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재정, 행정적 분권화를 구분해야
-정치적 분권화가 왜 가장 중요한가?

중남미의 연방주의. (사진=southEUsummit)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중남미 국가들은 분권화 측면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것은 그들의 국가건설 측면에서도 관련이 있다.

독립 과정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거나, 핵심지역의 기득권들이 지방의 여러 세력을 규합해 국가를 건설하는 이른바 포스트식민시대의 주권국가(nation-state)와는 거리가 있었다. 지방의 농촌 기득권이나 토호들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하였고, 멕시코 정도를 제외하자면 상대적으로 중앙정부의 강력한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전통적인 주권국가의 개념보다는 국가연합(state-nation)의 형태에 가깝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이들의 연방주의 역시 이러한 특징을 반영했다. 이는 파키스탄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비교해서도 흥미롭다. 이들 역시 펀자브나 서케이프타운의 농촌 대지주와 토호들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했다. 이들은 중앙정부의 군부나 핵심 권력층과의 이해관계를 성공적으로 조화시키는데 성공하였고, 그 결과 대단히 집중화된 연방주의, 특정 지역에게만 관대한 연방 시스템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중남미에서 그러한 경향을 보이는 곳은 드물다.

이론적으로도 중남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권한’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뉴욕주립대의 일부 연구진 같은 경우는 이들의 관계가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놓여있다고 내다봤다. 서로가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통에 지방정부의 힘이 극도로 강해진다면 국가가 붕괴될 것이고, 중앙정부가 지나치게 강해진다면 분명 지방정부를 탄압하려 들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중남미의 분권화는 지방정부의 힘이 강해진 데서 비롯되었다는 시사점을 남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가 이를 방지한다. 연방주의 연구의 대가 알프레드 스테판 교수나 웨잉가스트 교수의 경우에도 그들의 저서에서 “민주주의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신뢰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한다”고 주장했다.  

◆ 정치적 분권화는 무엇인가?

실제로 중남미 분권화는 민주화의 결과라는 평이 중론이다. 필라델피아 대학의 ‘연방주의 연구의 젊은 거장’ 툴리아 팔레티 교수를 포함해, 캘리포니아 주립대(산타크루즈)의 켄트 이튼 교수 등이 공통적으로 등의했다. 연방 시스템을 취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보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왜 원인과 진행과정이 같은데 결과가 다른 것일까?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콜롬비아의 분권화는 모두가 다른 결과를 낳았다.

팔레티 교수는 “분권화를 세분화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분권화도 분권화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를 위해 분권화를 세 종류로 나누었다. 잘 알려져 있는 재정 분권화에 더해, 정치적 분권화, 행정적 분권화로 세분화했다. 일각에서는 여기에 더해 ‘제도적 분권화’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인기 있는 분석은 아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재정분권화는 ‘지방정부가 국가 전체예산이나 지출 등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으로 정리할 수 있다. 행정 분권화는 지방정부가 교육, 헬스케어, 주택, 이민 등에 있어서 자체적으로 법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다. 반면, 정치적 분권화는 지방정부의 공무원이나 주지사, 혹은 시장 등이 중앙정부의 의사결정과정에 개입해 지방정부의 이해관계를 피력하고 반영시킬 수 있는 권리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경제학에서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재정 분권화와는 달리, ‘정치적 분권화를 어떻게 측정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단호히 말해서 아직까지 그 어느 연구진에서도 정치적 분권화를 효과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고안해내지는 못했다. OECD나 IMF 등에서도 분권화 지수를 측정하며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지만, 이는 앞서 말한 재정, 행정분권화의 요소들과 중첩되는 경우도 많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몇몇 젊은 학자들이 거부권자(veto power)의 수로 분권화를 측정한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하고, 꽤 설득력 있기도 했지만 아직 모든 상황에 걸쳐 광범위하게 도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툴리아 팔레티 필라델피아대학 교수. (사진=노스다코타대학)

일부는 정치적 분권화를 측정하는 가장 간단한 지표는 주지사나 시장을 선거로 선출하는지 (분권화), 중앙정부나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되는지 (집중화)에 달려있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팔레티의 설명도 이를 방증한다.

팔레티 교수는 이에 단호하게도 “정치적 분권화가 가장 중요하다. 가장 넓고도 강력한 범위의 협상력을 포함하고 있다”며, “재정 분권화가 그 다음, 행정 분권화가 가장 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다. 정치적 분권화가 재정, 행정적 분권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라고 이해하면 이해가 쉽다. 아무리 지방정부가 걷을 수 있는 세금이 많고, 중앙정부로부터 많은 보조금을 지원받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자치권이 없으면 그 동안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권리가 하루아침에 소멸될 수 있다. 중국의 지방정부에 대한 설명이다.

말레이시아의 상황을 보아도 이해가 쉽다. 그들 역시 꽤 성공적인 연방주의를 운용해왔다. 우리에게는 코타키나발루로 유명한 동(東)말레이시아의 사바나 사라왁,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몇몇 주 정부들, 중국계 자본이 많이 집중되어 있는 페낭 같이 몇몇 부유한 주에 대해서는 여러 종류의 자치권을 많이 허용해 왔다. 정치색이 다른 이들의 불만을 달랜다는 의도다. 그러나 핵심이 되는 정치적 자치권만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지방정부가 집행하고 있는 예산에 대한 유달리도 꼼꼼한 감사와 비판, 그리고 중앙정부로부터 지급되는 보조금의 기약 없는 연기나 지연, 규모축소 등으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분권화의 결과가 국가분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사진=constitutionnet)

따라서 중남미의 지방정부 역시 중앙정부와의 경쟁에서 무엇보다도 정치적 자치권을 얻어내려 노력한다. 중앙정부 역시 행정적 자치권, 재정 자치권이면 몰라도 정치적 자치권을 부여해달라는 요구에는 학을 뗀다. 

◆ 분권화의 순서도 중요하다

팔레티 교수는 이러한 가정 뒤에 덧붙여 “분권화의 순서 역시 중요하다”고 짚었다. 말하자면 분권화 개혁이 정치적 분권화를 동반하는지, 행정적 분권화가 먼저인지에 따라 최종 결과는 천차만별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중앙-지장정부의 관계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과 가깝고, 서로가 정치적 자치권을 두고 경쟁한다. 이 상황에서 정치적 분권화가 먼저 주어진다면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최상의 결과로 이어진다. 곧바로 그들에게 필요한 예산과 지출권한을 지급받게 된다. 그리고 배가 불러지니 남아도는 돈을 사용할 ‘내역처’가 필요해진다. 이에 행정적 자치권이 따라붙는다. 지방정부의 힘이 건강한 순서로, 순차적으로 강해지는 단계를 밟게 된다.

반면 행정적 자치권이 먼저 주어진다면? 그들은 행정 권한을 이행하기 위해 ‘돈’이 필요해진다. 덩치는 커지는데 목이 말라가는 셈이다. 재정 분권화가 급해졌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방정부의 권한강화로 이어진 것이 아니기에 돈을 따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정치적 분권화는 꿈도 꾸기 어렵다. 중남미 분권화의 모든 결과는 이 두 가지 경우에서 출발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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