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적에 맞서는 그들의 자세

지난달 5일 러시아를 찾은 시진핑 주석.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작금의 중국-러시아 관계는 아마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가장 훈훈했던 시기로 기억될지 모른다.

6월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양국 간 관계는 최고조에 달했다. 
  
시 주석은 중러 수교 70주 년을 축하하기 위한 국빈 방문 도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라고 부르면서, 두 사람이 지난 6년 동안 거의 30차례 만났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또한 “우리 두 정상의 관계를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과거 소련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직후 중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었다. 1950년 2월에는 모택동과 스탈린은 ‘중소 우호동맹 상호원조 조약(中苏友好同盟互助条约)’을 체결했다. 명목은 ‘상호원조’이지만 사실상 소련이 공산주의 중국을 일방적으로 지원해 주는 내용이었다. 이미 패전한 일본에 대해서도 소련과 중국이 공동으로 경계하자는 내용도 들어있다. 세계 평화를 같이 보위하자며 정치∙군사 동맹을 맺고, 소련은 중국에게 경제원조를 제공한다.
 
1960년대 초에는 중소분쟁(中蘇紛爭)으로 양국의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했다.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문제를 지적하고 스탈린 격하에 나섰던 시기이다.

모택동은 소련의 이러한 움직임을 공산주의에 대한 심각한 수정주의라고 비판했다. 중국의 무기개발 관련 갈등도 있었다. 소련은 모택동의 중국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중국에 가 있던 소련의 기술자들은 자국으로 철수했다. 아울러 소련은 1962년 중국과 인도의 국경충돌이 일어나자 인도를 지원했다. 1969년에는 중국과 소련 사이에 국경충돌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부침을 거듭하던 양국 관계는 1989년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았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계기로 양국의 관계가 다시 호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소련의 몰락과 냉전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이전보다 더 공고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여기에는 역사와 공통된 관심사뿐만 아니라 서방국가들에 대한 적대감이 모두 중요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국가들의 제재 대상이 됐다. 이에 중국이 구원투수를 자청, 러시아에 자금을 지원하고 통화스왑을 체결한 바 있다.

중국 역시 현재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화웨이에 대한 공격이 그 시작이었다. 이에 시 주석은 반대로 러시아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 공동의 적에 맞서는 양국

이렇듯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변모해왔다, 더욱이 양국 국민들의 정서 또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남중국해 분쟁 이후 양국이 서방을 견제하기 위해 서로를 적극 지원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서방이 2차 세계대전에서의 자국의 기여를 평가절하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을 비호한다고 불신하는 양국의 공통적인 인식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전후로 여러 역사 관련 이벤트가 벌어지는 와중에 중러협력이 가속화되는데 일조하고 있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과 의장대 파견에 화답하여 중국의 전승절 초청에 가장 먼저 참석과 의장대 파견을 결정한 것도 러시아였다.
  
각국 정상과 등 75개국 1만7000여 명이 참석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에서는 1000명으로 구성된 초대형 대표단을 이끌고 등장한 시 주석이 단연 스타 대접을 받았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약 30개 정부 간 및 상업적 협약을 체결했고, 러시아 동물원에 팬더 2마리를 선물하는 일명 '팬더 외교'를 펼쳤다.

시진핑 주석. (사진=KBS 뉴스)
시진핑 주석. (사진=KBS 뉴스)

중국은 러시아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러시아 경제개발부에 따르면 2018년 양국의 무역액은 2017년보다 27.1% 증가한 1070억 달러(약 123조7000억 원)를 기록했다. 올해 잠정 집계한 자료를 보면 현재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거기에다 러시아는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참여하고 있다. 양국은 이를 통해 유라시아 경제 통합을 더욱 강화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러한 약속은 푸틴 대통령이 참석한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포럼 행사를 통해서 다시 한번 사실로 드러났다.
  
러시아가 추진 중인 일대일로의 핵심 프로젝트는 중국의 동북부 헤이허의 하구항과 러시아 국경도시인 블라고베셴스크를 연결하는 아무르강을 가로지르는 국경 간 고속도로 교량 건설이다. 올해 10월 개통이 예상되는 1.28km 길이의 이 다리는 19.9km에 이르는 국경 간 고속도로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이보다 더 야심차게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중·몽·러 경제회랑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중국 톈진항에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거쳐 러시아 울란우데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와 새로운 철도 연결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상당한 경제적 불균형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중국이 러시아에겐 가장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지만, 중국에게 러시아는 그만큼 중요한 교역 상대국은 아니다. 2017년 기준 중국의 대(對)러시아 수출액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인 440억달러(약 51조 원) 정도에 불과했다. 중국 전체 수출액에서 20%를 차지하는 대미 수출액 4770억 달러와 민망한 수준이다. 
  
◆ 중국이 러시아에 바라는 것 

그럼에도, 중국과 러시아 경제는 서로 상당한 보완적 성격을 띤다. 
  
러시아는 최근 중국과 200억 달러어치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자랑했다. 중국의 2대 전략 분야인 기술과 농업 분야에서의 관계도 한층 돈독해졌다. 

농업인들의 이민을 흔쾌히 받아준 것 역시 주목할 만 하다. 일부 농민들은 벌써 이주를 시작했다.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가 동북부 지방에 한해 중국 농민 1인당 농지 15무(3000평)까지 무상 제공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조건은 있다. 이민자들이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5년 동안 농사를 지은 농민의 경우는 러시아 정부의 보증을 통한 은행 융자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러시아가 중국을 얼마나 배려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연히 러시아의 배려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콩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도록 러시아가 콩 경작 경지 100만㏊(1만㎢)를 중국에 제공하는 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미국산 대두 수입을 금지했을 때는, 러시아는 이에 보조해 중국의 수요에 맞춰 대두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당초 중국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되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6일에는 양국이 약 10억 달러 규모의 연구개발(R&T) 혁신기금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타스 통신은 양국의 국부펀드인 러시아 직접투자기금과 중국투자공사가 공동으로 출자한다고 보도했다.

전통적으로 에너지는 양국 간 경제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이 연내 완공되면 러시아가 중국에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지역에 가스라인을 준공하고 공급하는 것은 러시아의 최우선순위 중 하나다. 거기에다 중국은 또한 세계 최대의 LNG 생산지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 프로젝트의 지분 20%를 가지고 있다.
  
작년에는 합동 군사훈련이 열렸다. 이 훈련은 냉전 종식 이후 최초로 실시되는 러시아의 군사훈련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각종 관영 언론들은 양국의 합동훈련이 40년 만의 최대 군사훈련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중국은 병력 3200명, 각종 무기 900여 대, 전투기와 헬기 30대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사훈련에 이어 나아가 군사동맹 체결 가능성까지 더욱 높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같은 현실만 보면 미국과 유럽의 불안감도 이해가 된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당시 군사훈련에서는 핵공격 모의연습도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공동의 적이 자리를 비운 곳에는

경제적 협력 외에 두 나라를 하나로 묶는 핵심 고리는 서방과의 악화된 관계다. 
  
러시아 입장에선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가 미국과 유럽연합(EU)과의 악화된 관계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양국 모두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에게서도 경제재제나 투자규제 등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양국의 관계가 온통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러시아가 중국에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해하고 있다. 과거 수십 년 동안 구소련은 가난하고 후진적이고 인구 과잉에 시달리는 중국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부유했다.

그러나 현재의 러시아는 중국에 훨씬 뒤처져 있는 게 사실이다. 전 세계로 투자처를 넓혀가고 있는 중국의 자본은 세계시장에서 중국의 위상을 크게 높여놓았다. 그 사이 러시아는 하나의 큰 국내기업으로 전락했다
  
양국은 특정 전략 분야에서도 영향력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령, 시베리아와 러시아 극동지역은 중국에 대한 불신이 큰 편이다. 그곳의 많은 현지인들은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 활동을 펼치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의 잠재적 갈등도 주목할 만 하다. 러시아는 자국의 뒷마당 격인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에너지 전략의 중요한 거점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국은 석유·광물·에너지 등 자원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천연가스도 중앙아시아에 있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들여오고 있는 형국이다. 또 중국과 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보고 있어 철도 등 각국 인프라 건설에 적극적인 융자를 해주고 있다. 

이러한 목적 하에, 중국은 최근 타지키스탄에 접근하고 있다. 푸틴이 수십 년간 강력한 ‘후원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곳이다. 러시아의 군대와 기지가 주둔해 온 곳이기도 한 이상 러시아는 중국의 팽창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도 바빠졌다. 경제 위기에 빠진 투르크메니스탄에는 올해 안으로 3년 만에 가스 수입을 재개하기로 하는 등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 대해서는 최초의 원전 건설에 협력하기로 합의하고 5월 서명했다. 4월에는 카자흐스탄에도 원전 건설을 제의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훌륭한 양국 관계가 틀어진다면, 이 곳에서의 갈등이 그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가능성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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