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접어들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페미니즘이 지구촌 사회의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올랐다. 과거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단체 행동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차별의 운동장은 기울어진 채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지금은 구호를 외치는 자나, 그것을 바라보는 자나 전과는 많이 다르게 페미니즘을 느끼고 경험한다. 페미니즘이 그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정치 경제 사회 대중문화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의 깃발은 펄럭인다. 

페미니즘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향상된 여성의 자각과 가치관과 취향, 그리고 그들의 노동과 소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대중문화 시스템 속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페미니즘을 경제적·기업적·대중문화적 측면에서 생각해보는 연재를 10회 싣는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꽉 조이는 코르셋을 입는 여주인공 스칼렛.(사진=영화 스틸컷)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꽉 조이는 코르셋을 입는 여주인공 스칼렛.(사진=영화 스틸컷)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57년)에서 유명한 장면이 있다. 유모가 여주인공 스칼렛(비비안 리)의 코르셋을 조이는 장면이다. 스칼렛은 기둥을 붙잡고 있고 하녀는 뒤에서 힘껏 코르셋 줄을 당긴다. 스칼렛은 고통을 참는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2003년)에서는 주연 여배우(키이라 나이틀리)가 너무 심하게 조인 코르셋 때문에 정신이 나가 바다에 떨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코르셋(corset)의 기원이 사실은 남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코르셋은 군인들이 갑옷을 입을 때 허리를 보호하고 역삼각형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 입었던 속옷이었다. 시간이 흘러 16세기 프랑스에서 여성의 개미 같은 허리가 사교계에 유행하면서 허리를 최대한 조이는 용도로 개발되고 전파됐다. 

넓은 드레스 차림에 허리는 14~19인치까지 조여 가슴을 풍만하게 강조하는 코르셋은 그 시대의 문화였고 여성들이 받아들인 최고의 우아한 패션이었다. 코르셋의 앞면 가운데에는 버스크라고 불리는 보정 효과를 높이는 지지대를 넣었는데, 가죽과 고래뼈 심지어 강철로까지 발전하며 점점 더 단단하게 여성의 허리를 붙잡아맸다. 아름답고 섹시하게 보이고자 하는 반대급부는 신체적 고통이었다. 여성들에게 만성 소화불량을 주고 내장과 갈비뼈의 기형을 일으켰다. 심지어 코르셋을 입은 여성이 칼에 찔린 걸 모를 정도였고, 재채기를 하다 죽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브라와 거들 같은 기능성 속옷이 나오고 대중화하면서 드디어 여성들은 코르셋에서 점차 해방됐다. 

그 코르셋이 21세기 들어와 소환됐다. 실체로서가 아니라 의미로 서다. 페미니즘과 만나면서 다. 코르셋은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규범, 강요, 압박, 구속과 동의어로서 사회에서 미디어에서 본격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바로 지구촌에 불고 있는 탈코르셋(탈코) 운동이다.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압박에서 스스로 벗어나겠다는 여성 운동이다. “여성스럽다, 여자답다, 얌전하다, 조신하다, 세련됐다, 아름답다, 섹시하다, 늘씬하다” 같은 평가와 시선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탈코르셋 인증샷.(사진=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탈코르셋 인증샷.(사진=인스타그램 캡처)

탈코르셋을 하는 여성이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영역은 넓고 다양하다. 짙은 화장, 긴 머리, 신체를 구속하는 브래지어 같은 속옷, 치마, 유니폼, 하이힐, 과도한 다이어트, 성형, 당당하지 못하고 숨기는 생리, 겨드랑이 제모 같은 것이다. 이런 차림새나 외모, 체형에 대한 것은 ‘외모 코르셋’이라 부른다. 반면 여성은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하고 조신하고 모성적이어야 한다, 같은 보이지 않는 규율은 ‘도덕 코르셋’이라고 한다. 

누가 여성에게 그토록 수많은 코르셋을 씌운 것일까? 답은 자명하다. ‘남성’ 또는 남성과 거의 동의어인 ‘지배 권력’이다. 그들에게 여성의 신체와 용모는 곧 섹슈얼리티이며 유혹과 관음과 욕망의 대상이다. 그것은 산업적으로, 상업적으로, 대중문화적으로 소비돼 왔다. 또 여성성과 여성의 지위는 남성지배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과 한계 안에 있어야 문제가 없었다.  

페미니즘 운동이 탈코르셋과 만난 건 우연이 아니다. 21세기의 페미니즘은 미투가 그랬듯이 자각에 그치지 않고 조직적 연대와 행동의 양상을 띠고 있다. 외모지상주의와 외모강박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탈코르셋은 10대와 20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발화했다. 2018년 초부터 소셜에서는 이들의 ‘#탈코르셋’ 인증샷이 빠르게 확산됐다. 산산이 부서진 아이섀도, 짓뭉개진 립스틱, 잘려나간 머리칼 사진 등이다. 

여성 앵커는 안경을 쓰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2018년 4월 뉴스를 진행한 임현주 MBC 아나운서. (사진=MBC 뉴스 캡처)
여성 앵커는 안경을 쓰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2018년 4월 뉴스를 진행한 임현주 MBC 아나운서. (사진=MBC 뉴스 캡처)

요즘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은 가벼운 기초화장 수준이 아니라 풀 메이크업(풀메)을 하고 학교에 간다. 화장과 꾸밈이 당연한 일상이 된 또래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맨 얼굴로 등교를 하면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초등학생도 색조 화장을 한다. 유튜브에서 ‘초딩 메이크업’을 검색하면 3만 개 이상 영상이 나온다. 뷰티 산업과 매체의 발달로 1020 여성이 이전 세대보다 심해진 외모 코르셋에서 지내온 것이다. 모 공중파의 여성 아나운서는 렌즈를 벗고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했다.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 유명 유튜버는 머리를 자르고 법원에 출석했다. 모두 탈코르셋이다. 여성들은 이제 ‘꾸미지 않을 자유’를 선언했다. 

탈코르셋 운동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꾸밈노동’이다.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결코 내재적이지 않다. 늘 그 아름다움에 대한 남성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성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독립적인 것도, 자족적인 것도, 온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여성이 온전히 자유롭게 선택하는 취향으로서의 외모 꾸미기란 사회적 환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여성의 꾸밈노동(화장, 패션, 용모 관리 등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여성다움’에 대한 사회적 요구)은 여성이라면 의무적으로 해야 할 노동에 가깝다.” (윤지선, 김지영 공저, ‘탈코르셋 선언-일상의 혁명’)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몸이 동원, 소비, 착취, 억압되는 것을 거부하고 일체의 꾸밈노동에 집단적으로 반대하는 행위다. 하지만 벗어보니 문제도 보였다.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여성이, 특히나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면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의 정도가 경우에 따라 신체적 폭력부터 생계 위협에 이르기까지 결코 가볍지 않게 나타났다.

여배우 엠마 왓슨.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은 탈코르셋으로 해석된다.(사진=엠마 왓슨 페이스북)
여배우 엠마 왓슨.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은 탈코르셋으로 해석된다.(사진=엠마 왓슨 페이스북)

한편으로는 탈코르셋에 동참하라는 주문 역시 또 다른 ‘코르셋’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개인의 취향과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화장을 하지 않고 숏컷 헤어스타일을 해야만 의식 있는 탈코르셋이냐는 것이다. 이런 ‘여·여 갈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졌다. 한 여성 유튜버가 올린 ‘내가 탈코르셋이 불편한 이유’라는 영상은 조회 수가 20만을 넘었는데 ‘좋아요’가 훨씬 많았다. ‘꾸밀 자유 vs 꾸미지 않을 자유’ 논쟁이다. 대체로 이 논쟁에 대한 합의점은 어떤 코르셋을 어느 정도까지 벗는가는 철저히 개인의 자유와 신념, 개성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탈코르셋은 그냥 모든 억압을 벗어던지는 걸로 끝나는 것인가. 페미니즘 학자들은 탈코르셋의 궁극적 목적에 주목한다. 

이들은 외모와 꾸밈노동만을 통해서 평가되는 여성성에 대한 거부는 바로 여성의 잠재력과 역량을 실현하기 위한 최초의 사건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데 주목한다. 그게 탈코르셋 운동의 혁명적 의의라는 것이다.

다시 앞에 인용한 책이다.
“탈코르셋 운동의 궁극적 지향은 ‘여성의 외모가 어떠어떠해야 하는가’를 정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를 근본적으로 묻는 데 있다. 여성의 외모나 외형, 화장은 여성의 본질이 아니다. 여성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여성이다. 탈코르셋을 외치는 여성들은 여성을 외모로만 판단하고 환원하는 사회적 강요에 맞서 여성의 역량과 잠재력을 드러내고자 한다.”

탈코르셋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듯 최근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왔다. 작가 이민경은 ‘탈코르셋’이라는 책에서 ‘벗어야 할 코르셋이 무엇부터 무엇까지를 의미하는지는 그것을 입은 상태에서는 알 수 없다. 알기 때문에 벗는 것이 아니라 벗어야 알게 된다. ‘여성은 왜 화장을 하는 게 당연한가’ 물었을 뿐인데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전제까지 다시 물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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