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성범죄 해결 노력...효과 미진해
-낮은 유죄판결률이 문제라는 지적도

CNN은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 10곳’을 선정한 결과, 인도를 1위로 꼽았다.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인도는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것도 인도를 찾는 외국인 여성들보다는, 자국인 여성들에게 더욱 위험한 나라라는 주장에도 이견이 없다.

2012년 뉴델리 시내버스 안에서 20대 여대생이 집단으로 성폭행당한 뒤 숨진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이 사건이 국내외로 널리 알려지면서 인도의 ‘안전’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성범죄에 대한 대처 측면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에는 이 사건을 재구성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에 정부에서도 부랴부랴 집단 성폭행에 대한 최저 형량을 강화했다. 그러나 성범죄는 여전히 범람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비하르주에서는 지난 4월 10대 소녀가 집단 성폭행에 저항하다가 염산 투척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뉴델리 여대생 집단 성폭행 사망 6주기 추모 행사가 열린 시기에는 3살짜리 여아가 40대 경비원에게 성폭행당한 일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인도의 한 모녀가 성폭행에 저항했다가 삭발당한 채 마을을 돌며 망신당한 일도 있었다. 이에 비하르 주 경찰은 지난달 27일 강간 미수와 폭행 혐의 등으로 남성 4명을 체포했고 현재 다른 용의자들을 추적하고 있다.

이렇듯 인도에서의 성폭행 문제는 잠잠해질 줄을 모르고 있다. 정부가 잇따라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오히려 역효과만 내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최근 인도의 주요 주에서 성폭력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2012년의 충격적인 사건 이후로 성범죄는 7년 전에 비해 60% 증가했다. 
  
인도 헌법은 테러리즘과 같은 중대문제가 아닌 이상 법질서 유지의 문제를 주정부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마다 늘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 사태를 다루기 위해 각기 다른 방법을 쓰고 있는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서로 다양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평가다. 

인도 국가범죄기록센터(NCRB) 자료에 따르면, 강간과 성폭행 문제는 우타르 프라데시, 마디야 프라데시,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들 주 정부는 이에 여성 안전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조치들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런 조치가 인도의 형사 제도의 근본문제와 시스템적 결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6년 인도에선 3만 8947건의 강간 신고가 접수됐다. 2015년에 비해 12% 증가한 수준이다. 성폭행, 성희롱, 성추행의 신고 건수는 전국적으로 8만4746건에 달했다. 이것은 가정 폭력 사건 다음으로 흔한 여성 대상 범죄다.   

여성 성범죄 근절을 위한 시위에 참가한 한 인도여성. (사진=CNN)

◆ 하나같이 어설픈 대책들 
  
2017년 우타르 프라데시 주 총리가 된 요기 아디티야나트(Yogi Adityanath)는 이른바 ‘사복 경찰’ 제도를 도입했다. 경찰이 민간인 복장으로 공공장소를 순찰토록 하는 팀을 만들어 여성 안전문제를 척결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권침해 논란 끝에 분대는 얼마 안 가 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이 잇따르자 아디티야나트 총리는 다시 경찰에게 용의자들을 대상으로 경고용 '레드카드'를 발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비슷한 행위로 두 번 적발되는 사람은 형사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난의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막강한’ 권한을 얻은 경찰들이 젊은 남자들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며, 커플들의 풍속을 단속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적발한 사람을 대상으로 공공장소에서 윗몸 일으키기를 시커거나 삭발을 하게 했다는 등의 보도까지 나오면서 그들은 다시금 인권침해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인근 라자스탄 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5월까지 여성에 대한 범죄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가량 급증했고, 강간 사건도 30%나 늘어났다. 아동성범죄 역시 두자릿수 비율로 증가했다. 주 정부가 작년 성범죄 해결을 위한 전담 팀을 만들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여성 인권운동가인 카비타 스리바스타바(Kavita Srivastava)에 의하면 “라자스탄 주에서 정부는 강간 희생자를 돕기 위한 원스톱 위기 센터나 여성 전용 헬프데스크를 충분히 만들지 않았다”며 “대신 공개장소에서 풍속을 단속하면서 여성을 모욕하는 경찰 분대만 만들려고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제 라자스탄 주정부는 여성 범죄 특별조사단을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한 자료에 따르면 델리에서도 지난해 하루 최소 5건의 강간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주 정부는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돌아다니게 무료로 지하철과 버스를 탈 수 있게 해주고, 30만 대의 CCTV 카메라를 설치함으로써 여성 안전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델리 경찰은 오토바이를 타고 길거리를 순찰하는 라프타(Raftar)라는 여성 경찰부대도 만들었다. 그러나 델리의 여성들은 오히려 "길거리에서 그들을 보기 힘들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실제로 델리 경찰의 자료를 보면,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력은 과거에 비해 소폭감소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올해 6월까지의 강간 사고는 973건인데,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05건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 처벌받지 않는 성범죄

마디야 프라데시 주는 지난 2017년 주 최초로 12세 미만 여아를 성폭행한 남성에 대해서는 사형을 구형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올해 6월 내내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 보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부는 버스나 택시 등에 GPS 추적 장치와 ’비상 단추' 도입에 착수했다. 
  
마하라슈트라 주는 여성 안전 대책을 위해 25억 루피(약 425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사건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비정부 단체인 아크샤라와 사페티핀(Akshara and Safetipin)의 조사에 따르면, 마하라슈트라 주 주도인 뭄바이 지역의 44%가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에 따르면 뭄바이 거리 중 불과 22%에서만 여성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이에 마하라슈트라 주 정부는 마침내 SOS 핫스팟 설치, 앱 추적, CCTV 카메라 추가 설치 등과 같은 안전 조치를 제안했지만, 여성들은 감시 강화가 여성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 내 성범죄를 줄이기 위한 국가차원의 정책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사진=CNN)

여성 안전을 높이기 위한 주요 국가계획의 시행 성과도 부진하다. 최근 발표된 복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에 주와 연방 직할령들(총 9곳)이 여성 안전을 위한 계획을 지원하는 ‘니르바야 기금’(Nirbhaya Fund)의 수혜를 입었다. 그러나 한 감시단의 보고에 의하면 이들에게 배정된 85억 루피(약 1465억 원)의 예산 중 채 20%도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다다. 니르바야 기금은 2012년 12월 뉴델리에서 발생한 한 여학생에 대한 잔혹한 집단 강간 사건 이후 조성됐다. 여성 대상 범죄율이 가장 높은 델리는 3억5000만 루피 중 불과 0.84%만 사용되었다. 막상 돈은 받아놓고서, 사용하지는 않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중죄를 저지른 남성들이 처벌받지 않는 문화로 인해 범죄 차단 시스템이 약해진 이상, 정부의 시책과 법 시행만으로 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에도 미성년자 강간 사건이 벌어졌지만, 영향력 있는 인사들로부터 외압을 받은 경찰이 증거를 은폐하며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에 대한 비난은 최고조에 달했다. 
  
결국 낮은 유죄 판결률이 만연한 여성 성범죄의 주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 기관의 자료를 보면, 인도에서 강간에 대한 유죄 판결률은 25.5%에 불과했다. 성폭행과 성희롱에 대한 유죄 판결률은 22% 이하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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