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크라시의 흥기를 보면, 포퓰리즘의 대상과 주체에 대한 재정의도 필요해보인다. (사진=픽사베이)
테크노크라시의 흥기를 보면, 포퓰리즘의 대상과 주체에 대한 재정의도 필요해보인다. (사진=픽사베이)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최근 타다와 택시업계를 둘러싼 논란을 보니 과거 뉴욕 시와 우버의 대전(大戰)이 떠오른다. 2015년 더블라지오 전 뉴욕시장이 우버의 시내 차량대수를 제한하려 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우버의 대응은 다시 생각해봐도 참으로 ‘묘수’였다.

우버는 더블라지오 시장이 택시업계의 이익만을 대변한다고 비난함과 동시에, 자사 모바일앱에 ‘더블라지오’ 탭을 추가하는 것에 그들의 역량을 집중했다. 탭을 누르면 뉴욕시가 그려진 지도 위에 “운행 중인 차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라고 쓴 배너가 뜬다. 배너를 클릭하면, “더블라지오 시장이 우버를 죽이려 한다. 시의회에 이를 규탄하는 메일을 보내달라”는 호소가 나온다. 결국 뉴욕시장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페이스북도 2016년 이와 비슷한 전술을 구사했다. 페이스북이 무료 인터넷 서비스 ‘프리베이직’을 인도통신규제위원회가 금지한 것이다. 페이스북의 신사업은 인터넷 세상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에 대놓고 대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이 공룡기업이 택한 방법은 역시 소비자에게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는 페이스북의 웹 중립성 위협 비판을 무마하는 효과도 있었다. 마크 주커버그는 발 빠르게 구원운동을 위한 인터넷 플랫폼을 개설했다. 그리고 클릭 한 번만으로 인도인들이 인도정부에 탄원서를 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글 한 번 읽었을 뿐인데 탄원서에 이름이 등록되는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지난 세월 다국적기업들은 싱크탱크, 언론, 홍보업계 등을 통해 소비자가 그들의 뜻에 동참하도록 유도해왔다. 그러나 우버, 페이스북 등에게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 없다. 그들은 그들 기업을 규제하는 법률이 마련될 때마다, 이에 반대하는 대중들을 결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위력은 더 대단하다. 그들은 그 자체로 미디어의 속성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뉴스피드에 제공된 정보를 선별하며, 이에 소비자들이 자사의 견해에 동조하게 한다.

작가 예브게니 모로조프는 “이 같이 기술이 인간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테크노크라시는 기본적으로 종교운동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믿는 신은 다름 아닌 ‘혁신’이다. 그러니 혁신에 걸림돌이 되는 자는 모두 이단, 사악한 무리나 돈에 매수된 자들로 간주된다. 뉴욕 시장 역시 택시업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매도되었다. 그래서 각국의 규제기관은 통신업계와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이는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몇 가지 현명한 의문을 효과적으로 덮어버리기도 한다. 이를테면 첫째, 혁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며, 둘째, 그들이 하는 사업은 늘 혁신적인가 등이다. 셋째는 혁신이 과연 우려하는 모든 목소리를 덮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다. 하지만 어느 종교도 그러하듯이, 혁신의 추종자들에게는 이러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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