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늘어났지만, 소득은 줄었다
-소득 불평등, 정치불안으로 이어져

오사카 시내.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최진영 기자] 미래는 아시아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시아 사람들의 삶은 과거에 비교해 크게 나아졌을까?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최근 고소득층은 계속해서 소득과 부를 쌓고 있지만, 회원국 다수의 생활수준은 정체 내지는 퇴보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산층의 팽창세가 중단되는 위기가 닥쳤다는 것이다. 이는 전후세대 이후 약 50년 동안 이어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활수준이 꾸준히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선진국 등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OECD는 ‘압박받은 중산층’(Under Pressure : The Squeezed Middle Class)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지난 30년 동안 일부 OECD 국가 중산층 가구가 암울한 소득 성장 내지 정체를 경험하자 작금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부당하며, 그들 사이에선 자신이 이바지한 수준만큼 경제 성장의 수혜를 입지 못했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또한 “중위소득 일자리 5개 중 1개는 조만간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빠질 수 있어 중산층의 피해와 분노가 격화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OECD는 중산층이 치솟는 생활비와 낮은 임금상승률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이들 국가에서 선동에 능한 `포퓰리스트`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각 나라 중위 소득의 75~200% 수준인 가구를 중산층으로 잡았을 때 1980년대 중반 64%이던 OECD 중산층 비율이 점차 내려가 2010년대 중반에는 61%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아시아에서의 임금상승속도와 집값상승속도의 비교. (자료=oecd)

각국 경제를 책임지는 중산층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 구조가 불안정해진다는 뜻이다. 멕시코는 중산층 비율이 44.9%로 OECD 35개 조사국 중 가장 낮았으며, 한국은 61.1%로 평균을 조금 웃돌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중산층 비율은 30년 동안 4.3%포인트 줄어든 51.2%로 조사돼 35개국 중 멕시코와 칠레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수준이었다. 그 밖에 독일(-5.0%포인트), 스페인(-3.7%포인트), 캐나다(-4.5%포인트) 등의 감소폭이 눈에 띄었다. 스웨덴(-7.4%포인트), 이스라엘(-6.7%포인트), 핀란드(-5.8%포인트) 등은 감소폭으로 상위를 차지했지만, 이들은 최근까지도 중산층 비율이 65.2~71.9%를 유지해 절대적 수치는 높았다. 

◆ 생활수준 정체가 정치불안 불러와

OECD는 중산층의 경제적 위기가 정치적 불안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브리엘라 라모스 OECD 사무총장 비서실장은 "중산층은 지난 30년간 경제 성장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 사회경제적 구조가 불공평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기존 정치권에 환멸을 갖게 되고 반체제적 선택을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몇 년간 보호주의, 국수주의,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포퓰리즘이 고개를 들게 됐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중산층 비율이 갈수록 악화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중산층에 진입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베이비붐 세대(1943~1964년생)는 10명 중 7명(68.4%)이 중산층이지만 그 다음 세대(1965~1982년생), 밀레니엄세대(1983~2002년생)는 각각 63.7%, 60.3%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잇따른 경제 위기, 저비용 아시아 국가로의 외주 생산, 북미와 유럽 지역 거주민 다수가 불만인 불충분한 이민자 통제, 그리고 생활비는 올라도 임금은 정체되는 현상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부자들에게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서양 국가들의 사회불안이 이를 방증한다.

2018년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발표에 반대하면서 시작돼 점차 반정부 시위로 확산된 ‘노란 조끼 시위’(Gilets Jaunes)는 사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거둔 대선 승리를 이끈 세계화에 대한 반발을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일 뿐이다. 같은 해 영국인들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OECD 회원국들은 이처럼 서양 국가들에 퍼진 혼란과 양극화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근 20년 동안 성장이 정체된 일본의 중산층 비율은 OECD 평균보다도 낮아졌다. 즉, 일본 국민 중 불과 54%만이 OECD가 정한 중산층 기준(각 국가 중위소득의 75~200% 수준인 가구)에 부합할 뿐이다. 보고서의 공동저자 마이클 포스터 OECD 선임정책관은 “아시아의 경우 일반화하기 힘들지만, 중산층 전망이 생각보다 어둡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중산층 비율과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이의 상관계수표. (자료=oecd)

 

아시아 중산층의 소득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고 있다. (자료=oecd)

1990년대 후반 터진 경제 위기를 극복한 아시아 국가들은 지난 20년 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실제로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아시아 주도로 세계는 작년 ‘극적 전환점’에 도달했다. 연구소는 세계 인구의 50% 이상이 현재 ‘중산층’ 내지 ‘부유층’으로 간주될 만큼 충분한 가처분소득을 벌며 살게 됐다고 추산했다. 

◆ 아시아도 위기 벗어나지 못해

OECD에 따르면 현재의 경제 성장 추세가 지속되면 2009년 18억 명에 불과했던 세계 중산층 인구는 2030년 49억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 중 66%는 아시아의 중산층이다. 2009년의 28%였던 것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율이 높아진다. 지난해 국제연합 무역개발회의(UNCTAD)는 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세계의 외국인 투자 성장 지역으로 선정했다. 무엇보다 중산층 소비자들을 상대하는 분야에서 대형 투자 계약이 체결됐다는 점이 중요한 선정 사유였다. 
  
그렇지만 1인당 소득은 상대적으로 낮고 인구는 많다는 점에서 아시아가 고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들의 생활이 안정돼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처럼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들마저 현재 일명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져있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 중진국 수준에 와서는 어느 순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의 저임금은 부유한 OECD 회원국 기업들로부터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의 투자를 유도한 주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 등 서양 국가들이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불러들이자 그러한 투자도 위기에 빠졌다. 

아시아에서도 상위임금이 중위임금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한다. (자료=oecd)

포스터는 “최근 몇 년 동안 OECD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아시아의) 중산층이 지속적으로 폭넓은 성장을 하려면 무엇보다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면서 성장의 혜택이 아래로 불평등하게 전달되는 데 따른 위험을 경고했다.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990~2013년 아시아 국가들의 불평등이 심화하지 않았다면 9500만명이 추가로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불평등은 성장 자체도 저해한다. 1985년 이후 심화한 불평등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19개국의 1990~2010년 누적성장률이 4.7%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극심한 불평등은 인적 자원의 활용도를 낮추고, 중산층을 쪼그라들게 해 내수를 위축시킨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장기적으로 효율과 성장에 해로운 포퓰리즘 정책을 선호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내다봤다.

아시아 신흥 경제국들 대부분은 향후 20여 동안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지난 20년에 비해 둔화된 성장 속도가 중산층 확대를 방해할 수 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올해 초 향후 ‘10년 안에’ 중국의 성장 속도가 연 2%로 둔화될 수 있고, 인도도 최대 7%의 고성장을 누릴 가능성이 높지만 나머지 신흥국들의 성장세는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 및 북미에서 경제문제가 정치혼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듯,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처럼 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국가들은 조만간 불평등한 성장에 따른 사회적 및 정치적 압력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다.

사와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에 “세계화를 멈추게 하고 기술 발전의 속도를 늦추는 게 불평등의 해법은 아니며,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단일한 불평등 해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교육과 기술 훈련에 대한 투자, 좀 더 포용적인 금융, 독점 지대 해소 등 나라별 특성에 맞춰 불평등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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