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신고절차와 탈세에 유리한 세제

태국은 이른바 스타트업의 왕국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태국의 스타트업 업계는 활기와 에너지가 넘친다. 신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도 가득하다. 그러나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이 부족하다!
  
실제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창설 회원국 5개국 중에서 태국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모두 유니콘을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무언가가 태국의 스타트업 업계의 성장을 억누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스타트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페크니파 도미니카 람 태국발전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낡고, 따르기 번거로운 세금 제도‘가 태국의 유니콘 육성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법인세 신고하기가 너무 불편해
  
2018년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태국의 기업들은 평균 세금 신고를 하기 위해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최장 6.6주가 소모한다. 필요한 서류도 21개나 된다. 싱가포르에서는 세금 신고를 하는 데 평균 1.6주가 걸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소득 국가들의 경우 불과 10.9개의 서류를 요구한다. 

장난감과 애완동물 용품을 배달업체인 포덕트박스(Pawductbox)의 공동창업자인 와트이암수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세금을 신고할 때 필요한 서류작업이 워낙 많다보니 내가 왜 창업을 했는지 후회할 정도다”라고 말한 바 있다. 포덕트박스 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현행 세제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태국 전자거래개발청은 2018년 기준, 국내에서 60만 곳이 넘는 전자상거래 업체가 운영 중인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이들 중에 불과 4만 곳이 좀 넘는 업체만이 사업개발부에 등록되어 있다. 태국에서 운영 중인 전자상거래 업체 중에 정식으로 법인세를 납부하는 기업의 비율이 7% 미만이라는 뜻이다. 

태국 전자상거래 업계가 정부 측에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사진=Korea IT Cooperation Center)

물론 법인세 회피를 위해 사업 등록을 피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라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처럼 규제가 느슨하고 세금 회피가 쉬운 소셜미디어 애플리케이션에서 판촉 활동을 강화하는 태국의 오프라인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불법 탈루에는 대가가 따른다. 업체들은 합법적 제휴사를 찾거나, 대출을 받거나, 사업 규모를 늘리기 어려워진다. 
  
정부는 이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류작업 간소화 조치를 도입했다. 업체들이 온라인으로 세금을 신고할 수 있도록 전자 세금신고 시스템을 구축한 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온라인 세금 신고 역시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 스타트업 기업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 정부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5년 태국 재무부는 전자결제 사용을 늘리기 위한 4단계 계획인 ‘전국 전자결제 마스터플랜’(National e-Payment Master Plan)을 선보였다. 세금 신고와 납부, 사회복지 혜택 등의 정부 결제 시스템을 100% 전자화 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전국 전자결제 마스터플랜’이 순항하는 듯했다. 2016년 태국중앙은행은 전국 전자결제 시스템인 프롬프트페이(PromptPay)를 출시했다. 프롬프트페이는 은행계좌 보유자들이 모바일 계좌이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이 시스템은 곧 큰 인기를 끌었고, 전문가로부터는 태국 전자상거래 업계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 세제 개편이 상황을 악화시켜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일어났다. 올해 3월 ‘전자결제 세법’이 발효됐는데, 새로운 법에 따르면 연 3000회 이상 거래, 월 400회 이상 거래, 연 200만 바트(약 7100만 원)이상의 거래내역을 보유한 금유기관들은 거래세부항목을 세무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측 입장에서는 전자결제 시스템을 감시함으로서 시스템을 누가 이용하는지, 그리고 세금을 탈루했는지를 조사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정부 역시 이 법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로 불법 탈루를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을까? 도미니카 람 연구원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많은 업체들은 법망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도미니카 연구원은 이에 대해 “방콕 쇼핑몰 주위를 돌아다녀보라”며, “프롬프트페이 시스템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사람들은 현금결제만을 원한다”고 설명한다.

소매점들은 소비자들이 프롬프트페이 시스템을 통해 결제할 수 있는 QR 코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주들은 무조건적으로 현금 결제를 선호한다. 업주들은 현금을 받음으로써 계좌 거래횟수를 줄임으로써 ‘전자결제 세법’의 감시 대상이 되는 걸 피할 수 있다. 효과적으로 탈세가 가능하다는 점은 보너스다.
  
실제로 태국은 ‘지하경제’(informal economy)에 중독된 나라다. 2018년 국제통화기금(IMF)은 태국의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50%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다른 ASEAN 국가들에 비해 태국의 지하경제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크다. 그리고 진입과 진출이 수월한 전자상거래 업계의 경우 이처럼 지하경제 속에서 운영되는 업체들 비중이 특히 다른 업종에 비해서 크다.    
  
실제로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늘 정부의 세제 개편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규제를 피한 차익거래가 아주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분야다. 소매업체들 역시 늘 탈세를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태국의 낡은 세금제도는 신경제에 어울리는 옷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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