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전 지역서 과음 비율 증가해
-한국, 줄었다고는 하나 과음랭킹 1위 고수
-인도 등에서도 종교적 영향 줄어...수제맥주 인기
-하이네켄, 아시아서 매출 증가에 ‘활짝’

아시아 각국의 주정뱅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최진영 기자] 과음을 즐기는 아시아인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아시아 전역에 걸쳐 과음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아시아인들 사이에서 취할 정도로 마시는 이른바 ‘에피소드성 중증 음주’가 크게 증가했다는 연구가 있따라 발표되고 있다. 영국의 의학 학술지인 ‘랜싯’에 실린 세계 음주 습관에 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중국, 태국, 동티모르, 베트남 등지에서 에피소드성 중증 음주의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 논문은 또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알려진 부탄 국민들도 ‘과음하는 경향’이 명백히 심해졌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1990년 중국에서는 음주자의 16%만 한 달에 한 번꼴로 과음을 했지만, 2017년에는 이 비율이 거의 두 배나 늘어난 30%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베트남에선 16%에서 24%로, 태국에선 18%에서 25%로 비율이 상승했다. 아시아의 2대 최소국인 부탄과 동티모르에선 각각 14%에서 22%로, 그리고 12%에서 20%로 엇비슷한 상승세를 보였다. 

1990년, 2017년, 2030년 연간 성인 1인당 순수 술 소비량 (자료=랜싯)

◆ 한국, 주량만큼은 아시아 1위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처럼 급속한 경제성장과 아시아 전역의 임금 상승에 힘입어 빈곤한 나라들은 중위소득 국가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한국과 대만 같은 나라는 중위소득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는 추세에 접어들었다. 이 기간과 술을 즐기는 인구의 증가는 명백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매주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과음하는 트렌드가 유행하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위르겐 레옴 토론토 대학 교수는 “(아시아 지역에서) 절제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며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것이 한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기네스 브랜드를 소유한 디아지오와 네덜란드의 맥주 브랜드인 하이네켄 같은 대형 업체들도 활황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새로운 벤처를 설립하며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하이네켄의 경우 인구 120만 명에 불과한 동티모르의 수도(인구 약 25만 명) 딜리 인근에도 양조장을 차렸다. 하이네켄의 관계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의 두 자릿수 성장이 가장 눈에 띄었다”고 부연했다. 중국의 신년(the Chinese New Year)기간의 높은 판매도 볼륨 성장에 한 몫 한다는 평가다.

때를 잘 만난 하이네켄. (사진=하이네켄)

술 하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한국은 어떨까? 오히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러한 경향성이 소폭 줄어들었다. 이는 현재 세대에 이르러 음주 문화가 잘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면 호주에선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기준으로 한국, 호주, 일본의 중증 음주율은 각각 40%, 36%, 39%로 중국인이나 베트남보다 현저히 높은 수치를 보였다. 다시 말해 한국 사람들은 10명 중 4명 꼴로 술을 마셨다 하면 속된 말로 ‘꽐라’가 될 때까지 마시는 셈이다. 이 부문 1위는 덤이다.

논문은 “1990년에서 2017년 사이 성인 1인당 술 소비량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104%, 서태평양 지역에서 54% 증가했다”며 “현재 음주자의 국가별 비율은 1990년에서 17년 사이에 대부분의 지역에서 상승했다”라고 밝혔다. 

◆ 종교적 영향력도 약화되고 있어
     
레옴 교수는 “통상적으로 광고와 마케팅이 음주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절제심이 강한 국가에서도 바람직한 ‘현대적이고 서구 지향적인 생활 방식’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와 술에 대한 관심 확대 및 맥주와 양주 회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음주를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도도 여기에다. 인도는 워낙 술에 엄격한 나라다. 헌법이 주정부가 술 소비를 금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경일, 종교기념일, 총선 때는 전국적으로 술을 못 팔게 하는 드라이 데이(Dry day)가 선포된다. 주류 광고는 불법이다. 모디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서부 구자라트주를 비롯한 5개 주는 법으로 주류 판매를 금지한다. 술을 허용한 주에서도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술을 사지 못하고 전용 술 판매점에서만 살 수 있다.

이런 문화는 종교적 영향 때문이다. 14억 인구 중 80%인 힌두교는 경전·율법에서 술을 금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하트마 간디 등 명망 있는 힌두 지도자들이 술의 해악을 강조한 탓에 힌두교도들은 대체로 술을 꺼린다. 인구 비중이 10% 정도인 이슬람교는 음주를 원천 금지한다. 세금도 높다. 수도 델리의 경우 음식점이나 주점에서 술을 시키면 주세(酒稅) 20%가 추가로 붙는다. 이 때문에 합법적인 술 소비층은 주로 중산층 이상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인도의 1인당 연간 술 소비량은 5.6L 정도로 우리나라(10.2L)의 절반 정도이다.

인도의 국민맥주인 킹피셔. (사진=킹피셔)

하지만 최근 인도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술 소비량이 늘고 있다. 인도 1인당 연간 음주량은 2005년 2.4L에서 2016년 5.6L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종교색이 옅고 서구 문화에 익숙한 젊은 층이 퇴근 후 즐길 수 있는 맥주가 특히 인기다. 인도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남부 벵갈루루와 페이스북·구글·삼성전자 등 외국계 IT 기업이 밀집한 델리 인근 신도시 구르가온에는 최근 2~3년 새 수제맥주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이들은 세금 효자 노릇도 톡톡히 한다. 구르가온 내 수제맥주 가게 45곳이 매년 주정부에 내는 세금만 32억 루피(약 552억 원)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들의 사정은 다소 다른 모양이다.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무슬림 신자들은 원칙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세속주의 이슬람 국가의 사정은 다소 다르지만 (오히려 이 지역의 술꾼 증가세는 가파른 편이다), 서아시아의 술 소비는 대체로 매우 엄격한 편이다.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브루나이, 파키스탄에선 평생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90%를 훌쩍 넘고, 인도네시아에서도 이 비율이 80%에 육박한다. 

레옴 교수는 이에 대해 “이런 이슬람 국가 사람들은 경제적 부보다 종교적 영향력을 더 많이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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