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긋해서 평화롭고 그래서 행복한 나라, 코스타리카
- 평화의 상징, 군대가 없는 나라

세계 행복 순위 1위로 자주 언급되는 나라 코스타리카. 이 나라 국민의 97%가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 곳은 북미와 남미가 끊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지점에 위치한다. 위로는 니카라과와 국경을 맞대고 아래로는 파나마와 마주하며,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동쪽으로는 카리브해를 가졌다. 국민 1인당 GDP가 1만여 달러에 불과하며 개발수준이 한국의 70년대를 연상시키는 이 나라. 빗방울이 양철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그리운 이 곳에 1여 년간 지내며 느낀 코스타리카의 달콤함을 전한다. 

◆ 군대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 평화의 상징

코스타리카 하면 장엄한 자연의 위대함과 더불어 ‘군대가 없는 나라’가 떠오른다. 1949년 군대를 폐지한 후 현재까지 잘 유지하고 있어 UN은 이 나라를 평화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UN평화대학원(UPEACE)을 코스타리카에 유치해 세계 인재들에게 UN이 추구하는 바를 교육한다. 이 나라는 군대가 없지만 사회 치안은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이다. 합법적인 총기소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100%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중남미의 열정과 친근함 그리고 잠시나마 현세를 떠난 낙원을 안전하게 맛보기에 너무나도 매력적인 나라이다. 

코스타리카의 자연경관 (사진=pixabay)
코스타리카의 자연경관 (사진=pixabay)

◆ 평화롭고 느긋하고 낙천적인 국민성

코스타리카의 진한 맛을 전달하려면 그들의 국민성을 먼저 소개할 필요가 있다. 이들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Pura Vida’를 빼놓을 수 없다. 이는 ‘근심걱정 없이 편안한 삶’을 뜻하는데, 만날 때, 헤어질 때, 손 흔들며 지나갈 때, 시도 때도 없이 인사를 대신하여 외친다. 말이 갖는 힘 때문인지, 정말 그들은 늘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느리다. 극단적인 예로는 우체국 시스템이 있다. 한국에서 보냈다는 소포가 4개월이 지나도 행방불명이더니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내 소포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지인을 통해 들었다. 인내를 시험하는 듯한 느린 박자 속의 사람들. 하지만 그 안의 평온함에 적응하는 순간 코스타리카의 맛에 매료되어버린다. 

코스타리카인들은 스스로를 Tico(남성)/Tica(여성)라고 부른다. 이는 ‘작다’라는 뜻인데, 스스로를 아주 작은 나라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중남미의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인들 중에는 코스타리카가 적도 위에 있으니 ‘북미’에 속한다며 농담 식으로 남미와 선을 긋는 이들도 많았다. 

길을 걷다 보면 끈적이는 레게음악이 종종 들려온다. 나무 그늘 밑에 쉬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몸을 자연스럽게 맡겨 버리기도 한다. 남자들은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휘파람을 불기도 한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어 보이지만, 막상 말을 걸면 수줍어하고 보수적인 면도 꽤 있다는 것이 이들의 반전매력이다. 

느긋한 코스타리카 사람들 (사진=pixabay)
느긋한 코스타리카 사람들 (사진=pixabay)

◆ 경계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

이들과 이야기하며 느낀 또 다른 매력은, 사람과 사람에 선을 긋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코스타리카 전 영부인이 스스로 지프차를 몰고 UN평화대학원에 통학하는 모습도 신선했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래프팅을 하며 현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코스타리카에는 인간이 손대지 않은 정글 속 강을 표류하는 래프팅 투어가 꽤 유명한데, 내가 방문한 래프팅 지역의 산림이 개발된다는 소식과 함께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그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현지인은 그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다가가 삶의 터전을 보호해 주십사 요청을 했고, 그 결과 우리가 이 대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주었다. 그의 뿌듯함은 자연을 지켰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왔고, 대통령과의 대화를 마치 동네 아저씨와의 담소처럼 묘사했다. 참 순수하면서도 신기한 사람들이다. 

코스타리카 거리 풍경 (사진=pixabay)
코스타리카 거리 풍경 (사진=pixabay)

◆ 가족 중심적 사회

자유로움이 돋보이는 코스타리카. 이 나라를 가까이 보면 가족 중심적인 면이 강하다. 우선 가족의 형태가 상당히 흥미롭다. 자식이 결혼을 하면 부모 집에 확장공사를 하든가 그 울타리 안에 따로 독채를 지어서 사는 경우가 꽤 보편적이다. 분가하는 것도, 한 집에 함께 사는 것도 아닌 형태로, 한 울타리 안에 2~3 가구가 옹기종기 있는 것이 종종 보인다. 

◆ 그들의 결혼

최근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변화가 있는 듯하다. 우선 내가 만난 5-60대 기성세대는 대부분 상당히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 세대인 2~4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문화가 상당 부분 형성되어 있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너무나 급격한 변화가 있어, 기성세대는 이 젊은 세대들의 흐름을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같다고, 코스타리카도 결혼문제로 세대갈등이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반면 결혼이라는 제도와 사고방식은 범위가 훨씬 넓은 듯하다. 길 가다 보면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이들이 꽤 많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의 유무가 그들의 미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에 굉장히 자유롭다. 개인적으로 경악한 경우가 있는데, 아이가 있으나 헤어진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각자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아이는 자유롭게 양가를 오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난 어느 날, 그 두 부부가 꾸린 각자의 새로운 가정들이 모두 함께 휴가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그들은 자유롭다.

Pura Vida 코스타리카. 그들의 느긋함과 인간 손이 닿지 않은 자연 속을 걷다 보면 어느 샌가 현실을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하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일을 잠시 잊고 대자연과 평온한 사람들에게 나오는 에너지를 받을 수 있던 그 곳은 살면서 한 번, 아니 그 이상 몇 번이고 다시 가도 따뜻할 나라이다. 
 

글: 고승화
코스타리카 UN평화대학원에서 지속가능개발과 국제평화학을 전공했다. 싱가포르의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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