 원조란 해당 지역의 특색과 개발 과제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무상원조 집행 기관인 KOICA가 주력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개발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 효과적인 ODA의 집행에 가장 선결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효과적인 ODA의 집행을 판단하는 기준이 딱 한 가지로 정해지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여러 관점으로 사업 결과를 살피는 것이 개발 사업 평가 과정의 본질이기도 하지요. 여러 관점 중에서 적은 자금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도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KOICA 캄보디아 사무소에서 진행됐던 보건의료 서비스 사업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김봉철 교수. (사진=김봉철교수)

이 사례가 특징적인 것은, 제가 처음에 강조했던 해당 지역의 특색에 맞는 개발 전략, 그리고 수원국과의 연계가 잘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공여국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프로젝트만 추진하게 되면 자금의 효율적 운영이 어려워집니다. 사업의 혜택이 한 곳에 편중되기 쉽고 또 다른 공여 주체의 개발 프로젝트와 중복 및 충돌할 가능성도 생깁니다.

KOICA 캄보디아 사무소는 보건 당국의 취약계층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인 ‘건강형평성기금’을 관리하며 기술 지원과 함께 재정 지원을 수행했습니다. 해당 기금을 통해 전국 708개의 보건소, 후송병원, 주립병원 등에 서비스를 확대했는데, 당국의 발표를 보면 이 사업으로 공공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의 이용 건수가 사업 시행 전 대비 45% 가량 증가했습니다. 코이카 자체 평가에서 500만 달러로 250만 명의 수혜자를 도왔다고 하니, 분명 효과적인 ODA 집행 사례입니다.

Q. 매년 시베리아 지역(러시아 사하 공화국)에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지역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으신지요.

우선 사하를 찾을 때는 대학생들과 항상 함께합니다. 기존에는 학생들이 봉사활동의 개념으로만 사하 지역을 찾았습니다. 단발적으로 잠깐 이뤄지고 마는 식의 교류 활동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 지난날 보다 체계적인 양국 학생간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금은 사하 북동연방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중심으로 대학생 포럼이 자리를 잡아서 한국 대학생들이 사하를 찾았다가 사하 학생들이 한국을 찾기도 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사하친선협회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기도 한 사하에는 ‘명문’으로 통하는 사하-한국학교가 있고 사하에 위치한 북동연방대학교에는 한국학과가 있어 기본적으로 한국과의 교류가 적지 않은 곳입니다. 포럼을 통해 학생들 간의 교류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서로에 대한 관심 덕분입니다. 포럼 차 사하를 찾는 대학생들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하고, 지역적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국 학생들의 눈으로 본 사하에는 어떤 문제가 있고 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은 사뭇 진지합니다. 지난 포럼에 참가했던 한국의 한 대학생은 거리에 버려지는 쓰레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마련하기 위해 사하 학생들과 함께 고민했었습니다. 이듬해 다시 찾은 사하에서는 그 학생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수렴이라도 한 듯, 거리 곳곳마다 쓰레기통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학생들 간의 교류 뿐 아니라 사하 발전 전략 수립에 관한 지역 연구와 법적 제도적 보완을 위한 연구 수행 등을 위해서도 사하를 자주 찾았습니다. 2017년에는 사하공화국을 관통해 4000km를 넘는 거리를 흐르는 레나강 탐사도 수행했습니다. 연구를 수행하며 북극해로 연결되는 레나강 하구의 삼각주 및 항구의 개발 가능성을 타진하고 북극항로의 거점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발전 전략을 함께 논의했습니다. 다양한 지점에서의 교류를 통해 한국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사하를 찾는 주요한 이유입니다.

김봉철 교수 (사진=김봉철교수)

Q. 현재 한국의 최대 FTA 이슈는 무엇인가요?

물론 일본의 경제보복이 화제입니다. 자유무역을 약속했음에도 정치가 경제의 영역에 개입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정치적 제재뿐만 아니라 기타 비관세장벽도 유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달 초 우리 정부가 중국 상무부와 함께 논의한 ‘FTA 무역구제 협력회의’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무역구제 협력회의는 양국 무역구제기관 간 반덤핑 등 무역구제 조치 현황, 법령·정책 변동 사항 등 무역구제의 현안 합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소한 논쟁거리도 있었습니다. 중국이 미국, 인도에 이어 한국에 대한 수입규제가 세 번째로 많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산업부는 무역구제를 공정하게 적용하고 또 규제 조치를 최소화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습니다. 인도 역시 수출입규제가 심한 국가이지만, 사정이 좀 다릅니다. 무역비중이 중국만큼 크지도 않고, 인도는 애초에 자유무역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습니다. 거기에 우리와는 완전한 형태의 자유무역인 FTA에 비해 한 단계 낮은 협정인 CEPA를 채결해오고 있습니다. 

중국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중국의 대한국 수입규제는 화학·철강제품을 중심으로 모두 18건에 달합니다. 이중 반덤핑 15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1건 등 16건은 이미 규제가 적용됐습니다. 폴리페닐렌설파이드(PPS)와 에틸렌프로필렌고무(EPDM) 등 반덤핑 2건은 현재 조사 중입니다. 이에 산업부는 중국 정부가 조사하는 화학제품 2건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진행을 거듭 강조한 것이지요. 물론 재심 중인 무역규제 사항도 몇 건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반덤핑 조사 대상 물품의 결정방식, 반덤핑 조사 단계별 투명성 확보 방안 등 양측 무역구제 제도 운용과 관련된 법령과 관행 등에 대해 검토해야 합니다. 또 양국 관련 제도와 조치들이 국제규범과 관행에 부합하는지 역시 (중국과) 상호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조사 과정에서 양국의 수출기업의 권익을 보호할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그 밖에도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의 FTA 채결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Q. 국제사회에서 요즘 부쩍 우리나라의 개도국 지위를 문제삼는 모양입니다. 향후 FTA 협정 채결 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다가 원조를 주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1953년 67달러에서 지난해 3만 달러로 넘어섰습니다. 모두가 역사상 한국이 유일한 경우입니다. 워낙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개도국이 아니라는 데 심리적 저항감이 있지만 경제지표로만 보면 명백히 선진국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 정부가 개도국 지위 포기로 가닥을 잡았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정부가 제시한 4가지 조건에 한국이 모두 해당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을 택하던 우리 국익이 우선이라는 입장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이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농업분야의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됩니다. 농업분야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중요합니다. 개도국 지위를 잃을 경우 향후 협상에서는 선진국 수준으로 관세와 보조금을 대폭 감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모로 농업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농업예산 편성 기조를 보아도 우려는 해소되지 않습니다. 내년도 국가 전체 예산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비중은 2.98%에 불과합니다. 농업계에선 국가 전체 예산 대비 5%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향후 3%대를 유지할 가능성도 높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개도국 지위 포기는 상징적인 선언에 가까워 별도의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농민들이 누리던 특혜 역시 새로운 협상을 통해 결정됩니다. WTO 내 다자간 무역협상은 지지부진하고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대세라 ‘우리하기 나름’에 가깝습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세계 무역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번 개도국 지위 포기가 농업을 혁신할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향후 어떻게 될 지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Q. 확실히 일반적인 법학 교수님들과는 관심사가 다른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일단은 법대 교수가 아니라 국제학부 교수이니까요. 저는 통상 뿐만 아니라 법적 서비스(legal service)의 교류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법적 서비스의 교류가 활발하려면, 말하자면 법적 인프라가 먼저 자리잡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통상은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누리고 있는 법적 서비스의 일부분이지만, 통상이 활발히 발생하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환경과 근거법이 먼저 조성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ODA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시베리아 등 제 3국의 법적 환경에 관심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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