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이 쫓는 허상

이민자의 꿈, 아메리칸 드림! (사진=Aaron Burden)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과거에는 이른바 ‘성공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를 잘 수행하면 나중에 성공할 수 있다는 약속이다.

“명문대에 들어가면,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살 수 있다” 등은 이른바 이러한 성공규칙을 대변한다. 지금쯤 사회에 나와 자리를 잡은 이들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들어본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오늘의 사회는 당시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기에다 여성 차별, 난민 문제, 외국인 노동자와 규칙의 근간을 흔드는 각종 진보적인 담론은 그간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를 충실히 실행해 온’ 주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UC 버클리의 사회학과 교수인 앨리 혹실드는 미국에서 비슷한 현상을 연구해왔다. 그의 질문은 ‘아메리칸 드림이 아직도 유효한가?’에서 출발한다. 그는 과거의 믿음과 성공규칙이 배신당하는 순간에서 갈등은 증폭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와 함께 트럼프의 등장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주류 백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희망과 자부심, 그리고 원한과 불안을 보여주고자 은유적인 형태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그가 재구성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그들의 경험과 일치한다고 물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야기는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몇 개의 장과 막으로 구성되어있다. 아메리칸드림은 흔히들 비유되듯, (최근에는 조던 필 감독이 영화 <어스>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변주와 왜곡을 은유한 바 있다) 모든 미국인들이 한 개의 문을 향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성공규칙

당신은 성지순례 행렬처럼 언덕의 꼭대기까지 길게 이어진 줄에서 참을성 있게 당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당신은 줄의 중간쯤에 서 있다.

주변에는 당신과 같은 백인에 기독교인들로 가득하다. 당신보다 나이 든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다. 대부분이 남성이고, 교육 수준은 대졸자부터 전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까지 다양한 편이다. 

이 언덕을 넘어가면 아메리칸 드림에 도달할 수 있다. 줄의 저 아래에는 유색인종에 가난하고,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당신의 뒤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당연히 그들이 불행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신 역시 오랜 시간 기다렸다. 줄은 이제 막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신은 점점 초조해진다. 그리고 당신 앞에 서 있는 이들이 누군지, 특히 이미 언덕의 꼭대기에 도착한 이들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아메리칸 드림은 결국 성공에 대한 꿈이다. 당신의 부모보다 더 좋은 환경을 누리고 싶다는 희망. 당신의 부모 역시 자신의 부모보다 잘살기 위해 노력했다.

어찌 보면 단순히 돈, 물질만을 향한 것이 아닌, 원대한 꿈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기 위해 당신은 고된 노동, 해고 위험을 견뎌냈다. 힘들고 어려운 시험에도 당당히 통과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일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인생을 국가가 나서서 인정해주는 일종의 명예훈장과도 같다. 

그들이 꿈꾸는 모습은 아마 이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날은 계속 더워지는데, 줄은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후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임금은 몇 년간 제자리걸음이고, 앞으로 오를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임금은 사실상 점점 줄었다. 당신의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신세다. 대다수는 괜찮은 일자리를 찾는 시도를 아예 포기했다. 그저 자신들을 위한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도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이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족과 교회를 믿는다.

솔직히 사회가 당신의 관대함과 너그러움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줄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토록 큰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줄 한가운데서 영원히 움직일 수 없을 듯하다.

자신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가장 먼저 기독교적 윤리가 떠오른다. 당신은 성실함, 일부일처, 이성 간 결혼을 철저하게 지켰다. 좌파들은 당신의 생각이 고루하고, 남녀 차별이고, 동성애 혐오라고 비난하지만, 그들이야말로 그러한 가치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와 함께 아침 기도와 기상 나팔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던 시절이 참 좋았다고 회상한다.

◆ ‘새치기꾼’이 내 권리를 훔쳐가고 있다

그러나 사기꾼들이 새치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은 점점 뒤로 밀리는 듯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들은 누군가? 가장 먼저 흑인이 보인다. 정부 정책에 따라, 그들은 입시에서도, 취업에서도,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때도, 무료 식권을 받을 때도 더 큰 혜택을 누리게 됐다. 여성, 이민자, 난민, 공무원들, 끝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당신 앞으로 밀려든다.

과거에 당신이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도 그와 같은 혜택이 존재했으면 좋으련만, 당신이 어렸을 때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젊은이들만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부당하다.

버락 오바마는 또 어떤가? 가난한 이혼녀의 혼혈아가 대통령이 되다니, 당신은 아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혜택 받은 계층이지 않느냐고 떠들어대는 상황에서, 오바마의 성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오바마가 컬럼비아 대학처럼 비싼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혜택 덕분이었을까?

아버지가 상수도 관리 기사에 불과했던 미셸 오바마는 무슨 돈으로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에서 수학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정부가 이 모든 금액을 지불했던 것임이 틀림없다. 미셸은 끊임없이 화내는 대신 그녀가 누린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 그녀에게는 화를 낼 권리가 없다.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졌다. (사진=연합뉴스)

비자를 손에 든 필리핀인, 멕시코인, 아랍인, 인도인, 중국인들이 당신 앞에 새치기를 한다. 아주 최근에, 당신은 히스패닉 남자들이 사솔(Sasol) 기업의 필리핀인들을 위한 숙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직접 봤고, 이 때문에 존경스러운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낮은 임금을 내세워 미국 노동자들의 자리를 빼앗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난민들은? 400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인들이 전쟁과 혼란을 피해 조국을 떠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1만 명이 넘는 난민들을 미국 땅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중 2/3는 여성과 아동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난민 10명 중 9명은 젊은 남자 즉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다. 그들은 줄을 서는 예의 따위는 무시하고 당신이 낸 세금으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것이 분명하다. 
 
흑인, 여성, 이민자, 난민까지, 모두 당신 앞을 지나쳐 간다. 그러나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든 것은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이다. 새치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게임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다. 당신은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고, 당신이 왜 그들의 편의를 봐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연민과 동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사기꾼들에게까지 아량을 베풀고 싶지는 않다. 공감을 강요하는 세태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들은 끝도 없이 불평을 늘어놓는다. 인종차별, 성차별, 억압받는 흑인들, 남성들에게 억눌린 여성들, 착취당하는 이민자들, 핍박받는 동성애자들, 절망적인 난민들 이야기는 이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결국 당신은 공감의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인간적인 공감이 당신에게 해를 끼치는 이들에게 득이 된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당신은 감내해야 하는 고통 그 이상을 이미 견뎌냈다.

이제 당신은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 앞에 새치기하고 섰다는 것은, 배후에 힘 있는 누군가가 그들을 밀어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게 과연 누굴까? 보통은 줄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서, 줄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오가며 모두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아메리칸 드림에의 접근이 공정한 조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마련이다. 

오바마였다. 그는 새치기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기는커녕 그들에게 호의적인 인사를 건넸던 것이다. 당신에게는 절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던 공감을 그 사기꾼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사기꾼들과 한통속이었다. 줄의 이동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자가 사기꾼들과 협정을 맺은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 가족. (사진=픽사베이)

당신은 배신감을 느꼈다. 그 대통령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자긍심을 전혀 알지 못한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향하는 줄은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이동하고 있고, 또한 백인, 남자, 기독교인에 대해 무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 속에서,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당신이 그 무엇보다도 지키고 싶은 명예이자 가치이다. 오늘날에는 인디언, 여성, 게이이기만 하면 대중의 공감을 쉽게 이끌어낸다. 이런 상황에서 소외된 그룹은 단 하나, 당신이 속한 그룹뿐이다.

당신은 애국자였다. 누군가 미국에 불만이 있다면 당신에게도 불만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대통령 때문에 미국에 대한 자긍심을 더 이상 느낄 수가 없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당신은 자기 땅에서 이방인이라 느끼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과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  

◆ ‘성공’에 대한 허상들

미국인 ‘서민’ 계층에 있어서, 언덕의 보이지 않는 다른 한쪽에 위치한 꿈을 실현해 줄 기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자동화, 기업들의 해외 이전, 다국적 기업이 가진 엄청난 권력으로 고장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서민 계층 안에서 각 사회 집단간의 경쟁은, 고용, 회사 내 직책, 생활 보조금 등 분야를 막론하고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꿈을 실현해 줄 기계는 이미 예전에 고장 났다. 1950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는 나이가 들어도 자동적으로 임금이 올라갔다. 그러나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너무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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