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bionic. (사진=소니)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특이점에 대한 담론은 정치를 윤리로 바꾸는 것 외에도 또 하나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과학적 합리성을 신화적 차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기술은 관찰을 근거로 하는 예측이 아닌 인류의 목숨이 달린 비극적 서사의 매체가 된다.

『트랜스휴머니즘에 맞서』의 저자이자 셰필드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리처드 존스는 그의 저서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은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시스템으로, 과학보다는 종교와 관련이 깊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인류의 근본적인 신화를 핵심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그 신화란 우월적 지식의 개입을 통해 풍요의 상태, 나아가 불멸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콜렉티브 생귤리에 소속의 기자인 기욤 르누아르와 샤를르 패라갱은 지난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개재한 글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은 20세기 초 러시아의 정교회 사상가 니콜라이 표도로프로 대표되는 철학 운동인 러시아 우주론을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니콜라이 표도로프는 과학을 통해 성경 속 약속들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주장했다. 이에 관해 그는“과학이 마침내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이점이 보여주는 서사는 신화와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릴 가톨릭 대학의 연구자이자 역사학자인 프랑크 다무르는 “이는 오래된 종말론적 담론으로, 12세기 서구 사회에서 일어났던 요아킴주의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요아킴주의는 성경 텍스트 속에서 예수를 이해해야 한다는 요아킴의 사상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새로운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문화적 요소에 따라 다양하게 모습을 바꿔 가며 구원의 약속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예 구글 출신의 엔지니어 앤서니 레반도브스키는 ‘미래의 길’이라는 이름의 교회를 설립했다. 그에 따르면 교회의 목적은 “인공지능에 기반해 신격의 실현을 개발하고 촉진함으로써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는 레반도우스키는 특이점 대신 이행(Transi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인간은 지금 지구를 책임지고 있다. 우리가 다른 동물들보다 더 똑똑하고 도구를 만들 수 있고 규칙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며, “장래 인간보다 훨씬 더 똑똑한 무언가가 등장한다면 책임자 자리의 ‘이행’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인간으로부터 무언가로의, 평화롭고 고요한 ‘이행’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지능이 인간보다 더 잘 지구 행성을 돌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미래의 길‘은 인공지능 연구 프로그램도 수행할 것이라며 교회가 개발하는 모든 것으로 오픈소스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힌두교의 순환론적 역사관에서도 인공지능의 출현을 서구사회에서처럼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종말론적 사고관처럼 유일하며 본질적으로 유별한 시대에서 일어나는 불가역적 변화와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과거로의 회귀, 우주가 생성되던 고대 시대의 재림으로 여긴다. ‘사티야 유가’, 즉 인류의 황금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경우 트랜스휴머니즘적 이데올로기가 청교도주의를 따르는 다수의 종교운동과 연계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크 다무르는 “특히 신체의 성공(건강, 강건함, 장수 등)이 신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증거라고 믿었던 1960년대의 제4차 대각성운동과 연관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트랜스휴머니즘은 생시몽주의(사랑과 협동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 하였던 사회주의의 초기 이론)와 같이 집단적 측면을 강조했던 19세기의 과학운동과는 달리, 사회의 구원보다 개인의 구원을 더욱 중시하고 있다. 

프랑크 다무르는 “물론 개인의 차원에서 인간 종 전체에 대한 담론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사회라는 매개체를 통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말하며 “여기서의 구원은 신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세상을 조직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닌, 기업구조를 매개로 하는 개인들이다. 자유주의가 이보다 강렬한 목표를 겨냥했던 적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도 이에 대해 일정부분 공감한다. 그는 한 강연에서 “어떤 면에서는 인공수퍼지능(ASI)가 우리가 아는 신을 능가할 것이다. 지금까지 신들의 속성은 제한된 인간의 상상력을 반영했다”고 내다봤다.

ASI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ASI는 여러 신화에 등장하는 전통적인 신들보다 오히려 더 막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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