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무능함이 다행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br>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최근의 화두는 단연 일본의 경제보복이다. 모두가 웬 경제보복이냐며 놀랐다. 그것도 ‘앞으로 너희나라 물건 안 사’가 아니라, ‘너희한테 물건 안 팔아’라는 식이다. 그러니 제 살 깎아먹는 행보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경제보복의 대상은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일본에서 핵심 부품을 공급받고 있다. 누군가의 비유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잘 나가는 고기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거래처인 정육점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앞으로는 고기를 끊어주지 않겠단다. 다행히 오늘내일 장사할 재고는 어느 정도 남았고, 워낙 잘 나가는 고기집이다 보니 고기를 납품하겠다는 정육점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당장 한국에서도 핵심부품은 수급이 가능하단다). 하지만 고기 맛이 과연 이전과 같을까? 이것이 문제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대형 거래처를 잃은 중소 정육점의 피해가 더 클 것이다. 아베는 삼성을 찍어 공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이 여파는 그들의 상상 이상일 수 있다. 패널 생산이 정체되면 결국 파나소닉과 소니가 직격탄을 맞을지 모르고, 반도체에 타격을 주었다고 해도 자칫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도 피해가 옮겨갈 수 있다.

우리 정부도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외교의 기본은 워낙 팃포탯(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 원칙이니 옳은 조처다. 물론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상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 역시 이견이 없다. 상대의 과소평가는 금물이나, 과대평가도 좋을 것은 없다.

아베에 대한 평가가 딱 그렇다. 워낙 우리보다 강대국인 일본이고, 그곳의 수장이 아베가 저리 세게 나오니 미리 겁부터 집어먹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지만, 우리 국익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짓거리다.

아베야 워낙 예측불허였지만 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화웨이 봉쇄전략에 몇 차례씩이나 딴지를 놓아 트럼프를 당황시키고, 최근 미국-이란 신경전에서는 엉뚱하게 이란 편을 들어 트럼프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렇다고 해서 이란이나 러시아가 일본 편을 들어주는 경우는 없었고, G20 회의에서 트럼프는 아예 아베와 일본을 대놓고 무시했다. 무엇을 얻으려는 행보인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래 들어 아베만큼 대외정책에서 무능한 지도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 지도자를 둔 것도 일본의 불행이다. 그는 자신의 외교역량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늘 먹잇감을 찾았다. 한국에 시비를 거는 방식으로 극우세력을 자극하고. 심지어는 미국에 어깃장을 놓는 방식으로 자국 내 동정여론을 환기시켰다. 선거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땡깡을 부리는 강도도 심해졌다.

자연히 선거철이 끝나면 한국에 대한 압박의 강도는 약해질 것이다. 아베만 보면 어화둥둥 밉살궂게 굴던 오바마 시절도 진작에 끝났다. 거기에 반대여론은 일본 내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주변국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다. 반도체 벨류체인의 안정성은 인근 국가에게도 무척 민감한 이슈다.

트럼프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의 축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가려고 하는 이 시점, 어쩌면 아베의 어깃장은 예견된 결과였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고, 그 쪽 선수도 잘못 골랐다. 어느 때보다도 일본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경시하는 트럼프와 그 어느 때보다도 섬세한 정세판단에 서투른 아베. 한 번쯤 티격태격 할 타이밍이 되었다는 가정이 옳다면, 오히려 지금이 싸워야 할 적기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쉬운 상대를 만났다. 하물며 우리 물건 왕창 사 주던 중국의 사드보복에 비할까.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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