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접어들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페미니즘이 지구촌 사회의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올랐다. 과거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단체 행동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차별의 운동장은 기울어진 채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지금은 구호를 외치는 자나, 그것을 바라보는 자나 전과는 많이 다르게 페미니즘을 느끼고 경험한다. 페미니즘이 그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정치 경제 사회 대중문화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의 깃발은 펄럭인다. 

페미니즘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향상된 여성의 자각과 가치관과 취향, 그리고 그들의 노동과 소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대중문화 시스템 속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페미니즘을 경제적·기업적·대중문화적 측면에서 생각해보는 연재를 10회 싣는다.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

‘악마도 사랑한’ 프라다 그룹은 신상품을 론칭할 때 독특한 마케팅을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바로 그 상품과 관련한 글쓰기 공모전이다. 창업자의 외손녀이자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입은 건 세상을 향해 당신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패션은 그 자체로 언어다.”(What you wear is how you present yourself to the world. Fashion is an instant language.)
프라다의 패션 철학은 ‘나쁜 취향’과 ‘지적 매력’으로 정리돼 있다. 그게 프라다 스타일이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이 아닌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한때 공산당원이었고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인권에 앞장섰다.

옷의 운명은 보여지는 것과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보여준다는 건 나를 표현하는 행위다. 그때의 옷이 바로 내 ‘스타일’이다. 스타일의 어원은 옷이 아니었다. 기원전 이집트인들은 말린 파피루스 식물에 갈대 끝을 뾰족하게 깎아 그림이나 글자를 썼다. 그걸 ‘스타일러스(stylus)’라고 했다. 그 말이 발전해 글 속에 드러난 작가의 문체를 ‘스타일’이라고 불렀고 패션 용어로 굳어졌다. 어원에서 보더라도 옷과 글은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이다. 결국 ‘스타일’이란 옷을 ‘잘 입고, 못 입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생각과 취향이 담겨있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이다. 

코코 샤넬은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영원하다(Fashion fades, style remains the time)”는 명언을 남겼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당신이 당신을 정의하고, 옷 입는 방식과 생활방식으로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했다.

표현으로서의 패션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자주 이용된 아이템은 바로 티셔츠다. 스테이트먼트(statement) 티셔츠, 슬로건(slogan) 티셔츠라고 한다. 그 원조 격은 체 게바라 티셔츠다. 프랑스 68혁명 때 파리 대학생들은 체 게바라 얼굴이 프린팅 된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우리나라에선 한참 늦게 민주화가 이뤄진 후 체 게바라 티셔츠가 등장했다. 1964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대규모로 개입하자 ‘NO WAR’가 새겨진 반전 슬로건 티셔츠가 미국 대학가에서 크게 유행했다.

영국 패션디자이너 캐서린 햄넷이 1985년 마가렛 대처 총리가 초대한 파티에 “퍼싱 미사일 배치에 반대한다”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사진=소셜미디어)
영국 패션디자이너 캐서린 햄넷이 1985년 마가렛 대처 총리가 초대한 파티에 “퍼싱 미사일 배치에 반대한다”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사진=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1985년 영국에서는 미국의 퍼싱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영국의 패션 사회운동가인 디자이너 캐서린 햄넷은 그해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받아 마가렛 대처 총리가 주최한 칵테일파티에 초대받았다. 그녀는 파티장에 하얀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티셔츠에는 ‘58% Don’t want PERSHING(58%는 퍼싱 미사일에 반대한다)’라는 글이 크게 쓰여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때 ‘BE THE REDS’가 새겨진 붉은 악마 티셔츠의 물결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11년 뉴욕 월가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티셔츠를 이용한 집단 의사 표현의 힘을 보여줬다.

여성 지도자의 패션은 남성과 달리 흔히 정치적 행위로 해석됐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브로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사각형 가죽 핸드백은 국가의 파워와 지도자의 단호함을 상징하는 외교 무기였다.

페미니즘이 표현으로서의 패션을 지나칠 리가 없다. 패션도 페미니즘이 물결을 외면할 리가 없다. 패션이 페미니즘 대열의 선두에 선 건 당연한 일이다. 파리 패션위크 2015 봄·여름컬렉션의 피날레는 샤넬의 모델들이 ‘History is her story’라고 적힌 피켓 등을 들고 파리 거리를 재현한 런웨이에서 페미니즘 시위를 하는 장면이었다. 

2017년 보그 한국판 표지. 크리스찬 디오르가 출시한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슬로건 셔츠. (사진=보그)
2017년 보그 한국판 표지. 크리스찬 디오르가 출시한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슬로건 셔츠. (사진=보그)

2016년 명품 브랜드 디오르가 선보인 ‘We should all be feminists’ 슬로건 티셔츠는 세계적 거리 패션이 됐다. 이 문장은 유명한 페미니즘 작가인 나이지리아 출신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책 제목이다. 페미니즘 주창자인 메릴 스트립, 엠마 왓슨, 스칼렛 요한슨, 케이트 블란쳇, 제니퍼 로렌스 등이 앞 다퉈 입었다. 국내에선 배우 김혜수가 가장 먼저 인증샷을 했다. 일베(일간베스트)에 대항하는 여성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는 모금을 위해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고 찍힌 티셔츠를 만들었다. 
 
패션은 이렇게 깃발이자 피켓이자 투쟁이자 연대이자 매체가 됐다. 집단이 같은 스타일로 입으면 시대의 기호가 된다. ‘드레스 코드(dress code)’다. 회합이나 직장이나 이벤트에서 드레스 코드를 정하는 건 집단의 동질감과 연대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패션은 바로 메시지인 것이다.

어릴 적부터 백반증을 앓아 놀림을 받았으나 세계적 모델이 된 위니 할로우. 그녀 자체가 메시지다. (사진=위니 할로우 인스타그램)
어릴 적부터 백반증을 앓아 놀림을 받았으나 세계적 모델이 된 위니 할로우. 그녀 자체가 메시지다. (사진=위니 할로우 인스타그램)

메시지로서의 패션은 그 이념과 취지에 맞는 모델을 만나면서 더욱 강력해진다. 그 메시지가 패션모델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라면 더 강렬하다. 있는 그대로의 몸을 사랑하자는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운동은 과거에는 볼 수 없던 개성적 모델들을 만났다. 키 175㎝에 체중 80㎏으로 가장 유명한 미국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 애슐리 그레이엄, 어릴 때 백반증에 걸려 온몸이 반점 투성이인 캐나다 모델 위니 할로우, 희귀질환을 앓아 머리칼과 치아가 없는 미국 모델 멜라니 게이도스…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의 4대 컬렉션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메시지가 넘실댄다. 페미니즘의 기조 위에 성소수자, 장애인, 유색 인종, 이민자, 인권, 낙태, 아동 성매매, 지구 환경, 빈부 문제 등 여성들의 요구가 런웨이에서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지구촌에 번지고 있는 탈코르셋 캠페인도 메시지로서의 패션이다. 남자는 벗어도 그냥 남자일 뿐인데 여성이 벗으면 왜 이상한 여자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항의다. 와이어와 패드가 없는 새로운 개념의 브라인 ‘브라렛(bralette)’이나 당당한 노브라 패션은 편의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성 본위적 사회 규범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적 목소리다.

세계적 빅 사이즈 의류 브랜드인 레인 브라이언트의 ‘나는 천사가 아니다’ 광고 캠페인. ‘천사(엔젤)’는 섹시한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을 지칭하는 단어다. (사진=레인 브라이언트)
세계적 빅 사이즈 의류 브랜드인 레인 브라이언트의 ‘나는 천사가 아니다’ 광고 캠페인. ‘천사(엔젤)’는 섹시한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을 지칭하는 단어다. (사진=레인 브라이언트)

여성의 몸과 패션의 역사는 가림(억압)과 드러냄(저항)의 충돌사다. 이제는 드러냄이 힘을 얻고 있다. 드러냄으로써 저항하고자 한다. 기존의 패션이 강요했던 남녀차별, 섹시함과 우아함, 성적 기호로 바라보는 남성적 시선에 대한 저항이다.

과거 여성의 패션은 억압이었다. 1800년 프랑스는 특별한 의학적 이유가 없는 한 여성이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바지 착용 금지령’을 선포했다. 코코 샤넬이 1910년대에 여성을 코르셋과 하이힐과 화려한 드레스에서 해방시키고 실용적인 바지를 디자인하면서 바지의 금기는 점차 허물어져 갔다. 하지만 1980년까지도 프랑스 의회는 여성 의원들이 바지를 입고 등정하지 못하게 했다. 

여배우들의 드레스 자락이 레드 카펫을 쓸고 다니던 국제영화제에서는 최근 의식적으로 바지 정장을 입는 여배우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항공사 여승무원의 유니폼과 중·고등학교 여학생 교복에도 바지가 허용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규범은 아직도 완고하다. 기업의 면접시험에서 여성 지원자는 여전히 흰 브라우스에 검정 치마, 단정한 헤어, 옅은 화장 차림이어야 한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1995년 영화 ‘프레타포르테’(국내에선 ‘패션쇼’라는 제목으로 개봉)의 피날레 장면은 충격적이다. 기존의 패션에 대한 가장 수위 높은 저항, 그것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 모델들의 워킹이었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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