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이 정부를 지배할때까지
-경영논리에 굴복하는 정치

기업국가의 명백한 상징.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국가라는 테두리 밖에서 산산이 조각난 권력이 홍보·경영·기술·과학 전문가들이 만든 기술적 허구 속으로 흩어지고 있다.”

1994년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 2016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리고 2017년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승리를 거두며 서구 강대국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파격적으로 등장한 이 세 인물은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 연령, 정계진출 배경 등 여러 면에서 상반된 모습이지만, 정치 무대에 ‘경영’을 끌어들여 기업인으로서의 경험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말하자면 세 명 모두 국가라는 기업, 즉 ‘기업국가’의 수장직에 오른 셈이다. 이런 식의 정치를 펼치는 국가 정상은 이들만이 아니며, 최근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2008년 집권한 한국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과거 한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당시 그 한복판에서 거대 건설사를 경영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현대건설이 빠른 시일 안에 성공을 거둔 그 방식을 국가를 경영하는 데에 적용시키겠다고 공언했고,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지지를 얻는 방식으로 활용하였다. 

◆ 국가를 경영하는 기업인들

하지만 기업가들이 정계를 휩쓸고 있는 현상은, 남미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페루, 칠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은 모두 기업인 출신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입법부에도 과도하게 많은 수의 경제 엘리트들이 포진해있다. 

페루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대기업 회장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가 부패 스캔들로 사임하자, 작년 3월 기업가 출신인 마르틴 알베르토 비스카라가 당선됐다. 4년 전 파나마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기업 회장인 리카르도 마르티넬리 대통령의 뒤를 이어 기업가 후안 카를로스 발레라가 취임했다. 거기에다 이들 국가의 상원에서 기업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1에 달한다.

코카콜라 멕시코 지사 회장인 비센테 폭스는 2000~2006년 멕시코 대통령을 지냈고, 칠레의 사업가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2010년~2014년까지 당선과 재선을 거쳐 대통령을 지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사업가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2015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파라과이에선 오라시오 카르테스가 2013년 당선됐다.

남미에서 기업 회장이 권력의 최고 자리에 오르는 일은 최근 부쩍 보편화되고 있다. 미겔 세르나 몬테네그로대 교수는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 열풍이 기업가들의 정계 진출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기업 지도층이 공공행정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기업가들은 남미 우파의 포퓰리즘을 구현하려는 인물들과 긴밀한 친목을 조직했다.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와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상황은 다시 기업가들의 정치권 공세에 더욱 유리해졌다. 말하자면 좌파가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기업가들은 공격적으로 정치권력에 탐닉했다. 브라질의 상공회의소에 해당하는 ‘상파울루 주 산업연맹’은 2016년 국회 탄핵 전날에 호세프 대통령의 반대 운동을 직접 조직하기도 했다.

이에 르몽드는 2017년 말 체코의 총리 안드레이 바뷔시가 직접 기고한 글을 소개하며, “국가를 가족기업처럼 경영”하겠다는 기업인 출신 수장이 유럽 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는 현상을 소개했다. 여기에는 “터키를 기업처럼 이끌겠다”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해당된다.

이 와중에 이탈리아는 일종의 실험실이 되어 있었다. 피에르 뮈소 낭트대학 교수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이곳에서 개척자적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기업가 대통령’을 최초로 구현해냈으며 스스로를 그렇게 칭했던 인물이었다. 1990년대 초, 더 이상 이른바 ‘자유사회’와 동구권을 대립시키지 않기 시작한 국제사회를 향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한 가지 울림을 전했다.

언론과 부동산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신인’의 갑작스러운 정계 진출이 그 답이었던 것이다. 그 후에는, 이번에는 브랜드 등 기업에서나 마주할 법한 요소들이 각 분야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트럼프라는 기업 브랜드가 트럼프 그룹에서 백악관으로 자리를 옮기기에 이르렀다. 이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기업국가론’은 내년 다시 한 번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이에 내년 미국 대선은 그의 운명뿐만 아니라 기업국가의 분기점을 결정할 모멘텀이 될 전망이다.

정부-기업간 관계에서 기업국가론을 조장했다는 비판은 이전부터 늘 존재해왔다. (사진=핀터레스트)

한편, 마크롱 대통령의 경우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를 과연 기업인 출신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는 경제 부처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는 고위공무원단인 재무감독국(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금융감독원)에서 짧은 경력을 쌓은 뒤 금융 분야에서 4년간 몸담았던 이력이 있다.

◆ 경영수단에 굴복하는 정치

사회학자인 프랑수아 드노르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영향력 있는 피그말리온’이다. 즉 자신을 아끼고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을 통해서 힘 있는 기관에 들어가고, 인맥을 쌓을 만큼만 그 기관에서 시간을 보낸 후 더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직위로 갈아타는 것이다. 마크롱은 프랑스 재정감사총국(IGF)이나 로스차일드 은행이나 대통령실에서도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모두 3년이 안 되게 있었다. 마크롱은 2016년 4월, 39세의 나이에 ‘전진!(En marche!)’당을 창당했다. 마크롱은 경력의 매 단계마다 인맥을 동원했다. 

마크롱은 스스로를 과거도, 유착관계도 없는 새로운 인물로 소개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보더라도 그는 국가의 고위 귀족 신분과 지식인 위주의 정치집단 및 경영자들의 금융모임에 둘러쌓여 있다. 그가 이 모든 것들의 유산을 대표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드노르에 따르면 "마크롱은 정·재계 및 문화·언론인들의 모임인 르 시에클 클럽(club Le Siècle)의 일원인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그는 현재 대통령의 자리에서도 기업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화법, 목표 등을 계속 주고받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효율적이면서도 결단력 있는 대기업 총수와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들이 말하는 언어는 ‘효율’과 ‘효용’이다. 본래 경영의 모체인 산업에서 나온 개념이다. 베를루스코니, 그리고 더 가깝게는 이명박의 전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의 목적은 정치성을 중화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권이 되려 효율이라는 명목 하에 기업과 경영의 권력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정치학자 뤼시앙 스페즈는 일찍이 그의 저서인 『정치적 상징성』에서 정치를 “신뢰와 타당한 기억, 즉 상징으로 이뤄지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요즈음의 정치는 ‘효율적 활동’을 약속한 기업가 대통령의 카리스마로만 축소되고 말았다. 이제 국가는 기업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하나의 기계가 돼버렸다. 곧 정치는 기술된 순간부터 ‘결단주의’에 무릎을 꿇게 된다.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신학』(1922)에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권위와 결단을 가지고 결정 내리는 방식을 ‘결단주의’라고 칭했다. 결단주의에 굴복한 정치는 ‘결정권자’로 축소된다. 즉 정치는 ‘국가’로, 이 ‘국가’는 ‘결정권자’로 단순화되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분권화와도 관련이 있다.

기업인 출신의 국가수장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국가가 그 자체로 담는 이념 및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경제학자인 제임스 갈브레이스는 국가가 더 이상 이념적 계획만 추구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는 ‘약탈국가론’을 설파하며 “(기업국가는) 개인에게든, 집단에든,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동시에, 그들의 권력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며, 문제가 일어났을 때도 가장 손쉽게 재정을 충당할 가능성이 높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개탄했다.

이에 국가는 기술적 합리성으로 축소된 반면, 대기업은 정치의 빈틈을 채울 패권과 규범성을 생산하는 존재로 확대돼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다. 물론 권력 자체가 소멸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분권화와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업국가의 등장은 곧 정치의 분열을 의미한다. 정치가 기업 쪽으로 기울면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이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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