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율성과 형평성 제고 위한 정부, 기업, 민간의 노력
- 유례없던 CSR의 법제화, 의미와 시사점에 대한 재고 필요

인도의 아이들 (사진=픽사베이)
인도의 아이들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임기현 기자] CSR의 법제화에 따라 발생했던 기업의 반발과 부작용은 결국 제도의 효율성 및 형평성의 결여로 요약할 수 있다. 효율성 부족은 기업들이 기대만큼 CSR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CSR 활동 의 효과도 크지 않다는 것도 효율성 부족을 야기하는 원인이다. 형평성의 문제는 CSR의 효과와 혜택이 규모와 지역에 따라 편중된다는 사실에 있다.

◆ 효율성 증대 위해 동기가 필요하다

효율성 증대를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달리 말하자면 인도 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CSR의 의무를 수행할 동기 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인도 라자기리(Rajagiri) 경영대학의 살림(Salim P) 교수를 비롯한 관련 학자들은 그 동기로서 처벌 조항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CSR 법제화 이후 시행 초기, 인도 기업부는 2014-15 회계연도에서 기업들의 CSR 활동비로 500억 루피(약 8695억 원)를 예상하였으나, 개정 법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 여러 매체를 통해 예상되었던 1000억 루피(약 1조 7390억원)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살림 교수는 이를 두고 “강제성이 없으니 기업들이 열심히 CSR을 수행할 동기가 사라지게 되고, 따라서 기업들의 초기 CSR 활동이 여러 모로 미숙”하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 처벌 규정이 보완됨에 따라 기업에게 적절한 강제성이 부여된다면 CSR의 수행이 보다 개선될 것이라는 얘기다.

제도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도 정부가 기업의 CSR 수행에 있어 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지출 방향성에 대해서 정부가 제한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형식의 개입만으로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많은 인도 기업들이 제도 시행 초기 ‘적절한’ 프로젝트나 NGO 등을 찾지 못해 난항을 겪었던 것은 이러한 설명을 설득력 있게 한다.

실제로 인도 기업들도 정부 주도의 CSR 활동에 기업이 참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하고 있다. 기업은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법적 리스크 없이 CSR 수행 요건을 충족하고, 국책사업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언론에 노출되어 마케팅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인도 모디 총리가 주도한 긴급구호자금 펀드(Relief Fund)에 기부하는 것이 CSR 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면서, 전년도 14억 루피에 불과했던 모금액이 이듬 해 약 57억 루피 이상으로 4배가량 증가했다. 기업들의 입장에서 정부 주도의 명확한 CSR 수행 방안 마련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인도 화폐 (사진=pixabay)
인도 화폐 (사진=pixabay)

◆ 효율성을 넘어선 형평성 제고가 필요

효율성을 늘린다고 해서 제도적 공백이 만들어낸 여러 형평성의 문제들마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마다 CSR 자금액의 편차가 크고, 상대적으로 큰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주는 기업의 안중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기업과 NGO 간의 관계 강화 등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회사법 개정 전부터 활발히 활동해오던 주요 NGO들은 기업들이 선호하지 않는 마디야 프라데시, 비하르 등 내륙 농촌 지역에서 주로 활동해왔다. 해당 지역에서 NGO 들의 오랜 활동 경험과 이미 갖춰진 체계를 활용함으로써 지역형평성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살림 교수는 “CSR을 실질적으 로 현장에서 수행하는 것은 NGO 단체”라며 “그들에게 좀 더 많은 금전적인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통해 NGO의 사업 자금 마련 활로를 보다 넓힘으로써 낙후지역에 대한 지원 확대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주장이다.

다만 CSR의 법제화 이후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NGO들이 무분별하게 난립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기업과 NGO의 신뢰관계 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기업이 NGO에 자금을 위탁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게 주된 이야기다. 또한 NGO 이외에 형평성 제고를 위한 다른 대책으로서 대두되는 것이 서비스 기업의 역할이다. 통신사나 은행과 같이 도, 농을 가리지 않는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진 서비스 기업의 인프라를 통해 낙후지에서도 효율적인 CSR의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

현재로서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빈곤 해소의 혁신적 아이디어로 주목 받았던 방글라데시의 그라민(Grameen) 은행 역시 서비스 기업으로서의 장점을 사회 공헌 활동과 연계함으로써 탄생 가능했다. 그라민 은행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소금융, 즉 마이크로 파이낸스(Micro Finance, 혹은 Micro Credit) 개념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으로 거론된다. 지방정부나 NGO 등과의 협력을 통해 기초 자원을 보급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은행 등이 소액 대출 및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때, 낙후 지역에서도 CSR의 원활한 수행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은행(bank for the poor)이라는 표어의 그라민 은행(사진=그라민 은행 홈페이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은행(bank for the poor)이라는 표어의 그라민 은행(사진=그라민 은행 홈페이지 캡쳐)


◆ 유례없던 CSR 법제화,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인도의 CSR 법제화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며, 인도 고유 문화적 배경에 바탕을 두고 정착한 제도이다. 그러나 CSR의 법제화를 이해하는데 이러한 특수성 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확장되는 인도 시장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CSR의 법제화는 증가하는 인도 내 해외 기업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 개정 회사법이 효력을 가지게 된 후 제도가 안정적으로 연착륙하기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효율성 및 형평성의 제고가 필요하다는 게 주된 의견이다.

CSR의 법제화가 기존의 제도가 마련되고 논의되던 시점에 기대됐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아직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인도 정부가 제도 설립 당시 목표했던 것도, 지속적이고도 장기적인 CSR의 실현이었다. 아울러 CSR의 사회공헌적 성격상 단발적이고 일회성 짙은 지원이 아닌 중장기적인 목표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도의 사례처럼 급진적인 제도의 도입은 효율성과 형평성의 문제로 이어지며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인도의 중장기적 사회공헌 목표 수립 과정과, 다양한 문제 상황을 정부, 기업, 넓게는 NGO와의 협력을 통해 풀어내는 과정에 주목하며 CSR의 법제화가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 이 기사는 한국법제연구원에서 발간하는 법제연구 53호에 실린,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와 박종호 前 아시아교류협회 연구원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입법과 적용에 대한 고찰 - 인도 회사법 개정과 적용 경험을 중심으로’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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