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없이는 못 사는 한국인들. (사진=하이트진로)

[데일리비즈온 박종호 기자] 타지생활 길어지면 고향음식이 늘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나마 요새는 한국사람 없는 외국 여행지가 없다고 하니, 한식당도 장소 불문하고 여기저기 많은 모양이다.

인도 역시 다를 바가 없어서, ‘아니 이런 외진 여행지에도 한식당이 있어?’하고 놀랄 때가 많다. 저 인도 중부의 외진 곳에 위치한 카주라호나, 남부의 함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은 아니지만, 세계로 닿는 한국 사람들의 발길을 노리고 인도인들이 발 빠르게 나선 덕이다. 두 곳 모두 그럭저럭 고향 생각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델리나 뭄바이 같은 대도시는 말할 것도 없겠다. 종류별, 가격별로 다양한 한식당이 있으니 취향따라 적당한 곳을 찾아가면 된다. 워낙 비싼 곳이 대부분이지만, 잘 찾아보면 여행자들이 부담 없이 한 끼 때우고 갈 만한 곳도 있다.

현대자동차 공장 및 백여 개가 넘는 한국 협력사들이 밀집한 남부 첸나이 같은 곳도 그렇다. 워낙 한인들이 커뮤니티를 이루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렇다보니 첸나이는 일찍부터 인도에서 요식업을 시작한 이들의 흥망성쇠(?)를 엿보기에는 제격인 곳이다.

워낙 외국에서 자리 잡고 하는 한식당은, 어지간한 이유가 아니면 망하기도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한국인 교민들이나 유학생의 충성심이 대단한 탓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전부터 한식당은 대체로 일식을 겸하는 경우도 많았다. 요즘에야 사정이 좀 나아졌다 싶지만, 과거 대부분의 외국인에게 아시아 음식이란 곧 일본 음식을 의미했다.

몇 천 명의 회사원 및 교민들이 매 끼 나와서 먹을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수요가 확실했으나, 사실 첸나이의 한식당들은 현재 거의 종적을 감춘 상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정에 밝은 한 교민에 따르면 바로 ‘술’ 때문이란다.

첸나이에서는 워낙 식당에서 술을 못 팔게 되어있단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류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과정이 워낙 까다롭고 힘들어서, 교민에 따르면 “그 정도면 사실상 팔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한다. 정확한 사정이야 알 수 없었지만 시내 주요 식당에서 주류를 취급하는 경우를 거의 볼 수 없었으니, 정말로 그렇긴 한 모양이었다.

물론 첸나이 한정 이야기다. 술에 대한 법률 역시 주(州) 별로 상이해 어느 지역에서는 술을 접하기가 꽤 쉬운 모양이었으나, 하필 술 없이 못사는 우리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첸나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애주가들로서는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었다. 사실 인도에는 ‘어지간하면 술 좀 먹지 말고, 그리하여 사회의 미풍양속에 기여하자’는 내용의 헌법 조항이 있다. 술 문화를 안 좋게 보는 문화가 도처에 깔려 있는 모양이다. 술이야 워낙 곡식을 이용해 만들었고, 농경 사회에서는 한 번쯤은 역사적으로 금주법을 실시한 사례가 있을 정도니 인도 역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래도 술 없이는 안 되는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한식당들은 몰래 소주를 들여와 파는 방법을 택했다. 맥주 판매야 주류법에만 저촉되었으나, 소주의 경우에는 밀수죄까지 추가되니 그야말로 중범죄였다.

이에 부패한 인도 공무원 및 경찰들에게 뒷돈이 돌아갔다. 뒷주머니에 용돈 콱 집어넣고 단속 때 눈감아달라는 것일 터이다. 현직 공무원이 은퇴하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후배 경찰들 좀 잘 봐달라며 추가로 연금 비슷한 용돈이 주어진다. 현직 직원에게는 나름대로 돈이 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센스를 얻는 비용보다는 싸게 먹힌 모양이다.

그런 리스크가 있었으나, 기자가 몇 년 전 다녀갈 때까지만 해도 한식당은 늘 호황이었다. 당시 만난 코트라의 한 직원에 따르면 “그래도 회사 근처에 한식당에 네, 다섯 군데는 되니 인도생활 할 만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거리가 다소 떨어진 식당까지 합하면 고것의 두 배는 될 터였다. 이 모든 곳에서 소맥을 즐길 수 있음은 물론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한인들끼리 회식을 즐기다 이야기가 나오면 점원을 불러 ‘코리안 워터’를 외친다. 그러면 직원이 눈치 빠르게 생수병에 담은 소주와 물컵 몇 개를 추가로 가지고 온다. 거기에 인도 현지의 맥주를 섞는 식. 물론 아예 당당하게 소주 달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돈으로 한 병 가격은 약 2만 원에 달하니, 몇 명이서 조촐하게 회식 한 번 하고나도 몇십만 원 깨지는 것은 순간이다.

인도의 국민맥주 킹피셔. 한국에서도 판매 중인데 맛이 상당히 괜찮다. (사진=킹피셔)

이에 시내 외곽에서 한인 공단 내 직원들을 상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한 굴지의 한식당이 시내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사시미 회부터 양념갈비까지 한국의 어느 식당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맛집이었다. 일설에는 우리 돈으로 수억을 투자해, 첸나이 시내에 호화스런 식당을 오픈했다 한다. 이 곳은 오픈 초기부터 한국인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당시 첸나이에 머물고 있어 두어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과연 맛집이라 할 만 했다. 굳이 외국에서 한식당을 찾아갈 정도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한식당이 채 몇 달을 못 가서 폐업하고 말았으니, 그 때를 생각하면 행운이다 싶기도 한다.

그 식당은 부유층 및 그들의 사교 클럽이 위치한 강가 도로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쭉 뻗으면 주 공무원 청사와 그들의 저택으로 이어진다. 한 전언에 따르면, 한 고위 공무원이 그 거리를 지나가다 외국인들로 바글거리는 그 식당을 목격한 것이 발단이었다.

촉이 좋았던 그 공무원은 식당의 조사를 지시했고, 이에 고위 공무원의 지시를 무시할 수 없었던 일선 경찰들은 한식당의 주류법 위반과 밀수죄를 적용, 그 식당을 불과 몇 달 만에 퇴출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이 시기를 시점으로 한식당을 향한 대규모 세무조사와 주류법 혐의조사가 적용되었고, 시내의 주요 한식당들이 폐업이나 시 외곽으로의 이전을 결정했다.

현재 남아있는 식당이라고들 온전하진 않았다. 모 사장님은 대규모 조사가 진행되던 당시 마침 한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에 주 당국에서는 사장님의 입국 정지를 신청하기도 했었다. 본인 식당을 인도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떠날 수 없었던 사장님은 이에 네팔로의 입국을 시도했다. 네팔에서 육로를 통한 인도 입국을 노렸던 것이다.

알다시피 인도는 가로보다는 세로로 기다란 국가이며 저 북쪽 네팔에서부터 최남단에 가까운 첸나이까지 육로로 이동한다는 것은 보통 결정이 아니다. 자세한 사정이야 알 길이 없지만 사장님은 네팔에서 도보를 통해 인도에 입국하고, 한 지방도시에서부터 몇 번이고 기차를 갈아타는 과정 속에 첸나이에 도달할 수 있었을 터이다.

어떻게 모든 과정이 잘 처리되었는지 그 분은 지금도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 모양이지만, 전반적으로 첸나이의 한인들이 여러 한식과 함께 술 한 잔 기울이기는 전보다 힘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이에 한국인 마담들도 울상은 마찬가지여서, 요즘은 한식당 대신 단가가 곱절이나 하는 일식당 등에서 모임을 갖는 모양이란다.

그래도 지금은 폐업한 한 한식당 출신의 인도인들이 만든 한식당이 하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나마 첸나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술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한식당 중 하나가 되었다. 인도인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남다른 노하우가 있는 모양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옛 말이 있기는 하지만, 술을 유달리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습성이 변할 가능성은 더 적을 것 같다. 이에 한국 사람들의 인도생활 적응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데, 개인적으로도 아주 흥미있는 주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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