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자 경희대 명예교수
일본, 소련 등지에서도 공연
소록도에 피아노 기증도

[데일리비즈온 심재율 기자] 아무리 한국인의 수명이 늘었다고는 해도, 90세가 넘어서 노래를 부른다고 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것도 온 힘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소프라노라 하면. 

소프라노 김옥자 credit : 성문원
소프라노 김옥자 credit : 성문원

우리나라 제1세대 성악가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소프라노 김옥자 경희대 명예교수가 최근 무대에 섰다. 김옥자 교수는 1929년 8월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우리나라 나이로 91세가 된다.

지난 5월 25일 대전 쏘울브릿지 콘서트홀에서 그녀는 ‘다시 사신 구세주'를 비롯해서 2곡을 경희대 제자들이 함께 한 무대에서 불렀다.

김옥자는 우리나라 오페라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세계적인 성악가 소프라노 홍혜경, 소프라노 박순복, 소프라노 김미미, 소프라노 오미선, 소프라노 성문원 등....

제자들과 함께 한 소프라노 김옥자
5월 공연을 마치고 제자들과 함께 한 소프라노 김옥자

그녀는 어떻게 90세가 되어도 낭랑한 고음을 내면서 소프라노를 부를 수 있을까? 제자 중 한 사람인 쏘울브릿지의 성문원 대표는 “겸손이 몸에 배어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자취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경희대 교수 시절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를 제작할 때마다 당신은 되도록 나타나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다고 한다.

이날 콘서트에서도 제자들이 스승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띄웠을 때 스승은 “내가 뭐라고 사진을 띄우느냐, 부끄럽다”고 말릴 정도.

성문원 쏘울 브릿지 대표는 ‘제가 기획한 행사이고,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이라 사진을 내릴 수 없다’면서 진행했다. 자기 얼굴이 포스터에 나오고 영상 띄우는 것을 그렇게 부담스러워하셨다. 

성악을 하는 제자들이 보아도 스승은 참 신기하다. 아주 노래를 잘하는 성악가나 가수들도 나이가 오십 육십을 넘어가면 노래를 하기 어려워 은퇴하는데, 스승은 90이 넘었다.

김옥자 선생님은 개척정신이 매우 강했다. 한센씨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소록도에 피아노를 한 대 기증하기 위해서 전국 순회공연을 열어 조금씩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사서 기증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일 아닌 것으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1990년대 당시만 해도 소록도에 대한 인식이 나쁜 시절이었다.

뿐만 아니라 김옥자 선생님은 소련이 무너지면서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개방정책을 펼칠 때 제자들을 이끌고 소련으로 가서 공연을 열었다. 모스크바에서 두 달 동안 머물면서 공연장에 서고, 틈틈이 길에서도 아카펠라로 연주할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김옥자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었다. 쏘울 브릿지 성문원 대표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성 대표는 결혼해서 31세에 자녀를 낳는 바람에 다시 언제 노래를 할 수 있을지 기회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어 몸이 아직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스승은 갑자기 전화를 해서 콩쿠르에 나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대회를 나가느냐 웃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제자들의 형편을 자세히 눈여겨 보신 스승의 애정과 제자의 실력을 아는 스승의 권유에 순종해서 대회에 참가했다.

일본 공연 사진 credit : 성문원
일본 공연 사진 credit : 성문원


서울 챔버 오케스트라에서 개최한 성악대회에서 성 대표는 1등 없는 2등을 차지했다. 젊은 후배들이 많은 대회에서 30대에 입상한 경력은 성 대표에게 큰 자신감을 줬다. 

91세 스승은 50을 넘긴 제자 소프라노에게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잡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너는 지금 있는 기량을 펼쳐서 그냥 하면 된다고 격려하기를 잊지 않는다.

성악가로서의 경력은 소프라노 김옥자를 우리나라 오페라의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올려놓았다. 세빌리야의 이발사, 돈조반니, 리골레토 등 다양한 오페라를 모두 섭렵했으며, 1975년 일본에 가서 토스카 주연을 맡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구순의 소프라노 김옥자 교수의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무대가 마지막 무대가 아니기를 기대하며, 우리나라 성악의 역사가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성 대표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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