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한 공공기관 운영과 사기업의 도덕불감증
-기후가 분쟁을 조장하기도

기후인프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기후변화센터)
기후인프라에 대한 개도국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기후변화센터)

[데일리비즈온 서은진 기자]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말이 있다. 흔히들 유럽, 북미 등 북반구의 선진국들을 대표하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반대급부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오늘날, 글로벌 사우스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공통 고민은 단지 지지부진한 경제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바로 물 부족 문제다.

글로벌 사우스의 다수 개발도상국들 내부에서 식수 고갈 현상이 계속되고 있고, 식수를 구하느라 드는 비용이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자원연구소(WRI)가 15개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해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는 위 같은 위기감을 방증한다. 이 연구소는 인도, 이란, 보츠와나 등 17개 국가들이 현재 모든 수자원을 거의 대부분 사용해 극심한 물부족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브라질의 상파울루, 인도의 첸나이,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등의 대도시들이 최근 극심한 물부족에 직면했으며, 케이프타운은 지난해 모든 댐이 말라붙는 '데이 제로’(Day Zero) 위기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WRI의 베치 오토 연구원은 “앞으로는 이러한 데이 제로의 위험을 점점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며 “세계 곳곳이 이러한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물 위기가 심각할 정도로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 지역에서 진행되는 용수(用水) 공급 사업의 민영화 움직임 역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 변화, 엉터리 정책, 정치적 무관심이 합쳐져 한 국가를 재앙적 물 위기로 몰고간다는 것이다. 

남반구의 재앙적인 ‘물부족 위기’ (上) 에서 이어집니다.

◆ ‘푸른 나라’ 파라과이의 이상한 물부족

WRI의 보고서에 따르면, 물 공급을 민영화하는 노력도 명백히 효과가 없었다. 1980년대 내내, 세계의 많은 지역이 민간 기업들을 압박해 도시 용수 공급을 늘리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최저소득 가구는 상수도 시설과 연결되지 않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도의 유명 물 문제 전문가인 쉬리파드 다마디히카리(Shripad Dharmadhikari)는 "WRI 보고서는 민영화와 상수도 사업화 모두 국민의 필요, 특히 빈곤층과 소외계층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WRI 보고서는 ”기후변화, 도시 인구 증가, 자연과 건축 환경의 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수자원이 급속히 고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가정이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을 더 쉽게 얻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수 비용도 해가 지날수록 증가한다. 인도 서부 뭄바이와 파키스탄의 카라치 같은 도시들은 현재 대부분 민간 물탱크차가 실어 공급해주는 물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한 결과, 뭄바이와 같은 도시에서는 이처럼 물탱크차가 공급해주는 물이 파이프 물보다 52배 더 비쌌다. 카라치에서도 29배 더 비쌌다.

파라과이 수자원공사로부터 제공되는 물을 수령해가는 아순시온 시민들. (사진=ESSAP)
파라과이 수자원공사로부터 제공되는 물을 수령해가는 아순시온 시민들. (사진=ESSAP)

이 현상은 파라과이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한 주민은 재작년 9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돗물에 붉은 모래가 섞여 있을 때가 많아요. 전 아이가 두 명 있는데, 절대 이 물을 못 마시게 해요. 수질을 믿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나 수도세는 계속 오른다. 그는 매달 150유로(약 19만7000원)밖에 벌지 못하지만, 항상 집에 20리터짜리 생수를 사다 놓는다. 수돗물보다 180배 이상 비싸지만, 적어도 병균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파라과이에서는 1980년대 초, 인구급증과 이농현상으로 ‘물 공급’ 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민간기업의 물 공급량은 현재 전체 대비 3분의 1을 차지한다. 사측 입장에서는 원재료가 무료인 데다가, 자주 관리할 필요도 없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수질검사를 거의 하지 않은 물을 수도망이 닿지 않는 지역에까지 공급했다. 그러나 수도 아순시온에는 전체 인구의 70%가 산다.

반면, 파라과이의 연간 1인당 물 공급 가능량은 6만 7000㎥로(지표수만 포함) 남미 평균인 2만 2000㎥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남미 내에선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북부 차오 지역과 동부지역, 도시와 시골, 부촌과 빈촌 등 수자원의 지역 격차가 심하다”는 것이다. 수자원 관리의 취약함 때문에 국민의 약 4분의 1은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한다. 국민의 약 절반은 정화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 살고 있다. 

반면 파라과이 수자원을 관리하는 공공기관들은 너무 많다. 공기업인 파라과이 수자원공사는 인구 50만 명 이상의 도시에 물을 공급하고, 환경위생청(SENASA)은 1만 명 이하의 도시를 담당한다. 환경위생청의 경우, 2500개의 ‘시민 감시반’이 있는데 대개는 물 정화 및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감독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대개 공권력이 약해서 관리체계가 부실하다는 점에 있다. 공공 수도망이 전국에 깔려있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다. 한 공무원은 “시민 감시반들은 지자체들의 정치적 논리에 밀려 물질적, 재정적 어려움을 면치 못하고 결국 민간기업들과 손을 잡는다”고 설명했다.

해당 공무원에 따르면 파라과이 수자원공사가 아순시온에 공급하는 물은 정기적인 수질관리와 신뢰할만한 정수처리 시스템을 거친다. 반면 이외의 다른 공급처들은 남모르게 우물을 파고, 자신들은 절대 사지 않을 물을 판매한다. 수질검사도 “3개월에 1회면 그나마 자주 하는 편이다”는 제보도 있다. 결국 파라과이의 물은 누구에게도 신뢰받지 못한다.

◆ 수자원 부족이 국가안보 악화시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사회심리학자인 하랄트 벨처는 기후변화가 거센 분쟁을 촉발하는 추가적인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분쟁의 극단적인 폭력성은 기존의 이론적 틀을 넘어서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상당히 평화로웠던 서방세계의 경험적 지표가 통하지 않는 새로운 행동 영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형 민간기업을 대리하는 전쟁 용병과 일반국민 사이의 비대칭적인 분쟁이 지구온난화로 한층 심각해진 폭력을 더 악화시킨다는 분석도 있다.

1987년부터 지속된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는 환경적 취약성을 띤 국가로 인해 악화된 자기파괴적 역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이지리아 북부에서 토지가 황폐화되면서 농장과 목장에서의 삶의 방식이 파괴됐고 사람들의 이주 흐름이 바뀌었다. 마을 수백 곳이 버려졌고 그곳을 떠난 사람들의 무리는 이 지역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곳은 보코하람 이슬람무장단체의 온상이 됐다.

복합위협 분석표. 기후변화와 분쟁증가율의 상관관계를 측정한다. (사진=리서치게이트)

이와 함께 복합위협(compound risk)’이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하랄드 벨처에 따르면 “지구의 평균 온도가 2050년까지 2~4°C 상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폭력, 집단분쟁, 사회불안정 구조에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아프리카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마샬 B. 버크 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 연구원은 2030년까지 무력분쟁이 54%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의 보고서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미치는 기후변화의 잠재적 영향에 대한 첫 번째 평가서이다. 이 보고서는 2020년에서 2039년까지 이 지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예상치 중앙값을 바탕으로 내전과 기온 상승, 강우량 감소 간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글로벌 사우스의 도시들은 결국 물 부족 문제에 시달리는 동시에, 이곳 시민들은 현재 경제, 건강 및 환경과 관련한 지정학적 비용과 씨름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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