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집이 있다면 출산율이 오를까?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최진영 기자] 흔히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집을 구하기 힘들어서’라는 점을 꼽는다. 실제로 서울의 일반적인 아파트가격은 일반 직장인의 봉급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라섰고, 이 점에 있어서는 다른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확실히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마련된다면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유리한 점이 많다. 집값이 10%오르면 출산율이 1.3%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영국에서 1995년에서 2013년 사이 등기소에 보관된 2400만 건의 매매기록을 전수 조사한 결과, 집값이 오르면 임차인들의 출산율이 떨어지지만 집주인의 출산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임차인의 연령대가 더 낮고, 전체적으로도 수가 많다보니 전체 출산율은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홍콩은 살인적인 집값으로 유명하다. 홍콩의 평균 주택 가격은 3.3㎡(평) 당 1억 원에 달하고, 홍콩 주요 지역의 고급주택(40평 이상) 평균 거래금액은 80억 원이 넘는다. 또 홍콩 전체 주택의 평균 거래금액은 14억 원으로 단연 세계 1위다. 취직 후 번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면 집을 사기까지 서울은 5.9년, 뉴욕은 6.1년인데 홍콩은 18.1년이 걸릴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집세 또한 천정부지로 오르고 이다. 오늘날 15평 아파트의 월세는 300만 원이 넘고, 10평 정도의 아파트도 250만 원이다. 이 때문에 홍콩 서민의 주거방식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닭장방'이다. 닭장방은 대개 사람 1명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새장 같은 공간을 말한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홍콩의 집값은 지난 10년간 3배 이상 올라, 서민들은 몸만 누울 수 있는 2평 남짓에 쪽방에 월급의 대부분을 쓰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가격 급등세가 잦아들고 있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 같았으면 주택 한 채를 사고도 남을 66만4000달러(약 7억 원)으로 기껏해야 주차장 한 구역을 살 수 있다는 뉴스가 보도될 정도였다.

홍콩의 닭장방. (사진=가디언)

◆ 싱가포르 “모든 국민들은 집이 있어야 한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같은 도시국가인데다, 낮은 출산율로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 이유로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과 물가에 주목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홍콩과 달리 싱가포르는 상대적으로 일찍 문제의 심각성을 깨우쳤다. 주택정책과 현금보조를 통해 파격적인 출산장려 정책을 피고 있다. 모든 가구에 주택을 공급하려는 정책이 그 예이다.

과거 리콴유 전 총리는 1965년 말레이 연방에서 의도치 않은 독립을 맞게 되자, 급박한 안보 위기와 종족 분쟁을 해결하는 데 전력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질적인 인종 갈등(중국계와 말레이계 사이)이 문제가 되었다. 그것이 말레이시아로부터 싱가포르가 축출된 이유이기도 했으니 리콴유 총리는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 신생 독립국가에 징병제를 도입하기 위해 ‘모든 가구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사진=sbs뉴스)

즉 도심 유권자들이 대체로 반정부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만약 도시민들이 모두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다면 파괴적 폭동을 일으키거나 여당에 반대 표를 던질 유인이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거기다가 징병제로 인해 징집될 군인들에게도 명분을 만들어 줘야 했다. 만약 군인 가족이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병사들은 부자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위해 도입된 것이 HDB(Housing & Development Board)라는 기관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존재했던 빈곤층을 위한 도시계획 기구를 대체했다. 이에 리콴유는 1960년 HDB를 개편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저가 주택을 짓도록 지시했다. 1964년에는 구매자들에게 낮은 금리의 15년 상환 조간으로 HDB 주택을 분양하도록 했다. 독립 이후에는 더욱 적극적인 정책으로 이어졌다.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중앙후생기금(CPF)의 적립비율을 늘리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모인 기금에서 HDB 계약금과 나머지 잔금을 20년 동안 분납할 수 있도록 했다.

CPF의 비중도 계속 증가했다. 80년대 중반에는 임금의 50%(피고용자 25%, 고용자 25%)까지 높아졌다. 현재는 피고용자 20%, 고용자 17%로 37% 수준이다. 엄청난 수준의 강제 저축정책을 통해 리콴유는 주택 보급을 늘리고 은퇴 후를 도모하도록 하는 한편, 사회 안정과 함께 정부 재정의 사회복지 지출 증가를 억제하려고 했다. 

◆ 정부의 ‘세세한 간섭’은 장단점 공존

사실 싱가포르 국민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혜택이다. 도심 지역의 침실 3개 딸린 HDB 아파트는 약 30만 싱가포르달러(약 2억7000억 원)에 달하지만, 소득비례에 따른 정부보조를 받는 생애 첫 구입자는 약 7만5000달러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덕분에 생애 첫 구입자들은 주택자금 상환 부담이 소득의 1/4을 넘지 않는다.

무엇보다 HDB 아파트는 담보설정이 금지되어 있어서 구입자가 아무리 곤궁하다 한들 집을 잃을 일이 없다. 오직 HDB만이 주택 할부금 청구가 가능하다. 개인의 CPF 계좌에서 여유자금이 있다고 해도 HDB 구입비용을 지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HDB 아파트에 대한 가수요를 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거기에 부모 집 근처에 HDB 아파트를 분양받게 되면 추가 할인도 해준다. 노인복지 부담을 줄여보기 위한 유인책으도 이해된다. 부모 공양이 충분하지 못하면 자식을 고소할 수 있는 싱가포르다운 정책이다. 

HDB 아파트. (사진=HDB)

물론 파격적인 가격 혜택 이면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존재한다. 우선 분양을 받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3~4년을 기다려야 한다. 거기에다 HDB가 판매하는 아파트는 엄밀한 의미로 완전한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99년 장기 리스계약이다. 99년 이후에는 소유권이 유지되느냐 하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초기에 분양된 아파트의 경우 이제 50년도 남지 않은 문제다.

일반적으로 잘 언급되지 않는 문제들도 있다. 특히 싱가포르 정부가 출산율 제고를 위해 생어 첫 구입혜택을 기혼자들에게 몰아주다 보니 독신자들은 아파트 분양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35세가 되어서도 독신이면 신청자격이 주어지지만, 그 전까지는 별 수 없이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 그렇다보니 게이 커플이나 혼외 자식을 둔 싱글맘의 입주도 어렵다.

재산권의 행사에서도 제약이 있다. 99년 리스의 문제도 있지만, 당장 자기소유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HDB의 인가를 받지 않고 세를 주가 되면 집에서 쫓겨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더군다나 당초 정부에서는 HDB 아파트를 소유한 노인의 경우, 은퇴 후 아파트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거나 판매하고 더 좁은 아파트로 이사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기대하며 기존 아파트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젊은이들이 선호할 만한 아파트를 공급하는 데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싱가포르 국민의 85%가량이 우리나라의 웬만한 중산층 아파트 못지않게 깔끔하고 세련된 공공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평수도 23평에서 시작해 33평, 41평, 56평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하나, 방 4개나 5개짜리 중형아파트가 전체의 90%에 달한다. 17~21평이 주류를 이루는 우리나라 임대주택과는 천양지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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