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경관과 각종 생물의 보고, 코스타리카
-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강한 유대, 그리고 환대

코스타리카의 인삿말, 퓨라 비다(pura vida) (사진=pixabay)
코스타리카의 인삿말, 퓨라 비다 (사진=픽사베이)

코스타리카에는 전 세계 생물 종의 5%가 서식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의 면적을 가진 조그만 나라에 그렇게나 많은 생물종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코스타리카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그 사실을 몸소 느꼈다. 코스타리카의 거주지에는 담장 너머로 드리운 망고나무가 많다. 그렇다보니 길에는 떨어진 망고 천지다. 필자가 묵던 곳에도 바나나, 망고, 아보카도 나무가 있어 주인아주머니께서 한두 개씩 주시기도 했다. 조용히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면 내가 코스타리카에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난다. 방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혀를 차는 듯한 특이한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밤이면 더 잦아지는 이 소리는 게코(Gekko) 도마뱀이 우는 소리다. 생경한 소리에 놀랄 때도 있지만,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자면 그 분위기에 천천히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모두가 자연에 사람이 어우러져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고 말한다. 그것이 코스타리카의 아름다움이다.

콘찰(Conchal) 해변의 조개 모래사장 (사진=Tripadvisor 웹사이트 캡쳐)
콘찰 해변의 조개 모래사장. (사진=Tripadvisor 웹사이트 캡쳐)

◆  코스타리카의 자연 경관

코스타리카는 곳곳마다 펼쳐진 경이로운 자연 경관으로 유명하다.  정글과 강, 해변까지 다양한 생태 환경은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서 자연을 품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해변이 하나 있는데, 콘찰(조개해변)이라는 뜻을 가진 곳이다. 동네 지인이 여행지로서 이 곳을 추천해줄 때에는 ‘막연히 조개가 많이 나는 바다의 해변이려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조개해변은 수많은 조개껍데기가 파도를 거스르다 모래가 되어 하나의 해변을 이룬 곳이었다. 말 그대로 조개로 이루어진 해변이었다. 물속에 귀를 담고 있으면 조개 조각들이 파도에 쓸리며 내는 청량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주 좁은 지역 안에서도 다양한 생태적 다양성을 가진 해변이 존재한다. 이 조개모래사장의 끝자락에 있는 작은 언덕을 넘어서면 마치 갯벌과 접한 듯한 잔잔한 해변이 펼쳐진다. 이 해변에서는 오히려 조개껍데기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고작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너무나 다른 모습이 존재하는 셈이다. 마치 작은 언덕을 지나는 순간 다른 차원으로 옮겨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콘찰 해변은 수도 산호세에서 300㎞ 떨어진 곳이다. 물리적인 거리만 놓고 보자면 서울-부산보다 가깝지만 도로 인프라가 완벽하지 않아 6시간정도 버스를 타는 것이 고역이라면 고역이었다. 하지만 자연의 다채로움이 작은 공간 안에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펼쳐져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곳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고 존중하는 코스타리카인들의 태도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코스타리카의 모든 해변이 상업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새해를 맞이해 여행을 계획하던 때, 무작정 코스타리카 지도를 펼쳐놓고 앙증맞은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코코해변으로 떠났다. 도착해보니 코코해변은 북미와 유럽인들에게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곳곳에서는 새해맞이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시끄럽고 복잡한 현실로 돌아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자연을 빼놓을 수 없다. 코코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린콘 데 라 비에하 국립공원에 가면 폭포, 사막, 밀림 그리고 용암처럼 끓는 머드까지 여러 자연 경관이 한 공간에서 펼쳐졌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한 땅에 모여있는 듯한 오묘한 착각에 빠져들 때도 있었다.

코스타리카의 휴양지 코코 해변 (사진=Tripadvisor 웹사이트 캡쳐)
코스타리카의 휴양지 코코 해변. (사진=Tripadvisor 웹사이트 캡쳐)

◆ 환대와 유대의 공간,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에 머물다보면, 아직 인간의 손이 닫지 않은 자연의 경이로움에 압도되곤 한다. 하지만 자연만이 코스타리카의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코스타리카인들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면, 적극적인 참여로 그들의 삶과 공동체를 유지해가는 아름다움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코스타리카의 가족중심적인 사회를 소개했듯이 한 동네에 몇 대에 걸친 가족들이 함께 살기 때문에 주민들 간의 커뮤니티가 끈끈하게 유지되는 편이다.

필자가 머물렀던 동네 한 가운데에는 주민센터, 놀이터와 공원, 공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공터에서는 매주 화요일에는 유기농 작물을 키우는 농부들이, 목요일에는 예술품을 파는 장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장을 형성하고는 했다. 자발적으로 모인 주민들이다보니 상인들 간의 텃세랄 것도 없었다.

필자와 같은 외국인도 거리낌 없이 장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친해진 상점 주인에게 개업 의사를 밝히니 테이블을 빌려주며 목요 장터 사이에 열린 필자의 작은 사업을 도와주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소품 몇 가지로 두어 번 작은 네일샵을 열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금전적인 소득은 얼마 없었지만 장터에서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초대된 느낌이었다. 이따금씩 춤꾼이 장터에 찾아 실력을 발휘하는 날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줌바 댄스 클래스는 마을 사람들의 작은 축제였다. 공터 안 작은 스테이지에 줌바 선생님이 올라서면 그 앞에 통이 하나 놓이는 식이다. 주민들은 대략 500콜론(약 1000원) 씩을 모금한다. 이에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늘 100명은 거뜬히 넘는 인원들이 모였다. 이렇듯 마을 공터는 종종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변한다.

코스타리카의 커피 농장 (사진=pixabay)
코스타리카의 커피 농장. (사진=픽사베이)

◆ 코스타리카의 이면

하지만 코스타리카라고 해서 매순간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코스타리카가 상대적으로 치안 유지가 잘 되고 어느 정도의 경제 수준에 올라 있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 이면도 존재한다. 코스타리카는 커피로 유명하다. 산중턱을 오르다 보면 양 옆으로 허리높이만큼 큰 커피나무들이 밭을 이루고 있다.

커피 콩들이 빨갛게 무르익으면 상품가치가 높은 열매들을 따는데, 사실 커피산업의 대부분이 인접국인 니카라과에서 유입된 노동자들로 인해 유지된다. 니카라과 인력의 저렴한 인건비가 없다면 유명한 코스타리카 산 커피도 그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수십만 명의 니카라과 사람들이 코스타리카에 합법, 불법적으로 건너가 청소부나 커피 농장 일용부로 일하고 있다.

니카라과에서 온 노동자들에 대한 코스타리카인들의 인식은 좋지 않은 편이다. 이주노동자와 자국민의 입지 차이를 강조하며 어느 정도는 차별적인 인식도 갖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예전의 우리가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을 대하듯이, 그들이 니카라과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유사할 때가 많다.

2005년에는 코스타리카 수도 산 호세의 한 공장에서 니카라과 출신 이주 노동자가 경비견들에게 1시간 동안 물어 뜯겨 사망한 일도 있었다. 당시 경비원들은 이를 방치했다. 이는 코스타리카인들이 니카라과의 이주 노동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양국 노동자 문제가 국경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인식과 처우 개선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글: 고승화
코스타리카 UN평화대학원에서 지속가능개발과 국제평화학을 전공했다. 싱가포르의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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