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은 프랑스 기업인가를 두고 설왕설래
-국외에서는 프랑스보다 미국이 더 중요해
-프랑스 정계와 토탈의 커넥션

프랑스에도 비선실세 논란이 있다.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요즘 불매운동에 한창인 국민들은 ‘이 기업은 일본기업인가?’, ‘이 기업도 불매해야 하나?’등의 고민으로 한번쯤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기업의 국적을 가리는 문제는 더욱 더 복잡해졌다. 

심지어는 ‘국내기업’으로서의 지위에 별다른 하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때론 국내와 국외에서의 행태가 다른 덕에 국민적 공분을 사는 일도 있다. 작게는 상품의 ‘내수차별’에서부터, 크게는 외국인 주주나 해외시장의 보호가 국내의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일 등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라고 이러한 사례에서 예외는 아니다. 바로 프랑스 최대의 기업이자, 석유 대기업으로 유명한 토탈의 이야기다. 국내에서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잇따른 수주에 성공하는 한편, 때로는 정부 관계자들을 움직여 공공정책의 향방을 지휘한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외국인 주주들의 이익이 우선한다. 그렇지만 프랑스 정부는 국가이익과의 충돌을 불사하면서까지 토탈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 열심이다. 

◆ 평소엔 ‘미국 눈치’가 더 중요

프랑스의 석유 대기업은 토탈은 미국과의 관계가 무척이나 중요한 기업이다. 바꿔 말하자면 미국의 눈치를 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2017년에는 이란에서 천연가스사업 계약을 따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협상 파기가 문제가 되었다. 미국-이란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자 해당 지역에서의 비즈니스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토탈은 1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금 손실을 보았고, 이에 대관활동을 통해 정부부처를 압박하고 나섰다.

결국 토탈의 부진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까지 가세했다. 마크롱 대톨영은 작년 6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하여 “유럽기업은 이란과 자유롭게 교역할 필요가 있음”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국가는 없었다. 르몽드는 사실상 “마크롱이 망신을 당하고 왔다”고 보도했으며, 다른 일각에서는 “미국에 저항할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냈다”고 평하기도 했다. 토탈의 영향력에 대해 새삼 놀라움을 감치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실제로 미국은 법률을 통해 해외기업이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와 거래할 경우, 그들에 대한 제재를 감행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과 비밀리에 거래했던 많은 기업들이 미국의 거래제재를 받고 경영난에 휘청한 적이 있다. 그리고 토탈 또한 이에 해당한다. 알랭 드놀 국제철학학교 교수에 따르면 “토탈의 자금 조달 거래량 약 90%가 미국 은행을 통해 이뤄진다”며, “전체 주식 중 30%가 미국발이다. 6.3%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는 미국 래리 핑크 CEO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토탈은 멕시코만의 심해 개발사업 및 텍사스와 오하이오의 셰일가스 생산사업에도 참여 중이다. 

패트릭 푸야네 토탈 CEO. (사진=cnbc)

결국 토탈은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미 한 번 크게 ‘데인 적’도 있다. 1996년 미국은 기업들로 하여금 이란과 리비아와의 교역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한 바 있다. 문제는 토탈이 표적이 되고 나서부터다. 미국은 중동지역을 담당하는 토탈의 임원을 겨냥하여 ‘뇌물수수혐의’를 적용했고, 토탈은 미국 정부에 3억 달러(약 4000만 원)를 지불하는 것으로 사건을 찝찝하게나마 마무리했다.

하지만 석유대기업이자, 모든 이해관계가 석유와 천연가스에 몰려있는 토탈이 근동국가와 러시아와의 관계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에 토탈은 미국과의 ‘위험한 술래잡기’를 시도해오고 있다. 2016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를 교묘히 피해갔다. 프랑스판 일간지 <레제코>에 따르면 토탈은 중국자본의 손을 빌려 달러화를 통하지 않고 야말 LNG 사업에 착수했다. 

◆ 필요할 때는 프랑스 기업

토탈은 명목상으로나마 프랑스 기업이니, 필요할 때는 역시 프랑스 정부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활동하는 기업이니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할 때는 프랑스 정부로 이어지는 채널을 활용한다.  

알랭 드놀 교수는 “심지어 때로는 토탈의 CEO가 프랑스 정부보다 앞서나간다”고 주장한다. 푸야네 토탈 CEO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 당시, 푸야네 CEO는 국가정상급의 귀빈에게나 어울릴 법한 호화로운 대접을 받았다. 당시 러시아 정부에서 나온 보도자료는 러시아가 토탈을 보는 시각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토탈은 민영기업이지만, 때로는 프랑스 자체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토탈의 고위직 인사들을 일컬어 “외교부와도 같은 영향력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그 이면에는 정부와 토탈의 공생관계가 있다. 가령 드 빌팽 전 외무부 장관의 부대변인이었던 로마릭 루아냥은 사임 직후 토탈의 국제관계 부책임자가 됐다.

프랑수아 피용 전 프랑스 총리. (사진=kbs)

푸야네 CEO는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총리의 기술고문으로 일했으며 2017년에는 그의 대선 캠프에까지 합류했다.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는 총리직을 마친 후 레바논 출신의 투자자와 푸야네 CEO, 푸틴 대통령 간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피용은 총리 당시인 2009년, 나이지리아에 자리한 토탈의 사업거점을 방문했고 나이지리아에 프랑스의 군사원조를 제안하기도 했다. 르몽드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토탈이 점유한 사업권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토탈은 ‘라프랑스 상가쥬’라는 이름의 재단의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재단은 사회당 출신의 올랑드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으로 돌아갔고, 이후 올랑드는 대통령까지 당선되었다. (피용은 2017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마크롱 현 대통령에 패배하고 현재는 아내와 자녀의 불법취업 논란으로 기소 중에 있다)

이에 토탈은 대러시아 통상제재, 노동법 개정 반대시위, 프랑스의 차기 대선 등 전 분야에서 제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알랭 드놀 교수에 의하면 “토탈은 마치 최상위 정부기관이 된 것처럼,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차원의 기후협정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기도 한다”고 비판한다. 이어, “토탈 재단에서 자사가 ‘해양 보건과 생물 다양성’을 지지한다고 밝힐 때면, 문화와 생태, 보건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처럼 보이기도 한다”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이 기업은 어디까지나 주주의 사유재산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주주들은 다국적 투자자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의 지분은 일부에 그친다.

토탈의 주주 중 오로지 28.3%만이 프랑스인이며 기관투자자 가운데서는 그 비율이 16.7%로 떨어진다. 반면 130개 이상의 국가에 진출한 토탈은 프랑스 정부의 이해관계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가령 정유업의 경우, 프랑스 본토에서는 차츰 손을 뗀 탓에 점유율이 80%에서 50%로 줄어들었다. 본토의 자금은 사우디아라비아로 흘러들어갔고, 2018년을 기준으로 토탈의 사업거점 중 70%가 아시아와 근동에 자리잡았다. 자본 역시 분산돼 있다. 앞서 언급된 미국발 투자기금을 제외하고도, 토탈은 중국 당국, 카타르 정권, 노르웨이의 국부펀드, 캐나다 데스머라이스 가와 벨기에 프레르(Frère) 가의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조직을 주요 주주로 삼고 있다. 그 외의 주주들은 영국, 벨기에, 스웨덴 그리고 다양한 조세 회피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토탈은 다국적 기업이 꿈꾸는 최고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업이다. 토탈은 자사의 이득을 위해 각국 정권과 협상할 수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대적할 만한 견제세력이 없는 기업이다. 미중 무역분쟁의 중심에 서 있는 화웨이, 한일 경제이슈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삼성전자 모두 이러한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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