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디폴트 공포 확산
-페소 추락 하락 우려도
-친시장 마크리대통령 승리 가능성 낮아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진=BBC)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진=BBC)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아르헨티나 예비 대통령 선거에서 복지정책 확대를 주장하는 좌파 후보가 친(親)시장주의 성향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을 완파하자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12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증시 메르발지수는 개장 직후 10% 이상 떨어진 후 점차 낙폭을 키워 지난주 종가 대비 무려 37.9% 폭락한 2만7530.80에 장을 마쳤다. 블룸버그는 달러 기준으로 치면 주가가 48% 하락한 것이라며, 지난 70년간 전 세계 94개 증시 중 역대 두 번째로 큰 낙폭이라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도 하루 만에 18.8% 추락해 달러당 57.30페소로 마감됐다. 이날 페소화 가치는 개장 초반 30%까지 급락해 역대 최저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1억500만 달러 규모의 보유 달러화를 매각하면서 낙폭을 줄일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매각한 것은 지난 4월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아르헨티나에서 치러진 대선 예비선거에서 중도좌파 후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47.7%를 득표해 마크리 대통령(32.1%)을 15%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따돌렸다. 오차범위 내 박빙 내지 최대 8%포인트 격차 정도로 나왔던 투표 전 여론조사와는 사뭇 다른 결과다. 

마크리 대통령의 예상 밖 완패에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보고서에서 이번 선거 결과가 "약세장 시나리오보다도 훨씬 더 극단적"이라며 "향후 몇 주간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 하락 압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BBC와 가디언 등 외신도 잇따라 같은 내용의 분석을 전했다.

컨설팅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이번 예비선거 결과가 "투자자들이 두려워하는 좌파 포퓰리즘의 귀환을 위한 길을 닦은 것"이라고 표현하며 "아르헨티나 주식과 채권, 환율이 당분간 심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에드워드 글로섭 캐피털이코노믹스 연구원은 페소화 가치가 달러당 70페소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 복지정책 확대로 이어질까?

이에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복지정책 확대와 재정지출을 늘리는 새 경제대책을 발표했다. 취임 이후 긴축정책을 고수하던 마크리 대통령이 연임 실패 위기감 속에 허리띠를 풀고 국민에게 당근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14일 라나시온 등 아르헨티나 일간지에 따르면 마크리 대통령이 이날 오전 발표한 경제대책에는 소득세 인하, 최저임금 인상, 복지 보조금 확대 등이 포함됐다. 근로자들의 소득세 비과세 한도를 종전보다 20% 상향하고, 자영업자들은 올해 낼 세금을 미리 납부하면 50% 감면해주기로 했다. 현재 월 1만2500페소(약 26만원) 수준인 200만 명 근로자의 최저임금도 인상한다. 

또 저소득층 자녀에게 주는 보조금을 9월, 10월에 추가로 지급하고 학자금 보조금도 40% 인상하며 공무원과 군인들에게는 이달 보너스를 지급할 예정이다. 아울러 유가를 향후 90일간 동결하기로 했다. 마크리 대통령은 이번 조치로 1700만 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인 출신의 친(親)시장주의자인 마크리 대통령은 지난 2015년 대선에서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국민의 열망 속에 좌파에서 우파로의 정권 교체에 성공하며 집권했다. 그는 좌파노선을 걸었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과 이전의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펼친 포퓰리즘 정책을 비판하며 공공요금 인상과 보조금 삭감 등 긴축정책을 폈다.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고도 경제위기가 나아지지 않아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고 인플레이션과 환율도 계속 치솟자 민심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예비선거 결과 발표 후 마크리 대통령은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며 "(예비선거일에) 여러분이 나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마크리 대통령은 자신의 경제정책의 실책을 시인하며 자신의 지나친 긴축정책이 아르헨티나 국민에겐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과산을 오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을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만 마크리 대통령의 방향 전환이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의 마음 또한 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장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날 부에노스아이레스 증시 메르발 지수는 장 초반 상승하다 하락세로 돌아서 1.4% 내렸고, 페소화 가치도 하락세를 이어가 달러당 60페소를 넘어섰다. 지난 예비선거 결과 직후인 12일에는 메르발지수는 38%, 페소화 19% 이상 대폭락하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사진=KBS뉴스)

◆ 본선거에서 반전 있을까

마크리 대통령이 본선거에서 반전을 다짐하고 있지만 이 다짐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주말 치러진 예비선거에서 1위를 기록한 중도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와의 지지율 격차(15.5%)가 워낙 커서다. 

10월로 예정된 본선거에서 겨룰 주요 후보들을 꼽기 위해 치른 이번 예비선거는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무 선거이기 때문에 민심을 읽을 수 있는 풍향계로 주목받았다. 당초 마크리 대통령은 경쟁 상대인 중도좌파 후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와 박빙의 승부를 펼치거나 오차 범위 내 패배가 예상됐지만 결과는 마크리 대통령의 완패였다.

10월 대선서 페르난데스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시장은 공포에 떨었다. 페르난데스가 내세운 러닝메이트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2007년부터 8년간 집권하면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해 아르헨티나 경제를 악화시킨 장본인으로 평가 받는다. 

포퓰리즘 정권이 다시 들어설 경우 아르헨티나 부채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투자자들은 아르헨티나 자산을 내던졌다. 12일 아르헨티나 증시가 38% 폭락하고, 페소화 가치가 19% 곤두박질쳤다. 블룸버그는 현재 시장이 향후 5년 간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을 75%로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시장 불안이 계속되면서 페소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 부채 중 80%는 외화 부채이기 때문에 페소가 떨어지면 부채 상환 부담이 더 커진다. 또 페소 하락이 수입 물가 상승을 부추겨 인플레이션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마크리 대통령의 입지도 더 위태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비선거 이후 아르헨티나 증시가 폭락했다. (사진=연합뉴스)

에드워드 글로솝 캐피털이코노믹스 중남미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를 통해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페소 가치가 달러당 70페소까지 떨어지는 상황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간밤 페소는 달러당 57.30페소에 마감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투자노트에서 페소 가치가 20% 더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아르헨티나 채권과 주식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축소'로 하향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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