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서부 노스 캐스케이드 침니록(2,340m) 채비지역의 추위는 지독했다.
-경사가 55도로 급했지만 무리하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 피터 포터필드ㅣ출판년도 1996년ㅣ쪽수 270쪽ㅣ출판사 마운티니어스 북스
■ 피터 포터필드ㅣ출판년도 1996년ㅣ쪽수 270쪽ㅣ출판사 마운티니어스 북스

빙하가 시작되는 1,500미터 지점의 캠프에서 새벽 5시, 아침 메뉴인 오트밀을 위해 버너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해는 아직 리지 너머에 있어 희뿌연 새벽이 고통스럽게 열리고 있다. 한여름인데도 미국 북서부에 있는 노스 캐스케이드 지역의 추위는 지독했다. 백색의 소음인 정적에 파묻힌 채 침니록(2,340m) 등반 채비를 서두른다.

등반 전의 기대와 초조, 긴장감이 교차했고 크램폰 밴드를 바짝 조였다. 침니록 북봉 아래의 빙하지대를 횡단해서 남봉 밑의 유갭 지점을 통해 등정을 시도하기로 했다. 군데군데 형성된 크레바스를 우회하느라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더그와 피터는 6년간 어려운 등반을 하며 서로의 생명을 맡길 수 있는 자일파트너로서의 신뢰가 깊다.

더그는 33세이고 피터는 38세로 나이차가 있어도 체력과 등반능력, 성격과 기질이 비슷해서 등반 중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순발력과 임기응변으로 잘 대처해 왔다. 1930년에 초등된 침니락은 당시 캐스케이드 지역에서 최고 난이도의 등반이었다. 그것은 기술적인 난이도가 아니라 바위가 불안정해서 생기는 낙석의 위험 때문이었다.

시애틀을 출발한 지 4일째 되는 7월 26일, 빙하지대를 통과하고 눈이 덮인 좁은 쿨르와르를 올라서 유갭 지점에 도달했다. 경사가 55도로 급했지만 무리하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해가 벽을 비추면서 얼었던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했고 크램폰이 제대로 박히지 않아 등반이 어려워졌다. 3시간이 지난 8시 30분, 그들은 얼음지대를 벗어나 동벽을 횡단해서 주봉으로 접근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바위지대에 이르니 아래에서 보기보단 홀드가 작아 어렵고 하향의 불안한 루트가 이어졌다. 좀 더 올라가 보기로 했지만 무언가 잘못돼 가는 것 같다. 아침부터 피터를 지배해 온 불안과 생소함이 현실화되면서 심상치 않은 징후가 보였다. 루트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발을 딛는 홀드가 불안하더니 홀드가 전혀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루트를 벗어난 것이 분명했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당황하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피터는 여기저기 홀드를 찾다가 손가락에 펌핑이 나면서 추락했다. 공교롭게도 떨어진 지점이 오버행이라 몇 번을 바위에 부딪치면서 허공에 매달렸다. 왼쪽 어깨뼈가 골절된 것 같다. 피터는 무의식중에 자신이 죽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여자친구와 가족들에게 좀 더 행복한 시간을 갖지 못한 게 미안했지만 이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가다니 분노가 일었다.

몸속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헬멧이 바위에 부딪치면서 벗겨졌고 그의 몸이 정지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환각상태인지는 모르겠지만 피터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은 그가 죽지 않고 어딘지 모르지만 심하게 다쳤다는 반증이었다.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사물이 작게만 보이고 왠지 낯선 세상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그러다가 어느덧 위에 있는 더그와 겨우 의사 소통이 이루어졌다. 피터는 45미터를 추락했고 그 충격으로 로프가 꽉 조여지는 바람에 팽팽하게 매달리게 된 것이다. 피터는 칼로 로프를 자르려고 했지만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가 없었다. 간신히 바위의 한 지점을 잡고 위로 조금 올라 갔지만 골반과 무릎이 골절되어서 이전에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낯선 고통에 기절했다.

정신을 차리고 아래 빙하를 보니 아침에 지나갔던 그들의 발자국이 보였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처럼 보였고 아침의 즐거웠던 기억은 전혀 다른 우주에서 겪었던 추억 같다. 그가 앉아 있는 지점은 겨우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조그만 턱이었고 사방은 오버행과 급경사로 감옥에 갇힌 모습이다. 왼쪽 팔이 꺾였고 오른발은 부러져서 퉁퉁 부풀어 있다.

특히 무릎과 엉덩이 쪽 골절이 심각해 움직일 때마다 뼈끼리 부닥치는 소리가 들렸다. 왼쪽 팔의 부러진 뼈가 살갗을 뚫고 나와 출혈이 심했다. 더그에게 도움을 청해 봤지만 무슨 일인지 대답이 신통치가 않았다. 더그는 피터의 추락을 제동하면서 손에 심한 부상을 당했다. 살아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데 살아 남겠다는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그들은 지금까지 등반 도중에 헤어진 적이 없었지만 더그가 혼자 하강을 해서 구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더그가 사라지고 피터가 혼자서 안절부절 불안에 혼란스러웠다. 7월의 태양이 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피터를 가열하기 시작했고 이 벽의 모든 사물을 익히고 있었는데, 추락으로 인한 부상보다 태양열로 인해 질식사 할 것 같다. 지혈을 위해 압박 부분을 찾았지만 그의 몸이 부러지고 뒤틀려서 방법이 없다.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쯤 햄버거에 맥주 파티를 하고 있었을 텐데, 바위에 갖힌 채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확하게 부상을 당한 부위도 모르겠고 친구들과 가족생각에 잊어버리려고 애썼지만 후회와 슬픔, 실망을 막을 길이 없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물이 없는 밤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걱정 되었지만 고통 때문에 졸음조차 오지 않았다.

오늘 새벽의 추위를 경험했기에 파일자켓과 내의를 더 입고 털모자와 방풍의를 준비했다. 잠시 후 멀리서 이상한 소음이 들리더니 헬기가 나타났다. 고도를 조절하며 여기저기를 찾더니 금세 피터의 조난 지점으로 방향을 돌렸다. 더그가 무사히 하산했고 구조 요청에 성공한 것이었다. 피터는 오렌지색 자켓을 정신없이 흔들며 신호를 보냈다.

헬기의 승무원도 피터를 알아봤지만 현재 상태로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사라졌다. 고립무원에 피터가 눈물을 흘리지만 여하튼 구조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다행이었다. 정신을 잃지 않고 균형을 잡는 일이 생존의 관건이 될 것 같다. 왼손이 차고 욱신거렸다.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고 어깨는 귀 밑까지 부어 올랐다. 배는 고프고 허기졌지만 갈증 때문에 아무 것도 먹지를 못했다.

바위 틈새에 핀 이름 모를 풀을 한웅큼 뽑아서 씹어 봤지만 효과가 없고 쓴맛에 기분만 상했다. 밤이 깊어가고 아침해를 보려면 아직도 다섯 시간이나 남았는데, 피터 몸 위로 작은 쥐가 지나갔고 너무 놀라 하마터면 추락할 뻔했다. 피터는 칼을 꺼내 그 쥐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쥐를 죽여서 그 피를 마시면 갈증이 해소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오줌을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고 역한 냄새 때문에 포기했다.

새벽 4시, 하루 낮과 밤을 보내면서 이곳 풍경에 익숙해져 있는데, 두 개의 불빛이 저 아래 계곡 쪽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자동차 불빛이었다. 그것은 더그가 무사히 하강을 하여 계곡을 벗어나려고 했을 때 공원 레인저들을 만나 빠른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조난 소식은 곧 북서부 지역의 모든 구조관련 단체에 전파되었고, 키티타스 카운티의 보안관인 밥 맥브라이드를 중심으로 구조작업이 진행되었다. 25명의 전문 클라이머와 4개 도시에서 온 구조전문가, 적십자 요원, 햄 무선사, 자원봉사자 등 무려 100여 명이 속속 도착했고 캐스케이드 지역 최고의 구조작업으로 평가받았다.

위에 있었던 피터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의 조난지점은 오버행에 노출된 지점이었고 고도 때문에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위험했다. 구조대원들은 여러 도시에서 급파되어 서로 알지 못했고 어떤 공식적인 조직으로부터 지휘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효율적인 구조활동을 위해 서로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했고, 27년의 노련한 경험이 있는 맥브라이드의 진행으로 밤 10시부터 본격적인 구조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 6시, 갈증과 추위로 저체온증 현상이 나타나고 탈진이 가속화되었다. 날이 밝아 오고 날씨도 좋은데 헬기는 보이지 않고 악몽만 꾸고 있었는데, 이때 빙하에 움직이는 세 개의 점이 보였다. 사람이었다. 이 평일에 여기를 등반하는 클라이머는 없을 터이니 구조대원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느렸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오후 2시가 넘어야 조난지점에 도착할 것 같은데 피터의 상태가 점점 어려워졌다. 맥브라이드는 고도와 날씨로 헬기 구조가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서 유갭 지점까지 아홉 명의 구조대를 보냈고, 빙하가 끝나는 지점과 시작되는 지점, 베이스캠프에 각각 대기조를 편성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진가를 발휘했던 휴이 군용헬기가 다시 나타났고, 다섯 명의 구조대원과 여섯 명의 대기조를 정상 능선에 내려놓았다.

피톤을 박는 해머 소리가 요란했고 낙석이 피터 추위로 미사일같이 떨어져 내려갔다. 오버행을 지나 좁은 테라스에 매달린 채 응급처치가 이루어졌고, 90미터 로프에 들것을 고정시켜서 하강을 반복하며 36시간의 드라마틱한 구조가 마감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피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다. 38세의 나이에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사고 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고, 하루하루를 자신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어떤 사람도 사무실에서 좀 더 일을 했었으면 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기 때문이다.

글ㅣ호경필(전 한국산서회 부회장, 대한민국산악상 산악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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