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강경파 보리스 존슨, 브렉시트 의지 천명
-10월 31일,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 높아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운명의 10월 31일. 아무런 조건 없이 유럽연합(EU)을 뜬다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후임이 된 보수당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브렉시트 이행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23일 보수당 당수 선거 승리 연설에 이어, 다음날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가진 첫 대국민 성명에서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브렉시트의 예외는 없다”며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오는 10월 31일에 유럽연합을 탈퇴하겠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존슨 총리는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이자 대표적인 브렉시트 강경파다. 의원 시절 헝클어진 양복을 입고 더벅머리를 휘날리며 출근하는 ‘동네 아저씨’의 모습으로 대중적 인기를 끈 바 있다. 거기에다 잦은 막말과 뚜렷한 보수 성향, 흩날리는 금발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닮아 ‘영국의 트럼프’라는 별칭이 붙었다.

존슨 총리 앞에는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더미다. 올해 10월 말로 시한이 다가온 브렉시트, 유조선 나포를 주고받은 이란과의 충돌, 사분오열이 된 내각과 당의 재정비, 안보·난민 문제 등을 둘러싼 유럽연합과의 정책 조율, ‘특별한 관계’로 불려온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 등 어느 하나 만만치 않다. BBC는 “존슨이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은 재앙 덩어리”라며 “보수당이 의회 하원에서 다수당이 아닌 데다, 그의 총리직 승계가 총선이 아니라 (전체 인구의 0.2% 남짓한) 보수당 당원 투표로 결정됐음을 기억하라”고 지적했다.

◆ 존슨의 목표…일단 브렉시트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 신임 총리의 성패를 좌우할 최대 과제는 단연 브렉시트다. 브렉시트 후폭풍에 영국에선 3년 새 총리가 두 번이나 교체됐다.

2016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총선 승리를 위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승부수로 걸었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찬성)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바 있다. 테레사 메이가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EU와 도출한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의 벽에 막히면서 결국 떠나게 됐다.

존슨 총리가 이들 전임자와 다른 건 그가 뿌리 깊은 EU 탈퇴파라는 점이다. 그는 2016년 국민투표 당시부터 브렉시트 운동에 앞장선 바 있다. 영국이 EU와 결별해야 경제·사회적으로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EU에 남기보다는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가 낫다고 주장한다.

존슨 총리는 이런 강경한 태도로 EU에 재협상을 압박하고 있다. 존슨 총리가 원하는 조건은 탈퇴 조건에서 최대 쟁점이 된 안전장치(백스톱) 조항을 들어내고, EU의 단일시장 및 관세동맹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하드 브렉시트’다.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국경에서 통행·통관 절차가 엄격해지기 때문에, EU와 테리사 메이 총리는 영국을 EU 관세 동맹에 당분간 잔류시키는 ‘백스톱’ 조항을 논의했다.

외무장관 당시의 보리스 존슨. (사진=bbc)

그러나 존슨은 최근 당 대표 경선 토론회에서 ”탈출구 또는 백스톱을 위해 공을 들인 모든 장치와 구실, 보완 내용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며 백스톱 조항 폐기 의사를 시사한 바 있다. 이는 아일랜드의 반발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사이먼 코베니 아일랜드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21일 공개적으로 존슨 전 총리에게 백스톱 폐기 의사 재고를 촉구한 바 있다. 그는 BBC 방송의 앤드루 마 쇼에 출연해 “브렉시트 합의안을 파기하는 것이 총리의 입장이라면, 우리는 곤경에 빠진 상태다. 솔직히 말해 우리 모두 곤경에 빠졌다”고 우려했다.

또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도 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존슨은 자신을 노딜 브렉시트라는 틀에 가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EU는 노딜 브렉시트를 막고 협상 시간을 벌기 위해 브렉시트 시한 연장 제안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EU는 줄곧 재협상은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강대강’ 대치 속에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셸 바르니에 EU 측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는 이날 트위터에 “브렉시트 합의안 비준에 속도를 내고 질서 있는 브렉시트를 달성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싶다”며 탈퇴 조건 재협상에 선을 그었다.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대해서는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 존슨과 브렉시트, 재앙적 조합 될 수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영국과 EU가 재협상을 한다고 해도 탈퇴일까지 남은 기간은 석 달뿐이다. 공휴일과 여름 의회 휴회를 제외하면 실제 기간은 1개월 정도다. 하지만 존슨 총리는 탈퇴일 연기는 생각지도 않는 것 같다. 그는 “탈퇴 아니면 죽기(do or die)”라며 10월 31일 탈퇴를 못 박아왔다.

한편, 존슨 총리 집권에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남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선호해 온 시장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날 달러 대비 영국 파운드화 값이 27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을 정도다. 마이클 브라운 캑스턴FX 선임 애널리스트는 CNBC에 “존슨 총리가 탈퇴 아니면 죽기 기조를 고수하면 파운드화에 하방압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 싱크탱크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전날 낸 보고서에서 10월 31일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을 40%로 제시하며, 노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이 경우 내년 국내총생산(GDP)이 2% 쪼그라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노딜 브렉시트보다 하드 브렉시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칼룸 베렌버그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기본 시나리오로 하드 브렉시트를 꼽으며 그 가능성을 40%로 관측했다. EU가 존슨 총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 셈이다.

보리스 존슨의 등장과 함께, 올해 안으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늘어가고 있다. (사진=ytn)

피커링은 또 EU가 존슨 총리의 하드 브렉시트 요구를 거부하더라도, 브렉시트 온건파가 논의의 주도권을 잡으러 나서면서 올가을 의회에서 중대 결전이 치러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브렉시트 시한이 재연장되거나 조기 총선, 2차 국민투표 등의 선택지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실제로 보수당에서조차 ‘노딜’만은 막아야 한다는 온건파가 적지 않다. 더구나 다음 달 1일 예정된 브레콘 및 래드너셔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보수당이 예상대로 패배할 경우 연합정당인 민주연합(DUP)을 합쳐도 과반까지 1석밖에 여유가 없다. 의석수가 줄면 존슨 총리의 국정 추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크리스티안 슐츠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이 또다시 침체 위기에 놓이면 유권자들 사이에서 노딜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게 되면 차기 정부가 EU에 강경하게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 지렛대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존슨 총리는 이번 주 안에 브렉시트 탈퇴파 중진 의원들로 신속히 내각을 구성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26일부터 본격적인 대외 활동을 시작한다는 복안이다. EU에 브렉시트 재협상 개시를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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