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자본주의식 공산주의
-부동산 개발에 사활 건 베트남
-생계수단 잃은 농민들은 분노

하노이 길거리.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베트남의 급격한 자본주의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유효한 공산주의 담론과도 그럭저럭 잘 어우러지고 있다.

건물과 거리, 도로변에서는 여전히 낫과 망치 모양이 그려진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간혹 호치민 얼굴이 들어간 깃발도 눈에 띈다. 이런 깃발 위에는 당이 결정한 도시화 정책을 옹호하는 듯한 내용의 슬로건이 담겨 있다. “혁명 정신 발전시켜 조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국제사회로의 편입 목표를 성공적으로 실현하자”라거나 “부유한 인민, 부강한 조국, 민주적이고 교양적이며 공평한 사회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모두가 함께 하자”라는 식이다.

일부 단어는 무조건적으로 사용이 배제되기도 한다. 호치민 시립 공대에서 강의 중인 도시계획전문가 팜 둑 탕은 “여전히 ‘자본주의’라는 단어에는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단어의 사용은 금지되며, 대신 당에서는 ‘개발’, ‘근대화’, ‘국제 사회로의 편입’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부연했다.

‘교양’이란 단어도 배제되긴 마찬가지다. 경제학자 응우옌 반 푸는 “이 단어가 싱가포르나 일본 모델을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짚어준다. “공손하게 행동하고, 잠옷 바람으로 거리에 나가지 않아야 하며, 바닥에 침을 뱉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교양스럽지 못한 이 행동들은 과거 농민 사회에서 이뤄지던 행동들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니 길거리의 노점상 같은 생계방식은 ‘교양 있는’ 도시화와는 거리가 멀다. 연구원 다니엘 라베는 “비록 토지 수용 문제라는 고충을 겪고 있더라도 대다수 농민들은 도처에서 생겨나고 있는 이 콘크리트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농민들에게 있어 논과 토지는 낭만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저 진창과 거머리, 피로, 빈곤을 연상시킬 뿐이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국민들 다수는 공산주의 구호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며,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하다. 28세의 사이공 출신 여성 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반면 우리 부모님 세대는 여전히 이 슬로건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녀는 “이분들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오직 국영 매체뿐이다. 그 때문에 서로 간에 말싸움이 자주 빚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450만 당원을 거느린 공산당은 이런 당의 메시지를 확산하기 위해 각종 단체들을 동원한다. 경찰, 군대, 여성협회, 참전용사협회 등을 규합한 조국 전선 등 대규모 조직과 기관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일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농지를 잃은 농민들은 지도부가 하는 말과 행동 사이의 모순을 바로바로 지적하고 나선다. 호치민 시에 사는 ‘투 티엠’이란 이름의 한 여성은 “원칙적으로 공산주의란 인민의 안위를 위한 게 아니던가?”라며 그들의 모순을 지적하고 나섰다.

두옹 노이(Duong Noi)의 적재기 앞에서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4년간 복역한 어머니를 둔 미엔 씨는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호치민은 가난한 농민들을 끌어들이면서, 식민지 치하에서 빼앗겼던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공산당이 우리에게서 이 땅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의 분노 앞에서 당국은 한편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지역주민들은 당 관계자를 만나 면담을 갖게 되는데, 당 관계자들도 대개는 늘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다. “이성을 찾으셔야 한다. 국익과 기업의 이익, 그리고 주민들의 이익이 조화를 이뤄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모두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니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지역 당국에서는 주민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이다.

이런 말이 시위대를 달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부가 믿는 구석은 사실 따로 있다. 계속 높아지는 중산층의 지지다. 현재 상황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중산층 비율은 현재 전체인구의 13%를 차지하며, 향후 5년 안에 2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하노이의 신흥부촌 에코파크다. 에코파크 역시 원주민들이 수년간 저항하다가 내몰린 뒤 구축된 지역이다. 
    
르몽드의 작년 기사에 따르면 한 에코파크의 한 시민은 “언젠가 우리 집 가정부가 말하길 우리 집 빌라가 들어선 이 자리가 과거에는 이분이 농사짓다가 추방된 작은 밭이었다고 했다”고 했다. 2년 전 그녀가 이사 온 에코파크의 집은 정원이 딸린 190㎡ 규모의 단독주택이다. 그녀는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딱히 없지 않은가”고 말한다.

같은 매체의 다른 인터뷰에 따르면 이웃 주민 역시 “이 농민들이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가 더 발전하고 싶다면 부수적인 피해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20년째 연평균 6~7%의 성장률을 기록 중인 베트남은 서방 민주국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나라다. 빈곤문제도 성공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의하면, 베트남에서 빈곤층 인구의 비중은 1990년 60%에서 현재 10%로 감소했다.

그러니 정부의 토지수용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토지개발 계획은 늘 지역 엘리트 계층이 빠르게 부를 축적하도록 도와주곤 한다. 여기에는 젊은 농촌청년 수십만 명이 고용시장에 쏟아지는 효과가 있다. 베트남 청년들은 오로지 인건비를 절감하고자 베트남에 진출한 (섬유, 전자, 자동차 부문의)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게 됐다는 사실에 그저 뿌듯할 뿐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비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