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 베일리와 인어공주. (사진=디즈니)

[데일리비즈온 서은진 기자] 디즈니의 새로운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엘’ 역에 미국의 가수 겸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됐다. 1989년 원작 애니메이션 <인어공주>가 발표된 후 30년 만에 ‘흑인 에리엘’이 탄생했다.

디즈니는 4일 트위터를 통해 “할리 베일리가 신작 실사 영화 <인어공주>에 캐스팅됐다”고 알렸다. 롭 마샬 감독은 “할리가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마음과 정신, 젊음, 순수함, 찬란한 가창력 등 모든 자질을 가졌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할리 베일리 역시 “꿈이 이루어졌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원작의 에리엘은 붉은 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전형적인 백인 소녀의 모습이었다. 디즈니는 에리엘 역에 과감히 흑인 배우를 캐스팅한 셈이다. 디즈니는 최근 과거 작품을 리메이크하며 사회적 소수자와 문화적 다양성을 배려하는 정치적 올바름을 더해온 바 있다. 2017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는 아시아계 여성 캐릭터 ‘로즈 티코’를 새롭게 선보였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연출 과정에서 그 성격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데다, 서사에서 겉돌며 개연성 있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함에 따라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서 지탄을 받은 바 있다.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된 나머지 영화 예술의 본질을 호도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논란은 예고된 것일지 모른다. 이 같은 소식에 국내외 누리꾼들은 베일리의 캐스팅이 원작의 매력을 훼손한다며 비난하고 있다. 베일리의 외양이 인어공주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보인다는 이야기다. 거기에다 덴마크 원작 동화의 주인공을 흑인 배우로 캐스팅한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일각에서는 “콩쥐 팥쥐 영화에 흑인 주인공 캐스팅한 격”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흑인 에리엘’에 쏟아진 반발에서 알 수 있듯이 이같은 캐스팅은 적지 않은 비판에 직면했다. 최근 할리우드리포터의 조사 결과 미국인의 55%가 기존 영화를 리메이크할 때에는 시대상에 맞는 변화된 가치를 담기보다는 원작과 최대한 비슷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21%만이 정치적 올바름에 찬성했다. 

이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인종적 다양성을 더하는 시도가 계속 되는 이유는 시대적 요구가 높기 때문이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요즘, 백인 배우 일색인 콘텐츠는 ‘구시대적’이고 ‘보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최대한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편견과 차별을 거두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즈니는 수 년 전부터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을 자신들의 정체성이자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앞서 유색 인종 캐릭터를 백인 배우가 연기하는 ‘화이트 워싱’에 대한 반발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뜩이나 아직까지 영화 등 예술시장에서 소수자에 속하는 흑인 및 기타 인종의 일자리를 백인들이 빼앗고 있다는 설명이다.

에이션트 원 역할을 맡은 틸다 스윈튼. (사진=마블스튜디오)

최근에도 디즈니의 계열사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2016)는 원작에서 티베트 남성으로 설정된 ‘에이션트 원’을 백인 배우 틸다 스윈튼에게 맡겨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인 영화 <공각기동대>는 일본 여성 캐릭터를 백인인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해 논란을 빚었다.

그럼에도 디즈니에 대한 최근의 비판은 화이트워싱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재반론이 가능하다. 애초에 인어공주는 흑인 캐릭터가 아니며, 백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올바른 캐스팅은 순혈 덴마크 출신의 배우를 기용하는 것이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한 전문가는 “디즈니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며, “흑인을 위한 적극적 우대조치로 보일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애초에 소수자는 흑인뿐만이 아니며, 다수와 소수를 구분하는 잣대는 오로지 디즈니의 것만이 될 수 없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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