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보복 가능성은 적은 상황
-IMF 경험 떠올리면 가능성 무시못 해
-민간, 정부차원에서도 대응 여력 충분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br>
경제보복이 금융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일본 경제보복이 아직까지 우리 경제의 주된 화두다. 백색국가 제외 결정에 더해, 마지막으로 아껴놓은 카드가 있을까?

실제로 재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대(對)한국 수출규제에 더해 일본계 금융기관을 통한 금융보복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일본계 금융기관의 자금 회수로 인해 외국인 자본유출이 촉발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일본계 금융자금의 회수 가능성과 대응 여력을 기업, 은행, 정부의 다층적 차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령 일본 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수하더라도 우리나라 민간·정부 차원에서 충분한 대응 여력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된 평가다. 2018년 말 기준 일본계 은행의 對한국 자산규모는 563억 달러이며, 이 가운데 1년 이내 단기 국내자산은 114억 달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은행 총자산(2조 2602억 달러) 대비로는 2.5%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계 은행의 비중은 15.6%로 미국계(27.3%), 영국계(26.4%)에 이어 세 번째다. 1995년 40%대에 달했던 일본계 비중은 감소세를 보였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소 증가세를 보이는 흐름이다. 2018년 말 기준, 한국 내 영업 중인 일본계 저축은행은 4개, 국내 자산규모는 13조3000억 원으로  저축은행 업권 내에서 19% 차지했다. 일본계(최대주주의 국적이 일본인) 대부업체는 19개, 대출잔액은 6조7000억 원으로 국내 시장점유율은 38.5%에 달한다.

◆ 외환위기 부추겼던 일본의 자본이탈

외환위기 직전 우리나라는 대기업 연쇄 부도, 금융기관 부실화 등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대외채무가 단기외채 위주로 확대되는 등 대외건전성이 취약해진 것이 원인이었다.

이에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1997년 3월 말 결산을 앞둔 일본계 은행들의 자금 회수를 계기로 국내은행의 자금사정이 악화되고 외환 보유액도 감소했다. 당시 “은행 도산 시 정부의 지원이 없을 것”이라는 경제수석 발언이 있고 나자, 일본 단자회사가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공여를 중단했다. 국내은행의 일본소재 지점들이 결제마감 시간까지 자금조달에 실패한 것이다.

물론, 일부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자면 “일본계 은행의 자금 회수는 일본 대형 보험사의 도산 등 일본 내 금융위기로 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 상업은행들은 1998년 3월까지 BIS 비율 8%를 맞추어야 했지만, 동남아시아 보유자산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BIS 비율이 하락했다.

이에 재정경제부의 98년 자료에 따르자면 이에 일본계 상업은행들은 BIS 비율을 준수하기 위해 기존 대출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아시아 금융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쿄 시내의 일본 금융기업들. (사진=연합뉴스)

◆ 금융자금, 빠져나가도 걱정없다

하지만 현재는 사정이 다르다.기업의 입장에서는 일본계 은행의 對기업 여신이 재무구조가 건전한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어 일본의 금융자금 회수가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2018년 말 기준 주요 기업의 총 유보액은 254조 원으로 추산되며, 현금 및 단기금융자산 규모는 45조 원으로 일본계 은행의 국내기업 여신을 크게 상회하여, 일본의 자금 회수에도 충분히 대응할 여력이 있음을 시사한다. 일본계 은행의 국내기업 여신은 23조5000억 원이며, 對기업 여신이 주로 대기업(70%)에 집중(중소기업 비중은 1% 내외)되어 있다. 

한편 은행 측은 외화LCR(은행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 규제 도입으로 급격한 외화 자금유출 시 국내은행이 충분한 대응 여력을 갖추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거기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이래 국내은행의 외화차입금 규모 축소, 거주자 외화예수금 증가, 단기 차입 비중 축소 등 대외부문 외환건전성은 대체로 개선되고 있는 흐름이다. 일본계 은행이 對한국 단기 자산(114억 달러, 2018년 말 기준)을 일시에 회수하더라도 시중은행이 보유 중인 고유동성자산 규모(174억5000만 달러)를 하회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글로벌 은행의 對한국 여신 규모를 크게 넘어서는 외환보유액과 기축통화국(캐나다, 스위스)과의 통화스와프로 금융안정망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에 강태수 연구위원은 “현 상태에서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으며, 일본 자금이 유출되더라도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일본 자금 의존도가 현저히 낮아졌으며, 단기외채 규모 감소로 외채구조가 장기화되는 등 외환건전성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금융시장에서 인식하는 한국의 부도 가능성 지표는 7월 1일 일본의 수출규제안 발표 이후에도 상승하지 않았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일본 금융보복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 (사진=ytn)

◆ 일본이 더 손해

여기에 더해 일본의 보복조치 발동 시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 상호연계성이 강한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위상 및 신뢰도 저하 등으로 일본계 은행이 자금 회수를 실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령 일본계 은행이 정부의 보복조치에 동조하더라도 향후 관계가 정상화될 경우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은행업 특성상 일본계 은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어 영구적 손실을 받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상호연계성이 강한 점을 감안할 때, 일본이 국제금융시장을 교란한다면 이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 및 신뢰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일본정부가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하여 행정조치를 통해 압박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일본에 진출한 금융기관 및 기업에 대한 감시·감독 강화 등 간접적 제재에 대해서는 한 번쯤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에 강태수 연구위원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금융기관 등이 연계하여 일본계 은행을 포함한 외국계 은행의 자금흐름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