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사법불신
-열악한 도로인프라 더해져 교통사고 심각해
-사적 제재 두려움에 되려 뺑소니 늘어난다는 지적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캄보디아에서 시민이 직접 법규 위반자 등을 응징하는 '인민재판'이 성행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도 지난 18일 보고서를 통해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73건의 인민재판이 벌어졌고, 이 때문에 57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16명이 부상했다. 사망사건 가운데 35건은 피해자가 주술을 부리는 것으로 매도된 뒤 집단폭행으로 사망하는 이른바 '마녀사냥'인 것으로 조사됐다. 22건은 뺑소니 등을 위반한 가해자를 직접 응징한 것으로 집단폭행에는 몽둥이와 돌은 물론 흉기가 사용되었다.

보고서는 실제 벌어진 인민재판은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확한 통계가 없는 데다가 인민재판이 묵인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은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인권교육 부족 등으로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뿌리깊은 사법 불신

다수는 오늘날 캄보디아에서 성행하는 인민재판의 배경에는 뿌리 깊은 사법불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캄보디아에선 돈이 많거나 정치적 인맥이 두터운 사람이 범죄로 기소될 때마다 늘 똑같은 질문이 등장한다. 과연 그는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을까?

지난 5월 16세 소녀 인 마나 양이 일으킨 자동차 사고는 이와 같은 불신에 도화선을 지폈다. 그녀는 지난달 26일 프놈펜의 고급 주택단지인 뜰꼭에서 고급 SUV를 운전하던 중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인 마나는 아버지의 레인지로버 SUV를 몰고 가다 23세의 대학생 덤 리다를 친 뒤 차를 버리고 도망갔다. 피해자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경찰에 구금된 인 마나. (사진=cne.wtf)

​인 마나가 일으킨 뺑소니 사고는 CCTV 영상이 소셜 미디어(SNS)에 유출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CCTV에는 그녀가 과속으로 교차로에 진입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서행하던 덤 리다 군을 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중의 분노가 커지자 훈센 총리까지 사고 영상을 보았다며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인 마나를 ‘비도덕적 운전자’라고 부르며, 그녀에게 경찰에 자수하라고 설득했다. 이에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뒤인 3월 29일에 인 마나는 아버지와 함께 경찰에 출두했다. 인 마나는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과 3700달러(421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정치 분석가 스레이스로스 라이는 “사회 정의에 대한 믿음이 악화되고 있다”며 “정의는 곧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기 힘든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사법 정의에 대한 불신은 캄보디아 국민들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SNS가 이 사건의 정의로운 심판을 요구하는 통로가 된 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 (사진=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몇 년 전에 캄보디아 대학 연구원들이 작성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참가자들 대다수는 범죄 수사 경찰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참가자의 56%는 경찰과 법원이 범죄 신고 조치 뒤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정부 당국이 범죄를 해결해줄 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범죄 행위를 보고도 신고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돈’을 요구하는 일도 잦자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경찰에 아예 도움조차 요청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적 인맥이 두터운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될 경우 정의 실현에 대한 불신은 특히 더 커진다. 그는 조사를 받아도 무혐의로 풀려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4년 중부 프놈펜에서 아일랜드 국적의 한 사람이 뺑소니 사고로 숨진 사건이 일었다. 하지만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는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이후 운전자가 경찰 고위직 인사의 딸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 열악한 도로인프라

사실 ​캄보디아에서는 교통사고가 유난히 흔하다. 심지어 왕족도 예외가 아니다.

현지언론에서는 교통사고에 대한 기사가 꼭 빠지지 않는다. 2017년 한 해에만 적어도 1900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하루에 약 5명 정도가 숨지는 꼴이다. 그렇다보니 교통사고가 매년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도로안전연구소의 얼 차리야 설립이사는 2016년 현지 일간지인 ‘프놈펜 포스트’지에 쓴 글에서 “캄보디아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4건 중 1건은 뺑소니이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사망자를 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뺑소니 운전자들이 부상자를 돕거나 즉시 응급의료 서비스를 요청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중상자와 사망자 발생 확률이 모두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많은 운전자들이 사고 현장에서 도망치는 주요 이유는 사고를 내고 주변에 머물다가 목격자들에게 얻어맞을까 봐 두려워서다”라고 해석한다. 목격자들은 그들 자신이 직접 정의를 실현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피의자들은 ‘일단 도망가고 보자’는 선택을 한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 블로거인 노안 세리보스 역시 “도망가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당한다”며 “국민이 사법제도를 불신하기 때문에 직접 가해자를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3월에는 한 대학교수가 오토바이 운전자를 쓰러뜨리고 현장에서 도주했다가 목격자들에게 맞아 숨질 뻔했다. 그는 목격자들에게 쫓기다 차에서 강제로 끌려 나와 구타를 당했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목숨을 건졌다.

뺑소니를 저지른 뒤 도주하다 코사막 국립병원앞에서 10명의 성난 오토바이 무리에 잡혀 벽돌로 얼굴을 가격하는 등 무차별 폭행을 당한 캄보디아대학 썸므럿 교수 차량. (사진=bbc)

세리보스 역시 캄보디아에선 사회 정의 실현과 처벌이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인 마나의 사례는 평범한 캄보디아 국민이 권력자의 희생자가 될 때에는, 항상 훈센 총리의 개입을 원한다는 사실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빈곤층이 정의를 찾을 수 없을 때 훈센 총리는 이 나라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훈센 총리는 스스로를 평범한 캄보디아 국민들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중재자의 이미지로 덧칠하고 있다.

◆ SNS에 퍼지는 가짜뉴스

그러나 인 마나 사건은 훈센 총리의 개입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그녀가 경찰에 출석하자마자 SNS에서는 다른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애초에 체포된 적이 없었다거나 구금 직후 풀려났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 구금 중이며, 재판을 앞두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은 헛소문이나 가짜뉴스로 드러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종류의 소문이 맹렬하게 퍼진다는 것은 많은 캄보디아 국민들이 사법 제도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불신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지를 드러내준다”고 주장한다. 스레이스로스 분석가는 “소셜 미디어가 정부에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수단이 됐다”면서 “그러나 성난 대중이 페이스북을 통해 행동하더라도 그러한 사법제재가 사법제도에 대한 대안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중의 압력이 있어야 범죄가 제대로 조사된다는 일각의 시각은 설득력이 없다. SNS에서 눈에 띄는 모든 범죄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법 제도가 대중의 압력이 있어야만 작동한다면 대중이 체포 단계에서부터 유죄 판결 단계에 이르기까지 수사 내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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