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정책 등 겹쳐 “더는 못참아” 폭발
-설상가상으로 주지사의 막말파문...앞으로가 더 문제

푸에르토리코의 주지사 퇴진 운동. (사진=연합뉴스)
푸에르토리코의 주지사 퇴진 운동.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는 '카리브해의 하와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다. 흔히들 중남미의 작은 섬나라로, 독립국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엄연히 미국 내 자치령에 속한다. 

그보다도 쨍쨍한 햇빛과 맑은 바다, 색색의 파라솔과 모래사장, 신나는 레게톤 리듬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가수 겸 배우 제니퍼 로페즈나 리키 마틴 등 유명한 라틴계 연예인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어보다는 스페인어를 주로 사용하는 지역이니 분위기부터가 미국 본토와는 사뭇 이질적이다. 푸에르토리코라는 이름부터가 스페인어로 '부유한 항구'라는 뜻이기도 하다. 푸에르토리코 문화 역시 원주민과 스페인, 그리고 아프리카 문화가 혼합된 특징을 보인다. 이곳의 주 수입원으로는 대체로 관광산업을 꼽는다.

지리상으로는 미국 마이애미와 가깝다. 쿠바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쿠바 국기와도 색깔만 다른다. 그러나 쿠바와 달리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이다. 

◆ 파산 위기에 몰린 푸에르토리코

하지만 푸에르토리코의 경제 상황이 말이 아니다. 빈곤율이 45%에 달하고 실업률은 미국 본토의 두 배 수준이어서 '인구 이탈'이 활발한 상황이다. 미국 사상 최대 규모 파산신청을 했는데 트럼프 정부 들어 출구전략이 사실상 막혔다. 2017년 5월 로세요 주지사가 미국 연방법에 근거해 파산신청을 했는데 1230억 달러(약 144조7580억 원)규모로 파산신청을 해 충격을 낳았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시(180억 달러·약 21조1800억 원)보다 큰 액수다. 2006년 경제 침체 충격으로 자치정부가 빚을 늘렸는데 갚아야 할 채무 만기가 돌아와도 갚을 길이 없어서 2015년, 2016년에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기도 했다. 2017년 9월 섬에 불어닥친 허리케인 마리아로 3000~4000명이 사망하고 기반시설이 무너져 연방정부에 920억 달러(약 107조1600억 원) 복구 지원금을 신청한 상태다. 

일단 파산신청부터가 쉽지 않다. 애초에 미국 본토에서는 채무 상환 능력이 없는 미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연방법인 파산보호법 9조(Chapter 9)에 따라 파산 절차를 밟아왔다. 그러나 푸에르토리코는 자치령이어서 파산조차 할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시민들 생활고가 커지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정권 말기에 자치령 채무 재조정을 목적으로 '프로메사(스페인어로 약속이라는 뜻)'라는 법을 임시로 만들어 푸에르토리코가 파산 청원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파산신청에 대한 구제 조치는 없다"고 선언했다. 심지어는 백악관 참모진이 푸에르토리코를 '그 나라'로 부르기도 했다. 마치 60년대 후반 말레이시아로부터 강제로 쫓겨나 얼떨결에 독립국가가 되어버린 싱가포르가 생각나기도 하는 대목이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자치령이지만 정식 '주'가 아니어서 연방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그 대신 섬 주민들은 미국 대통령을 선출할 투표권이 없다. (다만 미 하원에는 할당된 의석이 있다) 투표권이 없는 데다 연방정부 자금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보니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푸에르토리코를 마뜩잖게 여겼다. 거기에다 섬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2등 국민’ 취급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 설상가상으로 막말` 주지사 발언 

허리케인 마리아 피해에 대해서는 트럼프 정부는 지난 4~5월 "텍사스는 390억 달러, 플로리다는 120억 달러만 받는다. 역사상 어떤 주도 의회에 910억달러를 신청하진 않았다. 그 돈을 요구하는 푸에르토리코의 부패한 정치인들은 무능하고 돈을 멍청하게 써대면서 미국(USA)에 돈을 달라고 한다"며 선을 그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수도 산후안에서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리카르도 로세요 주지사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했다. 버스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은 물론 미국 본토에서 비행기로 날아온 이들까지 시위에 가세하면서, 산후안 도심은 한때 마비되다시피 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의 숫자가 50만 명이 넘는다고 보도한 곳도 있다. 푸에르토리코의 전체 인구가 365만 명이니, 국민 7명 중 1명꼴로 시위에 참가한 셈이다. 푸에르토리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 중 하나라는 외신들의 설명도 잇따랐다.

리카르도 로세요 전 푸에르토리코 주지사. (사진=연합뉴스)

로세요 주지사가 측근 11명과 텔레그램 ‘단톡방’에서 나눈 ‘막말 대화’가 공개되면서 불붙기 시작했다. 푸에르토리코 탐사저널리즘 센터가 공개한 900쪽 분량의 단톡방 대화에는 야당 정치인은 물론 지지자와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의 희생자들에 대한 성차별적이며 동성애 혐오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인기 가수인 리키 마틴에 대해 “맹목적 남성우월주의자”인데 동성애자라며 비아냥거린 것 등이 한 예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리키리크스’라고도 불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에르토리코에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주지사는 포위당했고 비열하고 야비하며 무능한 산후안시장과 우리 연방의회가 멍청하게도 허리케인 구조기금 920억달러를 푸에르토리코에 주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로세요 주지사는 2주간 계속된 시민들의 퇴진 요구를 수용해 지난달 24일 사임을 발표했다.

주지사가 탄핵돼 새 주지사가 나와도 쉽게 풀리지 못하는 숙제가 있다. '프로메사'의 파산신청 처리 작업이다. 파산신청이 좌절됐어도 재정 부채가 쌓이면 주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시민들 반발이 높다. 긴축을 견디기에는 빈곤율이 너무 높고 게다가 허리케인 피해 복구도 하지 못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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