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접어들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페미니즘이 지구촌 사회의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올랐다. 과거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단체 행동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차별의 운동장은 기울어진 채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지금은 구호를 외치는 자나, 그것을 바라보는 자나 전과는 많이 다르게 페미니즘을 느끼고 경험한다. 페미니즘이 그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정치 경제 사회 대중문화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의 깃발은 펄럭인다.  

페미니즘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향상된 여성의 자각과 가치관과 취향, 그리고 그들의 노동과 소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대중문화 시스템 속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페미니즘을 경제적·기업적·대중문화적 측면에서 생각해보는 연재를 싣는다.
 

(사진=설리 인스타그램)
(사진=설리 인스타그램)

화사와 설리의 공통점은? 연예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의 이름부터가 낯설지 모르겠다. 화사는 요즘 잘 나가는 걸그룹 마마무의 멤버이고, 설리는 f(x)라는 걸그룹 출신 가수다. 

정답은 ‘노브라’다. 이 두 사람이 브라를 착용하지 않은 사진이-자발적이든 또는 사진 기자에게 찍혀서든-인터넷에 떴다 하면 그 즉시 실검 1위다. 노브라의 원조 격은 설리다. 자신에게 브라는 액세서리일 뿐이라면서 수시로 노브라 차림의 평소 사진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당당하게 올린다.

화사는 최근에 인터넷을 뒤흔들었다. 7월 10일 해외 공연을 마치고 브라를 착용하지 않은 게 확연하게 드러나는 하얀 티셔츠를 입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모습이 한 연예 인터넷 매체에 찍힌 것이다. 네이버 뉴스 기준으로 이 기사만 무려 400건 가까이 보도됐다. 기간에 관계없이 ‘화사 노브라’로 검색하면 740여 건, ‘설리 노브라’로 검색하면 1,420건 정도 뉴스가 뜬다. 

공항 노브라 사건 이후 화사는 한국기업평판연구소라는 곳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 발표한 걸그룹 개인 브랜드 7월 평판에서 455명 중 1위를 기록했다. 그 전 조사에서는 12위였다. 역시 노브라의 힘은 위대했다. 노브라는 한국 미디어에서 폭발적인 뉴스 밸류를 지닌 단어임이 이 두 사람을 통해 끊임없이 입증되고 있다.

화사의 공항 노브라 패션에 대해 엇갈리는 네티즌 반응들.(사진=기사 댓글 캡처)
화사의 공항 노브라 패션에 대해 엇갈리는 네티즌 반응들.(사진=기사 댓글 캡처)

네티즌들의 반응은 성별에 따라 엇갈린다. 매번 엄청난 수의 댓글이 붙는데 여성들은 “당당해서 보기 좋다. 노브라는 자기 선택일 뿐이다”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남성들은 조금 다르다. “당당하다”, “보기 민망하다. 매너가 없다. 관종(관심 받는 걸 좋아하는 종자)이다”, “노브라는 당신 자유인데 시선강간이니 어쩌니 하는 말은 하지 마라. 보는 것도 내 자유다”라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남성들의 댓글에서는 여혐(여성 혐오)의 혐의가 짙은 것도 많다.  

브래지어가 페미니즘의 전위에 섰다. ‘노브라(no-bra)’라는 단어 자체에는 브라는 하는 게 정상, 안 하는 건 비정상이라는 뉘앙스가 숨어있다. 2017년 6월 방송 사상 처음으로 여성 사회자가 공개적으로 노브라 차림으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EBS 프로그램 ‘까칠남녀’의 ‘나 노브라야’ 편 박미선이다. 노브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알아본다는 취지였다. 그만큼 노브라는 우리 사회에서 문제적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논쟁적이다. 

젖꼭지를 아예 노출한 토플레스(topless, 탈브라)와 노브라는 엄연히 다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노브라는 그냥 개인의 선택일 뿐이지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다만 공공의 장소에서 가슴을 다 드러내는 문제는 그쪽도 논쟁 중이다. 미국 51개 주 중 절반이 넘는 주는 여전히 공공장소에서의 여성 가슴 노출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점차 위헌 판결이 많아지고 있다. 

기실 브래지어 100년의 역사는 여성해방의 역사다. 브래지어 자체가 여성의 몸을 지독하게 옥죈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고자 한 발명이지만, 브래지어의 운명도 세월이 흐르며  마찬가지였다. 여성 몸의 현대사는 가림과 드러냄의 충돌사다. 1960년, 70년대 여성운동과 저항문화는 브라를 억압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브라 화형식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미국 뉴욕주 법원은 1992년이나 돼서야 공공장소에서 토플리스 시위를 벌여 체포된 여성 운동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남성의 가슴보다 55년이나 늦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탈브라가 아닌 노브라 자체가 풍기문란이니 음란이니 하는 부정적 시선으로 아직도 여성을 억압한다. 여자의 젖꼭지는 꼭꼭 숨어있어야지, 표시만 나도 여전히 성적 코드로 해석되는 것이다. 남성들은 성적 욕망이나 관음, 판타지의 대상으로서 여자 가슴에 집착하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막상 그곳을 당당히 드러낸 여성은 무언가 다르게 바라본다. 요즘에는 페미니스트라는 라벨까지 씌운다.. 

마돈나의 콘브라(사진=마돈나 페이스북)
마돈나의 콘브라(사진=마돈나 페이스북)

80년대, 90년대 브라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자는 새로운 패션 조류와 맞물려 거꾸로 화려해지고 섹시해지고 대담해졌다. 빅토리아 시크릿을 필두로 한 란제리 산업은 번성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브라는 1990년 장 폴 고티에가 팝스타 마돈나의 월드투어를 위해 디자인한 ‘콘(cone)브라’다. 근육질 몸매에 원추형 브라가 달린 코르셋을 겉옷으로 입은 이 전위적 무대 의상은 성적으로 도전적이고 전과는 다른 강력한 여성성을 표출했다. 이런 패션은 이후 레이디 가가 같은 팝 여전사들의 의상과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브라의 운명은 2010년 중후반 미투와 함께 페미니즘의 새 물결이 지구촌을 휩쓸면서 비로소  변화한다. ‘탈코르셋’ 캠페인의 상징이 된 것이다. 내 몸의 주인은 나 자신이라는 의식, 남의 기준과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사회통념이 강요하는 여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의 기준에 저항하는 의식적 행동으로서 브라가 맨 앞줄에 서게 된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몸이나 체형을 존중하고 그 편견에 대항하는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운동과 맥을 같이 했다. 생리대나 겨털(겨드랑이 털)처럼 커밍아웃을 했다.  

가슴 노출을 허하라는 불꽃페미액션 시위.(사진=불꽃페미액션 페이스북)
가슴 노출을 허하라는 불꽃페미액션 시위.(사진=불꽃페미액션 페이스북)

여성의 가슴을 남자의 것과 달리 성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 대해 국내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저항한 집단은 2018년 불꽃페미액션이란 여성해방운동 단체다, 서울 강남의 페이스북 앞 대로에서 “여성의 가슴 노출은 음란이 아니다. 브라는 불편하다”며 상체를 다 드러내고 시위한 것이다. 단체로 상의를 벗고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을 음란물로 분류해 이 단체의 계정을 정지시킨 페이스북의 정책에 항의하는 이벤트였다. 놀란 경찰은 담요로 벽을 쳐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막았다. 여성은 마음대로 제 가슴을 보여줄 수도 없다.

시장은 시대적 가치와 트렌드를 읽고 즉시 반응한다. 새로운 브라가 탄생했다. 일종의 타협이다. 가슴을 모아주고 끌어주는 푸시업브라와 노브라의 사이에서 가슴에 반쯤은 자유를 주는 ‘브라렛’(bralette)’의 출현이다. 가슴 모양을 보정하는 와이어와 패드가 없이 면이나 레이스 등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진 홑겹 브라다. 가슴을 죄지 않는 편안한 착용감에 본연의 가슴 라인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다. 다양한 장식을 더해 그 자체가 아웃도어 패션 아이템으로 응용되고 있다. 브라렛은 2~3년 전부터 여성 속옷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노와이어 브라의 판매량은 계속 크게 늘고 있고 볼륨업 브라는 판매량이 20~30%나 줄었다. 

37만 3,800시간. 한국 여성이 평생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는 시간이다. 평균 수명(86세)의 여성이 13세부터 매일 14시간씩 착용한다고 치면 그렇다. 여성들이 귀가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일까. 바로 브래지어를 풀어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포털의 검색창에 ‘노브라’라고 치면 “청소년에 부적합한 검색 결과는 제외합니다. 연령 확인 후 전체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뜬다. 지구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여성 젖꼭지가 노출된 사진을 아직도 올릴 수 없다. 남성의 젖꼭지는 젖꼭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젖꼭지라는 신체 부위는 법적으로 모호한 지위다. 공공연한 장소에서의 가슴 노출이 위법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낸 사람은 의외로 남성이었다. 2015년 경남 양산에 사는 김 모 씨가 집 근처 공원에서 웃통을 벗고 일광욕을 했다가 경범죄처벌법 3조 1항 33조에 위배됐다며 범칙금 5만 원을 부과받았다. 그 조항은 이거다.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은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김 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대구지방법원은 “법 해석 자체가 모호하다”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고 헌재는 2016년 11월 이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신체 중 가려야 할 곳이 어딘지는 의미가 불분명하고,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고 판결했다. 이후 국회에서 개정 움직임이 있었지만 노출을 어디까지 허용할지가 여전히 쟁점이다. 

여성 가슴의 현실은 이렇다.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아슬아슬하게 젖꼭지만 살짝 가린 채 가슴을 거의 다 드러낸 여배우 패션은 우아 찬란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저잣거리에서 유두가 드러나면 ‘사고’이자 ‘음란’이자 ‘혐오’가 된다. 여성의 가슴은 최대한 섹시하게 드러내되 가능한 한 정숙하게 감춰야 한다. 여성 가슴 노출의 사회적 허용은 19금 영화나 방송 사고에서뿐이다.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 몇 번만 까딱하면 수백만, 아마도 수천 만 장이 넘는 여성 나체를 볼 수 있는 세상인데 말이다. 

브라는 여성의 에티켓인가, 사회의 공인된 규범인가, 개인의 자유이자 취향인가. 브래지어 산업은 이제 사양 산업이 될까. 브라 착용이 편한 여성도 있고, 브라를 해야 안정된 체형이나 상황도 있다. 여성이 브래지어로부터 진정 완전하게 해방되는 날이 올 것인가. 그 해방이란 무슨 의미일까. 브라든, 브라렛이든, 노브라든, 토플리스든 남성과 여성이 모두, 그리고 이 사회 전체가 그 선택에 대해 논쟁의 대상, 성욕의 대상, 관음과 음란, 규범과 도덕, 당당함과 수치의 영역에 가두지 않는 날이 해방의 그날이 아닐까.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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