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미래에 설레는 에티오피아
-독재자의 망령에 시달리는 짐바브웨
-동일한 환경, 동일한 목표, 상반된 결과

에머슨 음낭가과 짐바브웨 대통령. (사진=알 자지라 방송)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짐바브웨의 독재자로 유명했던 로버트 무가베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의 망령’은 아직도 짐바브웨를 짙게 감돌고 있다.

그의 후계자인 에머슨 음낭가과가 정치적 불안정을 해소하려 노력하지만 상황은 그닥 좋지 못하다. 무가베 시절부터 몇몇 개혁의 시도가 있어왔지만, 만성적인 식량, 원자재, 전력 부족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6월에는 정부가 한 동안 공식통화로 써 오던 미 달러와 유로 등을 폐기하고 짐바브웨 달러를 다시 도입했다. 하지만 기존의 10배나 되는 통화유출이 일어난 데다 인플레이션까지 175퍼센트에 달해, 정부는 즉각 경제지표의 발표를 중지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역시 독재자의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짐바브웨보다 정치경제적 환경은 긍정적이다. 에티오피아의 총리 아흐메드 알리는 2018년 집권하면서 선거제도 뿐만 아니라 경제 자유화를 강하게 추진했다. 산업 및 투자 측면에서 여러 규제들을 철폐했고, 인근 국가인 에리트레아와의 관계 개선도 시도 중이다. 또한 총선 당시 야당의 당수를 선관위 책임자로 임명하는 등 여러 면에서 이전 독재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에티오피타의 최근 성과는 짐바브웨와는 명백히 배치된다. 두 국가 모두 최근 지도력 교체를 겪어왔으며 경제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 하다. 물론 양 국의 지도자 역시 권위주의적 시스템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모두가 여당이 오랜 세월에 거쳐 집권해 왔으며, 군부는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서도 알리는 음낭가과와는 달랐다. 그는 최근 여당인 에티오피아 민중혁명민주전선(EPRDF)과의 과감한 결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반면 음낭가과는 군부의 지원으로 인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군부는 현재 음낭가과의 개혁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총리 아흐메드 알리. (사진=알 자지라 방송)

◆ 희망이 넘치는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의 정치적 변화는 2018년 2월 시작되었다. 알리가 전 총리가 사회불안과 경제상황 악화로 사임을 결정한 이후 정권을 물려받은 직후다. 알리 역시 EPRDF의 당직자 경력은 있었지만 그는 EPRDF를 끌어안고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알리가 속한 정당은 오르모스 민주정당(ODP)으로, EPRDF의 분파였다. 확실히 영향력 있는 정당은 아니었다. 

작년 6월 알리는 계엄령을 종료시키고 친정체제에 복귀했다. 이어 야당 당수인 버투칸 미데카 (그녀는 이미 이전에 배임혐의로 투옥된 적이 있었다)를 돌연 선관위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내년 예정된 총선이 공정할 것이라는 의도로 풀이된다. 동시에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에 대한 투자규제를 하나둘씩 없애 나갔다. 이 조치는 외신에게서도 크게 호평받았다. 해당 NGO들은 모두 국내의 인권과 개발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그러한 알리를 두고 ‘인권 총리’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국방부와 정보국을 대상으로 한 개혁도 대체로 환영하는 모양새다. 그는 즉각 국군참모총장과, 우리로 말하자면 국정원장을 경질했다. 이는 여당인 EPRDF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데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전부터 이들 기관의 주요 인사는 EPRDF의 주요 당직자로 채워지거나, 반대로 이들 기관에서 여당의 유력 정치인으로 편입되기도 했다. 이러한 개혁 조치를 두고 외교전문채널 포린 폴리시는 “정부와 EPRDF의 세력개편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평했다.

최근 2년 간 두 자릿수의 경제성장률이 예측되는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그는 최근 해외원조에 힘입어 적극적인 정부지출을 감행했다. 이른바 에티오피아의 자유화 정책도 빠질 수 없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지난한 경제가 국영기업의 방만한 운영에 있다고 보았다. 이에 그는 발빠르게 국영 플렌테이션과 철도의 민영화를 단행했다. 기간산업인 에티오피아 항공 역시 얼마 전 민간에 매각되었다. 이는 EPRDF에게는 큰 충격으로 작용했다. EPRDF의 이해관계자 상당수가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으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개혁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일종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물론 작년 몇몇 군 고위관계자와 정치인들이 부패혐의로 투옥될 때에는 여당과 총리 지지자들 사이에서의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총선 당시에는 그의 개혁을 탐탁지 않게 여긴 여당 당직자들과 지지자들이 충돌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치고 2명이 살해되기도 했다. 최근 6월에는 군 참모총장이 그의 경호원에 암살당했다. 며칠 후에는 암하라 지역의 주지사가 지역 유지들의 공모 하에 난도질당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 지역유지들은 후에 EPREF의 전 당직자들로부터 일종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알리 총리의 가두시위를 환영하는 시민들. (사진=BBC)

EPRDF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에티오피아 항공이 매각될 당시 당력을 집중해 총공세에 나섰지만,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에티오피아 시민의 적극적인 반발에 막혀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개혁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정부에서 EPRDF와 정부 간 세력균형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필시 지방정권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지방 정치인들이 영향력을 쥐고 더 많은 자치권과 심지어는 분리독립을 위한 자금을 양 족에 댈 위험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창 개혁을 추진 중인 정부 측에 불편한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에티오피아는 각 민족 집단이 지방에서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연방국’이지만 각 지방정부는 대체로 EPRDF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여전히 우울한 짐바브웨

반면 짐바브웨의 상황은 에티오피아와 사뭇 다르다. 에초에 음낭가과는 무게바의 심복이었다. 그의 특별보자관을 거쳐 2014년 부통령에 임명되었다. 음낭가과는 짐바브웨의 정당-군부 간 밀월을 대표하는 핵심 인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전 시기 무가베는 돌연 음낭가과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 지도력에 대한 대중의 비판에 대해 음낭가과를 희생양으로 삼아 돌파하려는 노림수로 해석되었다. 이에 무가베는 명품사치로 유명한 아내 ‘그레이스’ 무가베와 아프리카국민애국전선(ZANU-PF)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리고 음낭가과 대신 아내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위한 공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로버트 무가베의 아내인 그레이스 무가베. 로버트 무가베의 비서 출신이자 41세 연하다. 명품쇼핑을 즐겨 퍼스트 쇼퍼 혹은 구찌 그레이스 등으로 불렸다. (사진=bbc)

그러나 그러나 올해 9월 6일, 무가베가 돌연 사망하자 음낭가과는 그레이스에 대한 쿠데타를 감행, 정권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음낭가과 역시 무가베의 그림자를 지우는 데 주력했다. 시장경제로 전환하고 국제사회와의 소통 창구를 늘리고자 했다. 음낭가과는 늘 “기업하기 좋은 국가가 될 것이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가져왔듯, 짐바브웨도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러 외신은 현재의 짐바브웨는 무가베 당시보다 더욱 지독한 권위주의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한다.

선거 역시 유명무실하다. 2018년에는 총선이 열릴 기미가 보였다. 그러나 선거유세가 시작된 지 하루 만에 군부가 6명의 비무장 시위대를 학살하면서 선거는 무기한 중지되었다. 포린 폴리시는 이를 두고 “이 곳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유가 상승을 두고 일어난 올해 2월 시위에서는 17명이 공안 당국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음낭가과는 오늘날에도 개혁을 말한다. 그러나 자유화를 위한 진지한 움직임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짐바브웨의 지난한 민주주의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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