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화의 경제학] ⑫ 중남미 분권화 역사 (下)
[분권화의 경제학] ⑫ 중남미 분권화 역사 (下)
  • 박종호 기자
  • 승인 2019.08.3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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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분권화, 서로 다른 결과
-지방정부의 권한이 약한 아르헨티나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한 브라질과 콜롬비아
-멕시코는 ‘분권화의 이상적인 결과’
(사진=뉴멕시코대학)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중남미 국가들은 분권화 측면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것은 그들의 국가건설 측면에서도 관련이 있다.

독립 과정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거나, 핵심지역의 기득권들이 지방의 여러 세력을 규합해 국가를 건설하는 이른바 포스트식민시대의 주권국가(nation-state)와는 거리가 있었다. 지방의 농촌 기득권이나 토호들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하였고, 멕시코 정도를 제외하자면 상대적으로 중앙정부의 강력한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전통적인 주권국가의 개념보다는 국가연합(state-nation)의 형태에 가깝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참고 [분권화의 경제학] ⑪ 중남미 분권화 역사 (上))

대표적으로는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이 그러했다. 이들 국가에서도 중남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권한’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뉴욕주립대의 일부 연구진 같은 경우는 이들의 관계가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놓여있다고 내다봤다. 서로가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통에 지방정부의 힘이 극도로 강해진다면 국가가 붕괴될 것이고, 중앙정부가 지나치게 강해진다면 분명 지방정부를 탄압하려 들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중남미의 분권화는 지방정부의 힘이 강해진 데서 비롯되었다는 시사점을 남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가 이를 방지한다. 연방주의 연구의 대가 알프레드 스테판 교수나 웨잉가스트 교수의 경우에도 그들의 저서에서 “민주주의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신뢰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들의 분권화 역시 민주주의와 함께 진행되었다. 민주화가 분권화를 이끈 셈이지만, 분권화의 결과는 각자에게 다른 결과로 드러났다. 

◆ 분권화의 순서가 중요하다

이에 대해 툴리아 팔레티 필라델피아 대학교 교수는 “분권화의 순서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분권화 개혁이 정치적 분권화를 동반하는지, 행정적 분권화가 먼저인지에 따라 최종 결과는 천차만별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워낙 중앙-지장정부의 관계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과 가깝고, 서로가 정치적 자치권을 두고 경쟁한다. 이 상황에서 정치적 분권화가 먼저 주어진다면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최상의 결과로 이어진다. 곧바로 그들에게 필요한 예산과 지출권한을 지급받게 된다. 그리고 배가 불러지니 남아도는 돈을 사용할 ‘내역처’가 필요해진다. 이에 행정적 자치권이 따라붙는다. 지방정부의 힘이 건강한 순서로, 순차적으로 강해지는 단계를 밟게 된다.

툴리아 팔레티 필라델피아 대학교수. (사진=필라델피아대학교)

◆ 아르헨티나, 행정 자치권이 먼저

팔레티 교수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분권화는 중앙정부에 가장 협조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행정적 자치권이 먼저 주어졌고, 재정 분권화로 이어졌으며, 그리고 정치적 분권화로 마무리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녀에 따르면 1987년 진행된 행정 자치권은 오히려 중앙부처 공무원의 권한을 강화시켰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학제를 정비하고 공무원들을 임명할 권한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어디까지나 예산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행정 자치권에 수반하는 예산은 주어지지 않았고, 반대로 중앙정부의 공무원들은 재정 분권화를 방해할 효과적인 의사결정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예산에 목마른 지방정부는 결국 중앙정부에서 비정규적으로 주어지는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1987년에 있었던 지방선거가 열리기 전까지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맞서 효과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이마저도 지방정부의 권한이 효과적으로 강해지는 결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1988년에는 지방정부가 애타게 바라는 대로 재정 분권화가 이루어졌으나, 애초에 정치적 자치권이 부재했던 탓에 4년 후에는 지방정부에게 돌아가는 보조금이 삭제되기도 했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정부는 책임은 많은 데 비해, 예산은 상대적으로 적고, 정치적으로는 늘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집중화를 벗어나지 못한 아르헨티나. (사진=픽사베이)

◆ 콜롬비아와 브라질, 정치적 자치권이 먼저

그에 비해 콜롬비아와 브라질에서는 정치적 자치권이 먼저 주어졌다. 우선 콜롬비아에서는 민주화시기를 거치며 지방정부에게 많은 권한을 허용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권한은, 콜롬비아의 지역주민이 마침내 시장을 그들의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중앙정부에 맞서 그들의 목소리와 이해관계를 소신껏 내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8년 민간에서 처음 선출된 시장은 이에 그들만의 조합을 만들었고, 이는 1991년 보수당으로 하여금 더 많은 재정 분권화를 요구하게끔 압박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시장들은 같은 해 주지사를 자신들의 손으로 선출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시장 조합은 보수당에 막강한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에 보수당은 마침내 지방정부와 주민들로 하여금 주지사를 직접 선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선출된 주지사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배경을 마련해준 시장들과 손을 잡았다. 모두가 중앙정부에게 더 많은 예산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예산을 받아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특히나 브라질의 정당체제를 생각해보면 그렇다. 시장과 주지사 등 지방정부의 유력행위자들은 상원의원 선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연방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정치적 자치권을 판별하는 가장 큰 기준으로 ‘지방에서 시장이나 주지사를 선거로 선출할 권리가 있느냐’를 고려한다. 그렇게 정치적 분권화가 이루어지면 마지막으로는 행정 자치권이 남는다. 일단 예산이 주어지면 사용 내역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의 힘이 아무리 세다 한들 늘 돈을 요구하는 일에는 명분이 빠질 수 없다. 돈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행정 분권화가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교육과 헬스 케어, 이민과 관련한 자치권과 사무 이양이 동시기에 이어질 수 있었다. 

브라질도 대체로 콜롬비아와 같은 흐름을 따랐다. 1980년 그들도 주지사를 지역주민의 손으로 선출할 수 있게 뙤었다. 1982년 선출된 주지사는 이에 주민들의 뜻에 따라 중앙정부에 재정 분권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1988년 마침내 재정 분권화를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멕시코의 한 자치 커뮤니티. (사진=뉴멕시코대학)

◆ ‘두 마리 토끼’ 잡으려는 멕시코

멕시코의 경우는 조금 특별했다. 행정 분권화가 먼저 이루어졌지만, 동시기에 정치적 분권화도 동시에 시도되었다. 1980년대 초반의 행정 분권화는 우선 그 목적이 뚜렷했다. 팔레티 교수가 “발전국가를 위한 초석”이라고 평했던 당시의 개혁은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교육부에 해당하는 부서의 권한을 강화하고 교사들로 이루어진 조합을 약화시키는 데 있었다. 

이에 지방정부는 자신들만의 교육전담부서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고, 조합의 간섭 없이 중앙정부와의 더욱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1992년 기본교육에 대한 국가적 합의로 이어졌고, 지역마다 불균등했던 교육 서비스가 전국에 걸쳐 개선되는 효과를 낳았다.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로 나아갔지만 그 중에서도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긴밀한 협조가 가능해지고, 의사소통의 기회가 늘어났다는 것은 사실 지방정부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가령, 중앙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멕시코의 지방정부들은 ‘지방정부 연합체(Association of Mexican Municipalities)’ 같은 조직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각 지방정부들이 지방 고유의 이해관계를 전달하고 수렴하는 목적 하에 기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은 필요할 경우 목소리를 한 데 모으는 기능이 있다, 90년대에 걸쳐 재정 분권화를 요구할 때가 그러했다.

결과적으로 멕시코는 아르헨티나와 출발 선상은 동일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국가의 차이는 양 국가 중앙정부들의 정치적 자치권을 둘러싼 ‘전략적 선택’에 있었다. 팔레티 교수는 “오로지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치적 분권화를 끝내 허용하지 않은 아르헨티나의 승리다”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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