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겨냥한 경제보복
-일본 내에서도 비판론 대두...추가 제재는 어려울 듯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일본 정부가 사실상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기로 했다. 한국 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한국과의 관계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일본 내에서도 자유무역을 강조하던 아베 신조 정부의 경제보복에 대해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일본 기업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한국 반도체 겨냥한 보복

일본 경제산업성은 1일 “수출 관리 제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데 한국과 일본은 신뢰 관계가 현저하게 훼손되고, (양국 사이에) ‘부적절한 사안’도 발생했다”며 한국에 대한 수출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일부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감과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와 관련 제조 설비 및 기술을 한국으로 수출할 때 개별 심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제품은 TV·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핵심소재다. 그동안 한국으로의 수출은 '포괄적 허가'로 사실상 자유롭게 이뤄진 바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두 평균 90일 정도 걸리는 허가절차를 거쳐야 해 한국 전자업계의 부품 확보에 차질이 예상된다. 한국이 꼭 필요한 제품을 콕 집어 한국 경제에 충격을 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낸 것이다. 실제로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제품은 모리타화공, 스텔라케미파 같은 일본 기업이 세계 시장의 70~90%를 차지한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및 리지스트는 생산량의 약 90%, 에칭가스는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 제품 없이는 첨단 제품 제조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과 LG전자의 고화질 TV 생산에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산업성은 또 수출 허가 면제 대상인 이른바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일본은 그동안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우방 27개국을 화이트 국가로 지정해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첨단 기술이나 전자 부품 수출을 허용했는데, 앞으로 한국에는 정부가 허가한 제품이나 기술만 수출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은 아시아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을 훼손할 것”이라면서 “통상규범을 멋대로 운용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자유무역 중시한다더니...갑자기 왜?

일본 정부가 전격적으로 한국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에 나서면서 일본 내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기회가 될 때마다 자유무역을 강조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보복에 대한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베 정부의 보복조처 발표 시기에 대해서도 논란이다. 지난달 말 일본이 의장국을 맡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참가국들이 ‘자유롭고 공정하며 무차별적인 무역·투자 환경을 실현하자’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직후 경제보복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아베 총리는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정합적이다(맞다). 자유무역과 관계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보호주의와는 반대로 일본은 자유무역을 강조하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유럽연합과의 경제연계협정(EPA) 등을 진행해왔다”면서 “이번 조처는 일본의 방향전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극약처방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반도체 업계가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고 일본 의존도를 낮추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제상황이 악화되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지율도 연말이 가까워질 수록 하락하는 모양새다. (사진=SBS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SBS뉴스)

◆ 추가 제재는 어려울 듯

일본 정부는 이외에도 한국산 제품에 대한 높은 관세 부과, 일본 내 한국 기업이나 유학생의 송금 금지, 비자 발급 제한 등 여러 가지 보복 조처를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다. 한국 정부가 징용문제에 대해 조금 더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추가 보복을 가하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조차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부품 업체들 역시 울상을 감추지 못한다. 한국에 수출해서 먹고살아 왔는데, 당분간은 방법이 없다는 투다. 대체 수요처로 대만이 있긴 하지만 수요는 미미한 편에 속한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일본이 자충수를 뒀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 대장성 관료 출신의 다카하시 요이치 가에쓰대 비즈니스학부 교수는 산케이신문 자매지 월간후지에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면 피하는 것이 낫다"면서 "일본이 한국에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이 즉각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송금 금지도 일본 기업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직접 투자는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한 해 전보다 30% 감소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