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의장국 역할 수행 못 해…보호무역·기후변화 빠진 성명
-다자협의체 위상 상실

g20 회담 당시 미중일 삼국 정상의 모습. (사진=SBS뉴스)

[데일리비즈온 이재경 기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G20 정상회의가 해를 거듭할수록 중심을 잃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특히 이번 G20 정상회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다자협의체라는 G20의 위상이 추락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거기에다 예상 못한 남북미 판문점 드라마에 그 의미가 퇴색했다는 평가다. 의장국 일본 역시 미국 입김에 치우치면서 조정자 역할에 실패했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나온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오사카에서 이날까지 이틀간 열린 G20 정상회의가 '공정한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폐막했다. '오사카 선언'으로 명명된 이 공동성명에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무차별적인 무역체제의 중요성을 표명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보호무역주의를 반대한다'는 취지의 표현은 미국의 반대로 제외됐다.

총 43개 조항의 공동성명은 “무역 갈등과 지정학적 긴장이 심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위험을 계속 관리할 것이며, 이를 위한 추가 행동을 할 준비가 돼있다”는 모호하고 구속력 없는 문장을 넣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성명에 ‘자유무역 촉진’이란 표현이 들어가는 것을 완강히 반대해왔다.

◆ 보호무역주의의 흥기

반(反) 보호무역주의 문구가 G20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빠진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작년 아르헨티나 회의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G20이 시작되기 전부터 예정된 일이라는 평가도 있다.

일본은 G20 회의 공동성명의 초안을 작성하는 단계에서부터 반 보호무역주의를 뺐기 때문이다. 이후 협상 과정에서 반 보호무역주의 내용을 넣으려 시도했으나 끝내 미국의 의지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평가다. 

G20을 기점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미중 무역협상의 불씨를 되살린 상황에서, 미국의 일본에 대한 압박이 커질 가능성도 감지된다. 안보 위협과 경제적 불평등 거래를 동시에 묶어 강한 압박에 나설 조짐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G20 직전 폭스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여러 나라는 미국을 엄청나게 이용하고 있다”면서 일본을 겨냥해 “미국은 생명을 바쳐 일본을 보호하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소니 TV로 구경만 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G20 당시에는 “일본 정부가 자국의 많은 자동차 제조사를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에 보내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라는 우회 압박도 시도했다.

위에 언급된 지역은 모두 미 대선 격전지로 분류되는 곳이다. 일본이 미국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보를 보이라는 압박으로 해석된다. 

◆ 기후변화 문제도 빠져

한편, 공동성명에는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내용도 빠졌다. 당초 파리기후협정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지구적 노력의 결실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국 노동자들과 납세자들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라며 협정에서 탈퇴한 바 있다. 이 같은 행보는 기후변화 문제가 배제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미국 외 19개국 정상들이 성명에 '반보호무역주의'와 ‘기후협정 이행’ 표현을 넣을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끝내 미국의 입장이 관철되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공동성명에 대해 “의견의 공통점을 찾아냈다”고 자평했지만, 일본이 성명 초안부터 ‘반보호무역주의’ 문구를 뺀 만큼 미국에 치우쳐 의장국으로서 조정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폐막 후 기자회견에서 “의견 대립이 아니라 공통점을 조명했다”며 “다양한 문제에 대해 단번에 해결책을 찾기란 어렵지만, 자유무역의 기본 원칙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은 이번 G20 회의에 대해 ‘노(No) 플라스틱 운동’, ‘전자상거래 분야 규칙마련’ 등 일부 공통 의제(아젠다)가 협의되기는 했지만, 세계적인 중요 이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G20 공동성명에 미국의 주장이 관철된 만큼 강대국 중심의 국제정치에서 G20의 위상 약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 국제사회에서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니혼게이자이는 “G20 정상협의체가 유엔 총회 버금가는 다자협의체의 위상을 잃었다”며 “무역전쟁으로 상징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의해 ‘조정자’ 없는 세계가 부각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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