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없이 명분만 좋은 CSR의 법제화?
-제도 정착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 산재

인도 화폐 (사진=pixabay)
인도 화폐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임기현 기자] 세계 최초로 ‘경제적 기여방식’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법적인 의무로 강제한 인도의 회사법 개정은 계속해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자선의 영역으로 남겨 두었어야 할 영역을 법적인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정부의 책임을 기업에 전가했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CSR 법제화, 걱정 많은 기업가들의 볼멘소리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의무 불이행 시 처벌규정의 모호함 등 제도적 보완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기업들은 분명한 참여 동기가 없다. CSR의 법제화 과정에서는 기업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되었고, 시행 후에는 취지에 맞지 않는 기업의 소극적 참여가 문제가 된 것이다.

회사법 개정 법안이 발표되고 인도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인도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사회공헌에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입장에서 CSR의 법제화는 분명 부담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시행령으로써 인도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까지 의무를 지워 불만이 쉽게 끊이지 않고 있다.

CSR의 법제화에 따른 문제점 중 기업이 가장 난색을 표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이윤 감소다. CSR을 기업 내부의 문제로 끌어들이면 ‘사회적 비용의 기업 내부화’가 진행되고 기업의 생산 비용증가와 이윤 감소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인도 TVS 그룹 베누 스리니바산 회장 (사진=위키피디아)
인도 TVS 그룹 베누 스리니바산 회장 (사진=위키피디아)

인도의 주요 상용차 제조 기업인 TVS 그룹의 베누 스리니바산(Venu Srinivasan) 회장은 “CSR 의무화는 새로운 형태로 세금이 늘어나는 것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인도에서는 이미 최근 10년 간 법인세가 계속해서 증가 추세여서 현재로서는 34%에 이르는 높은 수준이라는 것도 불만의 목소리를 키우는 이유가 됐다. 베누 회장은 기업에 의무를 지우며 재원확보를 하는 동안 정부가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했냐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기도 했다.

기업 활동에 관한 자유주의 사상의 원론적인 입장에서, 기업은 이윤 극대화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흘러나오고 있다. 인도 상공회의소 하리시 마리와라(Harish Mariwala) 회장은 CSR 법제화에 대해 “비효율적이며 기업들은 이를 회피하려 할 것” 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하리시 회장은 회사법 개정으로 인해 기업의 이윤극대화가 방해 받고 있다며 기업과 정부가 각자의 역할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이윤극대화 보장은 그 자체로 국민의 경제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CSR을 법제화하여 이윤 극대화를 방해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뿐만 아니라 경영자가 CSR 활동에 관여하면 주주에 대한 경영자의 책임을 벗어나는 탈선행위라는 주장도 있다. CSR을 강요하면서 정부가 기업 활동에 개입하면 기업 체제 자체에 붕괴가 올 수 있다는 우려 짙은 목소리까지 흘러나왔다. 인도 내 기업가들 사이에 근심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하여 인도 라자기리(Rajagiri) 경영대학교의 CSR 센터 소속 살림(Salim P) 교수는 “인도 사회가 이전부터 CSR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오랜 전통이 있지만 법제화는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도에서 비록 CSR에 대한 전통이 깊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CSR 활동을 불필요한 지출이라고 여기는 데에서 간극이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이어서 살림 교수는 기본적으로 친기업적이면서 국가 경영에서 기업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현재 인도 정부가 위의 여러 비판들에 맞서서 CSR 불이행에 대한 처벌규정을 만드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이라 예측했다. 처벌규정이 명확하지 못해 기업이 CSR 수행에 대한 명확한 동기를 갖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정부가 처벌 규정 강화를 통해 기업의 반발을 더욱 키울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처벌규정의 부재, 지속되는 기업의 방관

명확한 처벌규정의 부재가 실제 법령 시행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했다. CSR 활동이 의무화된 2015년 첫 해에 적용대상이 된 460개 기업의 절반 이상이 회계연도 2015년 기준 CSR 활동으로 지출한 금액이 법정금액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 제조업체인 VIVO 사의 분석에 따르면, CSR 의무화에 해당하는 전체 인도 기업 중 오직 18%만이 법으로 명시된 2% 지출 기준에 부합했을 뿐이었다.

인도 최대 통신업체인 바티에어텔(Bharti Airtel)은 연간보고서에서 “당사는 CSR 의무활동 적용 대상 기업이지만, 당장 이 법안에 대응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현재는 CSR 활동을 위해 당사가 집중해야 할 영역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순이익 2%를 지출하지 못한 기업들은 보고서에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주된 원인으로 ‘실행 첫 해이기 때문에’, ‘적절한 프로젝트를 개발하지 못해서’, ‘적절한 에이전시를 찾지 못해서’ 등의 이유를 주장하였다.

이마저도 대기업에 한정되는 이야기다. 중소기업과 비교적 영세한 규모의 해외 기업들은 사정이 더욱 좋지 않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법정기준에 맞추어 CSR을 수행하는 것보다 최근의 제조업 불황에서 벗어나 흑자로 전환하는 것에 더욱 신경 쓰는 모습이다. 인도에서 CSR 활동은 법제화가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에게는 여전히 CSR은 경영의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난다고 평가되고 있다.

바티에어텔 홈페이지에 명시된 CSR 지표 (사진=바티에어텔 홈페이지 캡쳐)
바티에어텔 홈페이지에 명시된 CSR 지표 (사진=바티에어텔 홈페이지 캡쳐)

기업의 방관을 넘어선 정책 부작용

기업의 CSR 실행에 대한 동기가 부재하여 발생했던 공백과는 별개로, 인도 사회 내에서 CSR 법제화로 인해 새로이 발생하는 부작용 또한 문제시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Guardian)지는 인도 내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NGO 단체에 자금을 지원해주고, NGO는 수수료를 챙긴 후 남은 금액을 리베이트로 다시 기업에 돌려주는, 기업과 NGO 간의 유착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또한 CSR의 법제화로 인해 수많은 검증되지 않은 NGO들이 투자기업을 찾아 난립한다는 문제도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믿을만한 NGO를 찾고 그들을 감시 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가 되는 셈이다. 이는 기업에게는 또 다른 경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효율성과 관련하여 중복투자의 문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주요 기업과 협력사는 대도시 인근에 입지하는 경우가 많고, 인접성이나 마케팅 효과를 목적으로 기업들의 CSR 지출이 대도시 위주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별로 극심하게 편중된 CSR 혜택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계속)


이 기사는 한국법제연구원에서 발간하는 법제연구 53호에 실린,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와 박종호 前 아시아교류협회 연구원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입법과 적용에 대한 고찰 - 인도 회사법 개정과 적용 경험을 중심으로’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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